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요약문장:
나는 정말 어떤 아이였을까? 궁금하던 내가 말했다.
'아직도 어떤 아이였는지가 중요해? 어떤 아이가 어디 있어. 그냥 어린아이였지!
어떤 존재든 타인에 통제돼 휘둘린 삶이 행복하기란 어렵다. 약자인 아이의 삶은 어른에 휘둘리기 쉬웠다. 과거와 현재를 가릴 것 없이 보호받지 못한 어린 약자로 사는 건 고달픈 일이 분명했다.
나는 1970년대에 어린이 시절을 지냈다. 그때는 사회적으로 어른과 아이 간 위계가 분명했고, 아동의 권리 같은 말이 세상에 존재했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조차 교사에 의해 '사랑의 매'라는 괴상한 이름의 체벌이 이뤄졌지만, 이 문제에 토를 다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은 다 맞으면서 크는 거지!"
누군가 말해도 이상할 것 없는 그런 때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라고 그런 시대적 흐름에서 동떨어질 리 없었다. 체벌은 일상적인 일이어서 나는, 엄마가 머리를 긁느라 손만 올려도 움찔, 눈을 깜빡이는 아이였다. 그러면 그런다고 또 한대를 쥐어 박혔다. 우리 집의 훈육과 체벌 담당은 엄마였다. 예측 불가한 육아의 한계에 엄마는 차근차근한 설명을 해주는 대신 체벌을 선택했다.
아버지가 매를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커다란 덩치에 부리부리한 눈,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아버지는 화가 났을 때나 기분이 좋을 때 말투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했다.
가끔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면,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에라이, 미친년~!” (어이구, 귀여운 녀석?)
난데없이 욕이 날아왔지만, 아버지 특유의 웃는 표정 때문였을까? 나는 그럴 때 나를 사랑받는 아이처럼 느꼈다. 그런 분위기의 집은 내게 편안한 곳이 아니라, 언제 무슨 야단을 맞을지 알 수 없어 두렵고 불안한 공간이었다. 간혹, 군대에 입대하면 그럴까? 상상해 볼 만큼 어린아이에겐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손 발이 맘대로 되지 않는 증상을 자주 경험했다. 주로 매를 맞거나 심하게 야단을 맞을 때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은 의지와 상관없이 오그라들어 주먹이 꽉 쥐어진 채 펴지지 않았다. 울음은 딸꾹질처럼 터져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또 저런다! 저건 성질 머리가 고약해서"
그럴수록 엄마는 내 오그라든 손가락을 억지로 펴려 했다. 하지만 몸이 만든 강력한 방어 반응은 어른의 억센 힘으로도 제압할 수 없었다.
"이봐, 계집애 고집 좀 봐라!"
엄마는 내가 고집을 부린다며 화를 냈지만, 그때 내 몸은 내 말 역시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걱정이 많았다.
'나는 정말 고집이 센 아이구나. 큰일 났다. 이렇게나 못돼 처먹어서 앞으로 어쩌지...?'
엄마 말대로 내가 타고나길 못되게 태어난 존재라 믿게 됐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미래가 그저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히 고집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발작, 경련 증상이었다. 몸의 신경계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생존 모드로 들어간 것으로, 요즘 말로 하자면 신체화된 트라우마 반응이었다. 내 몸은 살기 위해 반응했고, 그것이 경련처럼 손발로 나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 그걸 알아주는 어른은 없었고, 공중에 흩어지는 밀가루처럼 이리저리로 흩날리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느 날 문득, 그 당시 엄마가 지금 내 딸보다도 어렸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마치 실체도 없는 존재와 평생을 싸운 느낌이 이럴까.
나는 이내, 어린 엄마의 엄마가 된 마음으로 돌변해 말했다.
‘그 나이에 뭘 얼마나 알겠어. 애가 애를 키운 거지.'
하지만 잠시 뒤,
‘그래도 어떻게 애를 그렇게 해? 나이가 어렸으면 뭐, 다 용서돼?' 나는 여전히 양가감정의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중이었다.
이제 나는 커다란 반죽에서 기억 하나를 꺼내, 빵을 굽는다. 처음 꺼내 구운 이 기억은 어떤 맛일까.
명색이 빵인데, 쓴 맛이 나면 곤란하지 않겠나. 구름빵은 어떨까? 둥글고 말랑한 구름을 닮은 빵.
이제라도 그 시절의 나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 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멈칫했다.
‘엄마 말대로 그 시절 나는 정말 고집이 센 아이였을까?’
그러면 또 다른 생각이 밀려든다.
‘고집 좀 있으면 어때. 그게 그렇게까지 혼낼 일이냐고! 맞을 일이었냐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양가감정의 다툼은 어쩌면 평생 계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정말 어떤 아이였을까? 궁금하던 내가 말했다.
'아직도 어떤 아이였는지가 중요해? 어떤 아이가 어디 있어. 그냥 어린아이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