brunch

매거진 여는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 Mar 11. 2023

살아남는 것, 살아남게 한다는 것

월간 옥이네 2021년 10월호(VOL.52) 여는 글

처음 옥천에 왔을 때 인상 깊던 풍경이 하나가 있습니다. 마을마다 적어도 한두 그루씩 서있는 커다란 나무입니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 마을을 방문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데요. 공원이나 식물원, 거리의 가로수 등 ‘일부러’ 심고 가꾼 나무가 익숙한 이에게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마을의 나무는 그 자체로 신비롭습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 얽혀있어서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단순히 그 이유 하나만은 아닌 듯합니다. 농촌 마을 어귀의 커다란 나무에는 그 나무를 바라보며 살아온 지역 주민들의 삶이 스며있기 때문 아닐까요? 도시의 그것과 다르게 말입니다.


마을의 나무는 거대한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쉼터로, 놀이 공간으로, 때로는 제의의 장소로 활용돼왔기에 ‘공동체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옥이네 이번호에서 마을의 오래된 나무 이야기를 담는 이유입니다. ‘문화X역사’ 꼭지 중 하나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갔던 ‘둥구나무 아래’ 기사를 확장해 특집 지면을 채웠습니다. 마을의 나무를 기억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보존을 넘어 공동체의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이야기입니다.


마을의 나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한 역사이자 문화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옥이네는 이번호에서 보호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만,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오래된 나무 하나하나의 가치를 새길 수 있길 바라봅니다. 옥이네가 만난 사람들과 나무, 그리고 남해군 등 다른 지역 이야기가 그 가치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언젠가 옥이네가 마을의 나무 이야기를 지면 밖에서도 꾸려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조심스레 가져봅니다.


원래 익숙한 것은 그 소중함을 알기가 어렵지요. 나무 역시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어디, 나무만 그런가요.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있는, 그렇기에 잊고 사는 지역의 가치와 이야기를 오래된 나무에서 발견합니다. 특집 기사에서 ‘보물’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매일 보는 풍경이 일상 깊이 숨은 보물임을, 그 가치를 우리가 먼저 찾지 않으면 그대로 휩쓸려 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해봅니다.


선선한 바람에 어느새 들녘도 새 옷을 입고 있습니다. 초록빛을 몰아낸 황금들녘이 물결치는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농촌과 지역, ‘우리’의 지속가능성을 짚어봅니다. 살아남는 것, 살아남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지역성을 지키는 길임을요. 옥이네는 계속 지역 고유의 문화와 역사, 가치를 길어 올리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록해나가겠습니다.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를 들고 11월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가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10월호 내지는 지난호에 이어 재생지 ‘그린라이트’로 제작합니다. 앞서 10월호 내지를 ‘얼스팩’으로 인쇄 예정이라고 안내해드린 후 독자 여러분의 기대 어린 반응이 많았던 터라 저희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얼스팩은 현재 국내 수급 상황이 어려워 11월호 제작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구는 꼭 늘어야만 하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