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10장

 반 고흐는 빨간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빨간색 바탕에 검은색 줄이 일정하게 지나가는 목도리를 두르고, 어두운 색깔에 무거워 보이는 코트를 입고 있었다. 먼 곳을 응시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들어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반 고흐와 K와 책방 주인과 나 이렇게 네 명이 다음번 막독을 하는 것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나누어 보자고 했다. 앨리스는 그 정도로는 관심이 없다며, 마지막 막독에만 참석하겠다고 했고, 난쏘공과 바나나는 나에게 처음이니 한 번 해보라며 나를 적극 밀어주었다.

 

 나는 반 고흐, K, 책방 주인이 함께 하면, 어떤 대화가 오고 갈지 이 곳에 오기 전에 열심히 상상했다. 누가 가장 내게서 말을 끌어낼까? 누가 내게 가장 인상적일까? 누가 가장 매력 있는 남성일까? 나는 기쁨과 호기심 때문에 내 얘기를 떠벌릴까봐 살짝 짜릿했다.


 토요일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우리 넷이 모였다. 내가 반 고흐와 함께 들어서자 이야기 나누던 두 남자가 일어서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도 밝게 웃으며,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중에 '이름이 없는 카드'를 매번 문의하는 고객에 대한 나의 푸념이 있었다.

"제가 전화를 받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면 끊어 버려요. 그리고는 30분쯤 지나서 다시 전화를 하고는 같은 질문을 해요. '제 카드 때문에 제가 움직이지 못해요'라고요. 이 사람 대체 지치지도 않고 뭘 하려고 하는 거죠?"


 세 남자가 곰곰이 듣더니, "'이름 없는 카드'라는 것은 비유인 것 같아요."  책방 주인이 먼저 생각을 밝혔다.

K 곧 했다. "'이름이 없어서'라는 것은 그 사람이 어쩌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르게 얘기하려고 하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 같군요"

반 고흐는 "그 사람이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에 그렇게 전화를 하죠?"라고 물었다. 생해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2시부터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전화를 했다.

"그 사람이 전화를 또 걸면 잠시 침묵을 하고 들어주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K가 말했다.

"음... 팀장님이 제 회선으로 돌려주셨는데, 저도 슬슬 부아가 치밀어요. 말하는 톤도 똑같거든요. 꼭 감정이 없는 사람이 그러듯이."


 이 얘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개선문' 마지막 시간을 위해서 내가 정리를 하기로 했다. 30분 막독 모임을 하는 동안 내가 막독 멤버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생각을 큰 줄기로 잡아서 짧은 감상을 발표하는 것이다. 휴...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나는 하기로 했다. 이렇게 세 사람과 함께 있으니까 기운이 쑥쑥 생긴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생각을 내게 한 번씩 더 알려주었다.

 

 책방 주인은 일단 생각이 열려 있는 막독을 언제나 지향한다고 밝혔다. 자신은 안내자로서 자신의 생각은 감칠맛이라며 웃었다. "감칠맛이라..." 오래 끓여야 나는 맛이잖아! 나는 웃으며, "'감칠맛'이 빠지면 막독이 제 맛을 잃겠는요."하고 퉁을 넣었다. 그러자 K는 자신은 항상 삐딱하게 말하고 싶다며, '쓴 맛'이라고 했다. '흥 바닐라 라테 좋아하면서 쓴 맛은 무슨...' K는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잊지 말아 달라며, 나보고 안 그러면 그라폴리오를 보내주지 않겠다고 수다스럽게 말했다. "그럼 안 받고 말죠." K는 빠르게 말하며, "아니 막독에 더 이상 발 못 붙이게 제가 손을 쓸 거예요. 난쏘공도 바나나도 사실 다 제 편이랍니다. 

키티님 오늘 테스트받으러 여기 오신 거예요. 제가 마지막 시간에 점수를 낼 거예요." 나는 더 크게 웃었다. 

'이 사람들 뭐지. 진지한 줄로만 알았는데, 완전 플레이 그라운드잖아.'


 반 고흐는 별 말이 없었다. 그는 열심히 들어주고, 두 손을 붙잡고 무게 있게 앉아있었다.


"반 고흐님은 할 말 없어요?"

"저는 키티 구구님의 생각이 많이 담긴 감상을 기대하겠습니다."

이렇게 반 고흐와 세 사람의 만남은 끝이 났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끝.


 마지막 30분은 한 명의 멤버가 정리와 생각을 해서 발표를 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다음 작품을 뭘로 할지 키티님이 정하시는 거예요."



이전 09화 키티 키티 키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