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홍당무를 위하여
이 연재는- 과거기억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지난 추억담이 아닌, 감정의 유산을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결국, 트라우마를 재구성함으로 나의 돌봄으로 나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홍당무가 주먹으로 다른 유리창을 힘껏 내리치며 소리쳤다.
“제길! 왜 쟤한테는 뽀뽀해 주고 나에게는 뽀뽀해 주지 않았어요? ”
그리고 유리에 찢겨 피가 흐르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덧붙였다.
“나도 내가 원한다면 뺨을 빨갛게 만들 수 있다고요! ”
소설 <홍당무- 중에서>
엄마의 집요한 학대를 벗어난 홍당무는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에는 붉은 볼이 귀여운 마르소란 아이가 있었다. 마르소는 사랑스러운 외모 때문에 '꼬마 등잔' '붉은 뺨' 같은 귀여운 별명으로 불리며 친구들은 물론 ‘비 오른’ 선생의 특별한 편애를 받았다. 한편, 그런 마르소와 비 오른 선생을 지켜보던 홍당무는 자신이 가 닿을 수 없는 '사랑받는 아이'에 대한 갈망 때문에, 손에 상처를 내고 얼굴에 피를 바르며 외쳤다. 나도 뺨을 빨갛게 만들 수 있다고!
교실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대부분 바른 자세로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지만, 그중에는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건드리는 아이가 한두 명은 있었다. 그 아이들은 좀처럼 눈을 맞추기 어렵거나 어딘지 주눅 든 모습이었다. 그게 아니면, 몹시 소란을 피워 한 번 더 자기를 쳐다보게 했다. 그들에게 어린이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밝음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지 못한 것 같았다. 혹시, 아이들에게 어떤 설명이 부족한 건 아닐까. 어쩌면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해, 혼자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2000년 초반부터 어린이와 읽고 쓰는 일을 시작하며 교실 이름이 필요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홍당무'였다. '쥘 르나르'(1864-1910)의 소설, 홍당무를 읽은 뒤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잊기 힘들었다. 단지, 나라는 이유로 가족 중에서도 엄마로부터 따돌림과 차별을 겪은 홍당무에 대한 연민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은, 마치 내 어린 날을 옮겨 둔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은 내 안에서 내가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교실 이름을 '홍당무'로 짓겠다고 하자, 주변에선 말렸다. 밝은 소재도 아닌 소설 제목을 교실 이름으로 할 것까지 있냐며, 뭔가 더 밝고 희망적인 상호 명을 생각해 보란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 대로라면 밝은 건 좋고, 밝지 못한 건 나쁘단 말인가? 반문하게 했다.
세상은 그래서 온통 밝은가? 아이는 모두 본성대로 밝고 진심으로 행복한가 말이다. 내가 경험한 어둠이나 홍당무의 슬픔은 그저 좋지 못한 개인의 이야기 거나 소설로 지어낸 것에 불과한 것인가? 교실 이름이 ‘홍당무’ 일 이유는 더욱 분명해졌다. 더는 다른 어떤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 뒤 20년 넘도록 내 교실 이름은 '홍당무'였다. 나는 어린 홍당무를 혼자 남겨두거나 잊지 않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한 존재의 성장을 어떻게 훼방 놓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작은 사람의 권리에 대해 말하고 싶다. '너희에게 권리가 있다!' 어린 홍당무에게 알려주고, 부디, 너를 위해 상처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에도 여전히 어린 ‘홍당무’들은 많다. 특히, 내가 만난 아이들의 대부분은 지방 소도시에 사는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었다. 그곳도 우리나라 여타 도시가 그렇듯 과보호와 방임이라는 양극단의 환경이 존재했지만, 내 눈에 밟히는 아이들은 어른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방임의 문제는 흔히 말하는 조부모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부모의 이별과 재혼, 가족의 해체처럼, 취약계층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변화된 시대 속 다양한 인간 삶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았다. 양육자의 사회적 고립이나 양육 스트레스, 게임중독에 노출된 환경에서 그 곁에 있는 아이의 삶만 햇살처럼 밝을 수 없다.
나는 약자인 어린이의 현실을 애써 밝고 환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그들의 어둠을 감춰두고 못 본 척해서도 안 됐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망설였다. 과연 이 같은 어린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자칫, 어린이 모습을 부정적으로 일반화시키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써야 했다. 애초에 내가 홍당무였던 사실은 한시도 나를 떠나지 못했고, 나를 닮은 아이들과의 숱한 만남은 나를 다시 읽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제 성장한 나의 경험이 지금의 '아이의 삶'에 손 내밀 차례였다. 그저 오해를 풀기에 아직 늦지 않았길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사실, 우린 상처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상처받은 존재가 걸어갈 길은 멀고 험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진 연대가 있었다.
이 글은 이미 자기 몫의 삶이 시작 돼버린 아이를 통해 아이의 삶이라고 결코 가볍거나 해맑지만 않은 그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 이상 어른과 아이는 위계에 의한 관계가 아니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존재로서, 만만치 않은 세상을 함께 걸어가야 할 소중한 관계임을 전하고 싶다.
더구나 요즘은 온통 어른들의 정치적 목소리에 가려져, 어린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 앞으로 동네 마트와 버스 정류장, 스치듯 지나는 길에서도 어린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안전을 유심히 지켜봐 주는 눈 맑은 어른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