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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27. 2023

본능만이 진리일까

가면과 진정한 나 사이에서 고민이라면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고등학교 때 까지는 안 그랬는데 대학교 들어간 이후 부터는 쭉 가면을 쓰고 살아온 것 같아 고민이에요. 사회생활을 하고부터 그런 느낌이 더 심해졌어요."


오래 만나 농담도 자주 나누는 환자가 문득 물어왔다.


"가면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왠지 제가 하는 말이 다 가식 같고, 표정도 솔직하지 못하고, 속으로는 화가 나는데 참기도 하고, 웃으면서 하루를 보내지만 늘 마음은 그런게 아니기도 하고.."


퍼뜩 떠오르는 비유가 있어서 웃으며 답했다.


"저는 금괴를 가지고 싶어요. 그럼 금은방에 들어가서 금괴를 가지고 나오면 솔직한 것이고, 금괴를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가식적인 걸까요?"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할게요. 하지만 그가 아직 내게 호감이 있는지는 잘 몰라요. 무작정 고백을 하고 만날 때 마다 애정을 표현하면 솔직하고 좋은 것일까? 반대로 천천히 기다리고, 배려하고, 친밀감을 쌓아가며 그 사람도 나를 알아갈 시간을 준다면 가면을 쓰고 사는 걸까요?"






20대 때는 속내를 모두 드러내는 것만이 진실한 것이라 오해했었다. 날카롭고 쓴 말인 줄 알면서도 '속에 저절로 떠오른 말이라면' 이를 입 밖으로 꺼내야지만 솔직한 것이라 생각했다. 반면 아무리 다정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말과 행동일 지라도 직관적이지 않으면 아니면 가면이자 가식이라 간주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러한 말과 행동들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것이었다. 솔직함이라 포장한 아집이었다. 좀 더 나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떠오르는 대로의 말과 행동에만 충실했다. 그 과정에서 아끼는 친구를 상처입히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가면이라 힐난했던 것들은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하는 성숙과 배려의 과정이었다. 이는 기망이나 사기와는 다르다. 거짓된 포장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의도를 감추는 것과, 본능만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상황에 알맞는 말과 행동을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두 가지 현상을 같은 것으로 오해한다. 그 오해는 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있는 대로만 행하는 것이 진실한 것이란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 인식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다음의 말과 행동을 고민하는 것을 가면을 쓰는 것으로 평가절하 한다.







2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나면 말이 거칠어진다. 사투리도 심해지고 (내가 평소 서울말을 쓴다고 하면 서울 지인들이 늘 웃는데, 왜 웃는걸까.) 비속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강연이나 중요한 모임,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어조는 물론 다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말과 행동에 조금의 긴장을 더한다. 나는 가면을 쓴 걸까.


그렇지 않다. 단지 내게 또 하나의 나, '그러면 좋을' 레퍼토리를 추가했을 뿐이다. 그 모두가 나다. 역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본능이라는, 아주 좁은 범위의 내 모습만을 나라고 한정을 지을 이유가 없다.


나는 무한하다. 어떤 모습도 시도할 수 있고, 늘 매일 다른 삶, 다른 모습을 시도하며 그 중 내게 좋은 것들을 쌓아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가장 좋은 나의 모습을 매 순간마다 고민할 것이다.


'가장 좋은 나' 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그 자체가 내게는 가장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다.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무작정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오히려 깊이 생각하여 원하는 삶에 가장 부합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게는 가장 가면 없이 진솔한 것이다. 더욱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 만큼 본질적인 욕망은 없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나, 1년 전의 나, 심지어 어제의 나와도 오늘의 나는 늘 미묘하게, 때로는 송두리째 다르다. 오늘 처럼 내일도 나는 눈을 뜰 것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 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의 연속, 이어짐이 그 자체가 '나' 다.


가짜 모습을 연기한다는 관점 대신, 매일 그 '나 라는 현상' 을 내가 바라는 모습에 가까울 수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생각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공부는 늘 즐거울 수 없다. 때로는 피곤과 귀찮음을 무릅써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공부하는 나 라는 가면'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식을 쌓고 대가인 선생님들의 경험을 경청함으로써 나를 찾는 이들에게 더욱 큰 의미를 돌려주는 것이 내게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할 뿐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심 덩어리인 내가 기부를 하고 지역사회에 공헌을 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좀 더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기대, 내 아이와 같이 느껴지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작지만 필요한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기쁨과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내게 좋기 때문에 이어가는 것이다.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생각과 느낌에 벗어난다고 하여 가면이 아니다. 오늘의 나는 어떤 내가 되어볼까, 어떤 내가 가장 최선의 나인가. 이를 고민하는 모든 순간들 그 자체가 가식 없이 '진짜 나' 였다.







'저절로 찾아오는 느낌과 생각' 만이 진정한 나 라고 인식하는 것은, 삶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진정성 있게, 충만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우리 고유의 힘을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에게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고민이라면 오히려 저절로 떠오르는 '본능적인 것 만이 진정한 나' 라는 너무 좁은 틀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농담을 이어갔다.


"만약 xx씨가 앞으로, 본능은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100년을 꼬박 그 가면이라는 것을 쓰고 살다 죽는다면 어떤것이 페르소나이고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요?" 그도 그냥 웃더니, 그냥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겠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내가 행하는 것, 말하는 것, 그것이 오늘의 나다. 그 '오늘의 나' 가 늘 내가 원하는 나와 가까워 지는 하루하루를 100년 동안 쌓아가려 한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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