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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테 Apr 09. 2019

5개의 자격증을 요리하다 (1)

달궈진 팬보다 더 뜨거운 열정 

내생에 첫 국가기술자격증!

고등학교 2학년 이때 시작은 빠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요리 특성화 학교에 다니는 다른 고등학생들과 집안에 요리 쪽으로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있는 다른 애들보다는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이 진로에 대해 알려줄 누군가도 없었기에 나는 열심히 요리학원을 다녔다. 처음 가본 실기시험장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이미 프로 요리사분들도 와있었고 재야의 고수들도 있었고 나보다 어린 중학생도 있었다.


 첫 현장 실기시험은 굉장히 낯설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우선 요리복에는 어떤 학교나 가게의 상표 등이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시험장에서는 테이프로 가려야 한다. 그 후 신분증을 보여주며 출석체크(?)를 하고 대기장에서 대기를 한다. 대학교에서 온 대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학교 마크가 그려진 요리복을 입었고 일반인들은 요리학원에서 구매한 요리복들을 입고 있었다. 가끔 자기 가게를 운영하거나 실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분들이 거기서 근무하는 요리복으로 입고 있었다. 시험장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나마 다양한 요리사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실기시험 현장의 뜨거운 열기 


어느 시험장이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한식조리기능사 실기시험장에 가면 정말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가 있다. 1시간 안에 2가지 요리를 만들어 아햐고 약 50여 가지의 메뉴 중에 어떤 메뉴가 나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전까지 그동안 연습해온 레시피들을 다시 보고 또 외우고 또 외우며 시험장에 입장하게 된다.


아마 처음 보러 가시는 분들은 상당히 긴장이 될 텐데 그 이유는 개인 재료와 공통 재료들이 있어서 눈치싸움도 필요하고 1시간이란 시간이 생각보다 굉장히 빠듯하기 때문이다. 평가방식에는 요리과정 또한 평가가 되기 때문에 전처리부터 설거지까지 시험장에 나가기 전 모든 일련의 과정을 평가받는다는 압박감에 더욱 평소보다 실력을 내기 힘들다. 물론 그 범위 안엔 나도 포함한다


아직도 처음 실기시험장의 분위기를 피부로 기억한다. 뭔가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음식물 냄새가 가득 퍼진 거 같은 시험장에 차가운 공기가 맴돌고 깐깐해 보이는 심사위원들이 서있고 째깍째깍 소리는 나지 않는데 볼 때마다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시계가 시험장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각자 가진 번호와 맞는 테이블에 서서 시험 시작 전 유의사항과 전달사항 그리고 재료들이 전부 구비돼있는지 확인 후에 1시간 동안 요리를 하게 된다. 


그렇게 시험 장안은 무수한 써는 소리와 수도꼭지를 틀어 나오는 물소리, 가스레인지에 불 켜는 소리 등 오로지 요리하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지배하기 된다 


덩그러니 재료만 놓여있는 한 사람이 겨우 작업할 수 있는 조그만 작업대에서 칼을 쥐고 약 80여 명이 다 똑같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광경은 마치 소림사에서 무술인들이 다 같이 수행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어떤 이유로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지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분명 요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본 실기 시험 요리 주제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굉장히 까다로운 요리였던 거로 기억한다 아마 어선이었나. 인생에 운이 작용을 안 하는 것이 없겠지만 특히 시험은 운이 많이 따라줘야 되는 거 같다.  같은 한식조리사 자격증이라도 어떤 요리 주제가 나오냐에 따라서 난이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시간이 반이상이 지났을 즈음 손이 빠른 사람은 접시에 요리를 담고 있는 사람도 있고 40분쯤 지나면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마무리를 하고 이미 내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나는 한 10분 정도 남기고 접시를 제출했던 거 같다.  


1시간이 딱 지나고 나서 접시를 낸 테이블 앞에 커튼 막을 펼쳐 마감을 하는데 미처 내지 못한 몇 명이 있었다. 요리학원에서 시험에 대한 팁 중에 무조건 테이블에 접시는 제출하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 겨우 접시라도 낸 나는 한숨은 돌렸지만 미처 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첫 실기시험의 아픔은 성장통이었다 


학원 선생님의 말씀대로 첫 시험은 현장 분위기를 알고 시험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코스였나 보다. 첫 시험에 합격을 하고 싶었지만 쓴 고베를 마셔야 했다. 나의 좌절감과는 상관없이 학원 선생님은 곧바로 다음 실기시험에 접수를 하자고 했고 나도 분한 마음에 바로 또 시험을 보고 싶었다(변명이 아니라 첫 시험에 너무 난이도 있는 메뉴가 나온 게 억울했다) 내 기억에 바로 한 달 뒤쯤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확실히 처음 시험 볼 때랑 많이 적응도 돼있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두 번째 시험에서 나온 음식은 비교적 할만한 음식이 나왔었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어머니가 권해주어서 시작된 요리학원에서의 시간은 사실 아버지의 반대도 걸렸고 내가 과연 요리가 맞는지 스스로에게도 불신을 가진 때였다 그래서 더더욱 합격은 나에게 그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너무나 뿌듯했다. 


그전에 다른 자격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어 자격증도 있었고 한자 관련된 자격증도 있었다. 다만 내가 자발적으로 한건 아니었고 어머니의 강요(?)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은 생에 첫 내 의지로 자발적으로 시작해 성취한 결과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비록 첫 번째 도전은 실패했지만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거름이 되었고 합격이란 싹을 틔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나는 생애 첫 국가기술자격증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다음 해에 곧바로 양식조리기능사에 무려 1년 동안 7번의 도전을 하게 된다.


 -to be continued-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photos/8_Tlng54n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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