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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10. 2024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

홈스쿨의 끝에서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내겐 여러모로 의미 있는 연말이었고, 한 달도 남지 않은 2024년을 결산하는 마음이었다.  


우선, 사춘기의 긴 터널을 지난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고, 지난 1년 5개월 간 홈스쿨 했던 사춘기도 새 학기엔 고등학교에 진학 예정이다. 그렇다는 것은 나 역시 사춘기 둘과 고군분투한 시간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단 얘기였다. 더구나 외부활동도 거의 하지 않고 읽고, 쓴 시간 끝에 좋은 결과로 대답도 돌아온 해였다.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포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울 거라 기대했었다. 힘들던 일도 결국 그 끝은 있기 마련이라며 물색없이 기뻐했다. 내년에 사춘기 둘 다 기숙사로 나가면 그 자유를 감당할 수 있겠냐며 짐짓 엄살을 부렸었다.


시상식엔 사춘기와 둘이 참석했다. 이번 여행이 사춘기에겐 졸업여행이나 다름없으니 그 시기도 마침 좋았다. 우린 시상식이 끝난 뒤 포항과 경주 여행 계획을 짜며 며칠을 설렜었다. 하지만,

비행기 타기 이틀 전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해제되는 믿기 어려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날부터 밤잠을 제대로 못 잤다. 시상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껏 부풀었던 사춘기의 졸업 여행 계획은 설렘이 아닌 불안으로 채워졌다.


제주에서 포항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휴가 중 복귀 명령을 받고 이동하는 군인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 시간, 2차 계엄 움직임이 있다는 속보가 나오던 중이었으므로, 우린 포항에 도착해서도 내내 티브이로 상황을 지켜보느라 여행을 즐기긴 어려웠다.


거리로 나온 수많은 시민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미안하고 감사한 것으로 복잡하게 얽혔다. 나는 지난 일상을 열심히 살았고, 오랜만에 잠시 기쁘고 싶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우리의 자유가 통제와 속박 안에 갇히는 날, 우린 이보다 더 작은 일상도 지킬 수 없겠구나!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줄 순 없었다.


나는 시상식 전날도 새벽까지 잠 못 이루다가 결국 미리 생각해 둔 수상 소감문 내용을 바꿨다.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지금의 솔직한 심정과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처받은 모든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그것은 미미하게나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낼 수 있던 최선의 목소리였다.


비록,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우린 언제나 어려움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우리는 결국, 목적지인 해피엔딩이 있는 그곳에 도착할 것을 믿는다.


복숭아소재로 수상한 뒤 캐나다에서 큰딸이 그려 보내준 복숭아 그림
저는 이번 작가약력에 브런치작가 활동을 적었습니다.누군가에겐 또 하나의 목표가 되고 길이 됐으면 합니다. 심사위원이 심사평에 남긴 심사조건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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