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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11장

 서른을 넘어서면서, 나와 친구들은 서로 멀어져만 갔다. 은지만이 남았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제 짝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둘, 셋... 낳았다. 은지와 나는 달랐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이 이 현실에서 살아서 숨 쉬기를 원했다. 그 이상이 영화 속에서 숨 쉬고, 책에서 말해주고, 음악에서 들려주었다. 나에게는 그랬다. 그 시간 동안 난 누구를 기다렸을까. 슬그머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나를 알아주는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었다. 은지와 함께 웃고 떠드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은지는 은지대로 만나고, 나는 나대로 만나고. 은지와 내가 친하게 지내온 비법은 솔직함과 격려의 다독임이다. 나는 책과 음악과 영화를 중심으로 두었다. 은지는 게임, 요리, 방콕에 중심을 두었다. 우리는 절친이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이상을 각자 마음속에 품었다. 둘 다 그 이상을 위해 마음을 놓치지 않기로 서로 격려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들어와서 모임을 함께 하면서 뭔가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소속감이 생긴 것이다. 팀워크가 이루어지는 독서 모임. 서른다섯 해를 보내면서 이제야 뭍에 올라온 기분이었다. 그동안 물 속에서 뭍을 찾아 항해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수영도 했는데, 이제 내 섬을 찾은 듯했다. 그 섬은 서로 연결이 되었다. 책이 징검다리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너무 깊게 빠지지 않는다. 섬과 다른 섬을 연결하는 책은 내게 두 공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게 한다. 나로 가득한 섬과 주말에 만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아마 그 두 공간에서 시간을 갖다 보면, 나의 한 손에 검이 주어지리라. 내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검. 나만이 쥘 수 있고, 나의 손에 익어서 움직이는 검. 그 검은 내 목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그 검은 목소리가 되어 내 이상을 향해 곧바로 날아갈 수 있겠지.


 부모님이 전화를 하셨다. 선을 본 남자는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연락이 안 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너 나이를 생각해야 해, 너 그동안 남자 만나지 않았잖아. 이제는 기회가 없어." 나는 막독 모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조용히 있는다. 엄마는 또 그러신다. "네가 전공 그만둘 때, 아빠나 나나 양보한 걸 알아야지. 그런데 여전히 너는 고집을 부리는구나. 너 이제 얼굴도 예전 같지 않다. 자꾸 시간 끌지 마라." 그리고 전화를 끊으셨다.


 나이가 들어 보인 남자에게는 연락이 없다. 나도 안 한다. 그 정도까지인 것이다. 그 사람에게 장점, 매력이 있었지만, 더는 자력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그 남자가 어떻게 한다면 바람의 방향이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 현실은 다르다. 그 남자도 나에게서 무언가 결핍을 알아챘을지 모른다. 한마디로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이다. 인연이라는 말은 관계가 잘 될 때보다 잘 되지 않을 때 더 쓰이고는 한다. 그 남자에게는 함께 운동하는 활동적이고 섹시한 여성이 딱 맞을 것 같다. 나는 함께 산책을 나누면서 이야기 나누는 남성이면 좋을 것 같다. 내 나이는 이 정도의 희박한 가능성에 몸을 싣고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다 심사숙고가 끝났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개선문'에 대한 멤버들의 생각을 한 줄로 요약해본다.


K - 물질 세상에서 사는 인간들의 욕망

책방 주인 -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하나의 다큐멘터리

반 고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소설

바나나 - 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통로인 소설

난쏘공 - 인간의 외로움이 파리라는 공간에서 자라나는 드라마

앨리스 - 주인공 라비크의 사랑


 저는 처음 이 책방에 들어왔을 때, 하나의 음악이 머릿속에 틀어졌어요. And so it goes on... 제가 좋아하는 노래예요. 왜 그 음악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잘 모르지만, 그래서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처음 바라보았고, 지금 이렇게 무사히 4회에 걸친 한 작품에 대한 막독을 마치고 있습니다.


 개선문은 물질세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파리에서 피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절박한 생활이 그려져 있지요. 라비크를 중심으로 호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개선문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세계를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우리 머릿속에서 생생히 살아납니다.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그 피난민들이 모인 바에서 말이죠. 개선문은 외로움과 방황이라는 인간 본연의 고민도 담고 있어요. 어쩌면 그것은 타자가 보기에는 아름다운 시선으로 머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개선문은 읽는 이들에게 라비크라는 인물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 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한 명의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유독 젊은 창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들을 주로 수술하는 의사 라비크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 어린 창녀들의 생명이 살아있는 것을 통해 라비크는 자신이 의사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겨우 먹고살기 위해 대리 수술을 하는 것인데, 그는 그것에 만족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는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을 최소화시키며, 오직 수술과 해야 할 의무에 초점을 두고 있지요. 그 의무는 그의 과거와 함께 뒤엉켜있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통찰이 잘 되지 않는군요. 그렇지만, 그 창녀들과 라비크는 이상하게 잘 어울려요. 마치 딸과 아버지처럼요.

 

 창녀와 의사인데, 왜 딸과 아버지냐고요. 그건 바로 성이라는  이중적인 속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늘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두운 뒷골목, 음습한 창녀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잖아요. 마치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죠. 딸과 아버지처럼 라비크는 창녀들을 돌보아줍니다. 너무 많은 잔소리, 너무 냉소적인 말투, 너무 인간적인 도움을 모두 배제하고, 의사로서 기술과 제삼자로서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그녀들에게 말을 건네는 라비크를 보며 저는 그가 꼭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생각 속에서 말이지요.


 개선문 마지막 막독 시간에 제 생각을 발표해봅니다. 생각의 끈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그 누구도 가늠하기 힘들어요.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떤 사람을 기억해내고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이 되어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됩니다. 이렇게 책으로, 또는 음악으로, 또는 영화를 감상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갑니다. 저는 키티구구라는 제 닉네임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제게 아흔아홉의 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조차도 부족할 정도로 저는 다양한 저를 알고 싶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막독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책이, 소설이 한몫을 하기를 바랍니다. 반 고흐님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소설이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리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생각의 섬들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띠띠띠띠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

.

.

.

"제 카드는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제 카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제 카드는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왜 카드가 보이지 않으신가요?"

"붙이지 못했거든요."

"..."

"누군가에게 붙여야 했는데, 저는 그때 너무 아팠습니다."

"..."

"솔직히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조차 몰랐습니다."

.

.

"여전히 붙이고 싶으신가요?"

"네... 누군가가 제 카드를 읽어주고 이야기해주었으면 합니다."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면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

"주소 알려드릴까요?"

"네"

"춘천시 형제와 아우길 ..."


 오늘 이름 없는 카드를 상담했다. 팀장님에게 보고도 드렸다. 그 사람은 그 카드에 무엇이라고 적었기에 그토록 힘들어하며 카드 상담 센터에까지 전화를 한 것일까? 내 주소로 정말 카드를 보낼까? 즉흥적인 전화 통화이기는 했지만, 한차례 매듭이 풀린 기분이 든다.


 내 방에서 나는 또 노래를 듣는다. 노래처럼 아름다운 섬을 꿈꾼다. 별이 되는 섬.

 아마도 막독이 나를 도와줄 것이리라.

 서른다섯 해에 찾은 나의 섬.

 작은 섬이지만, 마음에 든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COSMOS.

 책 읽는 시간 에피소드 1...

 


K〈 책방주인〈 앨리스〈반 고흐〈 키친〈 난쏘공〈 이름 없는 멤버 〈 키티구구

다이어리에 아무렇게나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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