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저는 처음 이 책방에 들어왔을 때, 하나의 음악이 머릿속에 틀어졌어요. And so it goes on... 제가 좋아하는 노래예요. 왜 그 음악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잘 모르지만, 그래서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처음 바라보았고, 지금 이렇게 무사히 4회에 걸친 한 작품에 대한 막독을 마치고 있습니다.
개선문은 물질세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파리에서 피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절박한 생활이 그려져 있지요. 라비크를 중심으로 호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개선문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세계를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우리 머릿속에서 생생히 살아납니다.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그 피난민들이 모인 바에서 말이죠. 개선문은 외로움과 방황이라는 인간 본연의 고민도 담고 있어요. 어쩌면 그것은 타자가 보기에는 아름다운 시선으로 머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개선문은 읽는 이들에게 라비크라는 인물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 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한 명의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유독 젊은 창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들을 주로 수술하는 의사 라비크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 어린 창녀들의 생명이 살아있는 것을 통해 라비크는 자신이 의사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겨우 먹고살기 위해 대리 수술을 하는 것인데, 그는 그것에 만족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는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을 최소화시키며, 오직 수술과 해야 할 의무에 초점을 두고 있지요. 그 의무는 그의 과거와 함께 뒤엉켜있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통찰이 잘 되지 않는군요. 그렇지만, 그 창녀들과 라비크는 이상하게 잘 어울려요. 마치 딸과 아버지처럼요.
창녀와 의사인데, 왜 딸과 아버지냐고요. 그건 바로 성이라는 이중적인 속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늘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두운 뒷골목, 음습한 창녀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잖아요. 마치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죠. 딸과 아버지처럼 라비크는 창녀들을 돌보아줍니다. 너무 많은 잔소리, 너무 냉소적인 말투, 너무 인간적인 도움을 모두 배제하고, 의사로서 기술과 제삼자로서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그녀들에게 말을 건네는 라비크를 보며 저는 그가 꼭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생각 속에서 말이지요.
개선문 마지막 막독 시간에 제 생각을 발표해봅니다. 생각의 끈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그 누구도 가늠하기 힘들어요.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떤 사람을 기억해내고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이 되어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됩니다. 이렇게 책으로, 또는 음악으로, 또는 영화를 감상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갑니다. 저는 키티구구라는 제 닉네임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제게 아흔아홉의 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조차도 부족할 정도로 저는 다양한 저를 알고 싶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막독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책이, 소설이 한몫을 하기를 바랍니다. 반 고흐님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소설이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리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생각의 섬들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COSMOS.
책 읽는 시간 에피소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