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레인 Apr 02. 2024

찜찜하거나 기분 나쁜 일은 소소하게 일상다반사지

#16. 다시, 성철

이 과장은 집에서도 FM인가 봐.
퇴근하고 술 한잔 하기가 힘드네.


팀장의 목소리에 가시가 있다.


대충,

(평가 잘 받으려면 나에게 잘해라. 는 의미)


"아~ 왜 그러세요. 팀장님.^^"


성철의 급조한 웃음이 영 어색하다.

(자연스러움 실패)


섭섭함을 티 내긴 냈지만

박 팀장도 일 잘하는 이 과장을 무시할 순 없다.


"거, 이 과장은 너무 빡빡해."

"그렇게 정석대로만 해서 회사생활이 되겠어?"


"아, 예..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이나 사내정치 열심히 하세요.)


"괜찮긴."

(그러니까 네가 만년 과장이지. 란 의미)


"어쨌든 오늘 안 되면, 조만간 한 잔 하자고."


"예, 그러시죠."


간신히 상황 종료 후


...

찜찜함이 남았다.


'하, 저 인간 때문에 진짜...

내가 이 썩은 곳에 계속 있을 줄 아나 보지?

두고 봐라. 내 더러워서 이직한다.'


성철은 분노로 씩씩거렸다.

팀장이 미웠다가, 회사가 싫었다가...

당장 어쩌지도 못하는 자신이 처량히 느껴졌다.


밥 맛도 없어 점심도 먹지 않고 차에서 잠을 잤다.

이 기분 대로라면 종일을 망칠 판이다.

늦은 오후 준석이

성철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왔다.


"과장님, 아직도 안 풀리신 거예요?"


"뭐, 그렇지. 팀장 저거 하루이틀이냐?"


"아, 예... 아까 점심시간에 팀장님도 과장님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래? 뭐라고? 내 욕하데?"


"아뇨, 아침도 안 먹고 오는 것 같은데 점심도 건너뛴다고요. 김밥이라도 사갈지 전화해 보라고 하시던대요."


"여하튼 오지랖은."


"예, 그러실 것 같아서 제가 적당히 그냥 쉬고 싶으신 거 같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과장님은 끌어주고 싶어도 어렵다는 말도 하셨어요."


"헛 참. 신경 끄고 자기 할 일이나 잘하라고 해. 일을 하는 건지, 사람들만 보고 다니는 건지. 암튼 걱정하는 게 특기라니까?"


"그렇긴 한데요. 팀장님은 진심인 것 같았어요.

... 과장님, 그거 아세요?"


"뭘?"


"옆팀에 제 동기 하나 있잖아요."


"응. L말이지?"


"네, 볼 때마다 저보고 팀장 잘 만나서 좋겠다고 해요. 자기네는 앞뒤 없이 일만 잔뜩 받아오고, 인정사정없는 팀장이라 죽을 맛이라고요."


"걔보고 우리 팀 한 번 와 보라고 해. 위에서 사람만 좋고 무능하면 어떤지... 겪어봐야 알지."


준석이 내려가고

성철은 담배를 한대 더 베어 물었다.


'그러게...

나는 저 인간이 왜 이렇게 싫을까?'


그날 저녁

"여보, 이거 다 쓴 거 같은데...
여기 물티슈 버리는 거지?


성철의 물음에 인영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 당신이 좀 치워주면 안 돼?"


웽? 이건 무슨 소린가?

성철은 아내의 볼멘소리가 당황스럽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물티슈 쓰고 바로 안 버렸다고 뭐라고 하는 거잖아."


 "내가 버리는 거냐고 물었봤지, 치우라고 했어?

사람이 왜 이리 삐뚤어졌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성철은 오늘따라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사람 피곤하게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 미안. 나 혼자 생각이 너무 앞서나갔나 봐.

물어본 거에만 대답하면 되는데, 오해했네... 미안해."


다행히, 아내의 빠른 사과로

팽팽하던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당신이 정말 못된 거지."


성철은 굳이 한마디 더 한다.


저녁을 먹고 아까 일을 거의 잊을 때쯤

아내가 조용히 다시 말을 건네어왔다.


"여보, 우리 지난주 저녁 모임에서 한참 이야기했잖아요.

믿는 대로 현실에 나타난다고...


생각이 무섭다는 거,

나 아까도 실감한 거 있죠?


내가 알게 모르게 프레임을 씌워 놨더라고.

'당신은 잔소리가 심한 사람'. '나에게 매번 지적하는 사람'. 그래서인지 여보가 뭐라 할 때마다 예민하게 발끈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부딪히기도 많이 한 거 같아.


그래서 나, 당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보려고.

우선은 혼자 맘대로 해석해서 듣는 것부터 알아차리고, 그대로 보도록 해볼게."


"그렇다니까? 툭하면 당신은 꼬아 듣더라고.

그러면서 잔소리한다고 뭐라 하고..."


그렇게 말하지만

성철은 아내가 고맙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해석은 제각각이며,
우리는 그 해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비슷한 화가 계속 생긴다면
그 안의 신념을 들여다봐야 한다.

넷이 모인 저녁, 대화의 요점이었다.


오늘 아침 팀장과의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팀장의 말은

'빡빡하게 굴지 말고 술 한잔 하자.'가 다였다.


'자기한테 잘 보이라는 건가?

만년 과장이라 무시하는 건가?

이 놈의 회사가 문제다... 등등

나머지 꼬리를 이은 생각

성철의 주관적인 스토리일 뿐.


그러면서 성철은

'팀장은 무능하며 자신의 안위에만 신경 쓴다.'

'불합리한 회사에서 버티려니 억울하다.'

는 자신의 신념을 발견했다.


안전감 소속감을 지켜야 한다는

오버스러운 두려움도 알아차렸으며,


그렇기 때문에 비위를 맞추려 써버릇한 가면이

영 불편했음도 깨달았다.


'팀장, 표정이 또 별로잖아.

내가 마음에 안 드나?

그러는 당신은 뭐...

피차일반이야. 당신 스타일이 영 불편하다고!'


성철은 솔직한 자신이 튀어나올까 전전긍긍했으며, 묻지 않아도 일일이 변명하고 설명하고... 그러고 나서 겉과 속을 다르게 만든 상황을 원망했다.


팀장과 회사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그렇게 판단하고 규정 지은

자기 자신이다.



"여보, 왜 그래?

표정이 안 좋은데?"


"어, 아냐. 오늘 아침 일이 생각나서...

생각해 보니 팀장이 그냥 한 말을

내가 오해한 부분도 좀 있는 거 같아."


"그랬어요? 어쩐지... 퇴근할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 그래서 이런저런 눈치를 보다 보니 나도 당신 말 한마디에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거야. 눈치 보게 하상황이 싫었거든."


"흠... 나도 그런 게 있긴 하지. 회사 생활하면서 눈치까진 아니지만 표정 관리를 안 할 수가 없잖아. 그게 좀 짜증 나니까 신경 쓰게 하는 사람들이 다 싫더라고."


인영이 미소를 지었다.


"맞아. 찜찜하거나 기분 나쁜 일은 소소하게 일상다반사지.


난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애들 데려다주고 커피 한 잔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테이크아웃 하려고. 그런데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했나 봐. 커피가 나왔길래 당연히 내 건 줄 알고 유유히 들고서 자리를 떴단 말이지.


그런데 바로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저기요! 제 건데요?"


하는 거야.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떤 여자가 눈을 흘기고 있더라고.


당황해서

"아고, 죄송합니다."


하는데 사과는 받아주지도 않고

돌아서서 가는데,

뒤통수가 왜 이리 따가운지...


민망한 상황

속상한 기분

후회와 원망


그런데 그 기분을 계속 끌고 와봤

아무 움이 안 되잖아.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상황 자체 보단 스스로 부족함과 빈틈을 보이는 걸 너무 싫어하다 보니 과장하고 부풀려 두려워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밀어내고 저항하고 싶어지는 거지. 오늘은 확실히 그런 감정들이 너무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었어.


객관적인 부분은 내가 실수를 했다는 것 밖에 없어. 그 외에 민망하고, 불편하고, 짜증 나고, 모두 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지. 주관적인 부분에 빠져 깊이 파고드는 건 계속해서 스스로 고통을 만드는 일이야.


자세히 보면 상황과 감정 사이에 ‘판단’이 들어가 있더라고.


벌어진 상황이야 어쩔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거.

그게 진짜 중요한 거 같아."


"그렇긴 하지.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받는 이유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이지.


내가 당신에게 자주 하는 말 있잖아. '눈치 보지 마라. 남들 평가에 연연하지 마라' 어차피 사람들은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거든. 매사에 자기가 모든 일에 중심에 있다는 착각이 여러 문제를 만드는 거 같아."


"그러게, 당신 말을 듣는데 그런 생각이 드네.

남들이 비판한들 칭찬한들

그게 나의 진실과 무슨 상관인가? 하는...


나 자신에게만 떳떳하면 되겠구나.

굳이 다른 사람의 판단과는 연결 지을 필요가 없겠구나.


다른 이가 뭐라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분석하려 하지 말자!


자기 자신만 신뢰하고

자신의 일만 책임지면 된다!


와, 너무 좋은데?"


인영은 뭔가 털어낸 듯 말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잔소리쟁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러고 보면 나도 팀장에게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었고 그런 고정관념이 건드려질 때마다 화가 났던 거 같아. 너무 싫어하는 걸 또 하니까.


고정관념과 기대가 많을수록 화가 날 일은 많아지겠지. 그러니까 화가 덜 나려면 ~ 해야 한다. ~하지 않아야 한다. 는 규정은 적을수록 좋겠네.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신난 인영이 말을 받는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여유를 주고, 받아줘야

상대에게도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더라고.

 내가 포용하는 범위만큼 나의 세상이 편안해지는 거지.


현실은 내면을 거울이라하잖아요. 내가 확실히 경험했어. 내가 먼저 변하니까, 그렇게 변하지 않던 당신도 자연스럽게 달라지던데?!"



그날 밤

성철은 누워 생각했다.


유난히 화가 치솟는 순간이 있다.

볼 때마다 못마땅한 모습도 있다.


누구나 한 두 개쯤은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평온한 상태에서 떠올릴 때는 '그래, 그런 게 있지~' 하는 정도지만...  막상 현실에 닥치면 그리 단순하진 않다.


스트레스받고. 불편하고. 짜증 나고. 어떡하지… 화가 나, 서러워… 속으로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부정적 생각은 더해져 극단으로 치딧기도 한다.


고정관념과 기대!

유독 나에게만 싫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과

내가 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어쨌든 과거는 과거지.

그 과거가 부정적인 판단과 미움을 만들었다.


상황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반응할지가 중요하다.

어차피 내가 결정하는 거라면...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저 사람은 저렇다'라고 낙인찍을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그게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미운 모습, 불만스러운 모습을

계속 떠올릴 필요가 없겠다.

아름다운 것들, 긍정적인 모습,

장점을 봐줄 수도 있겠다.


말이 쉽지, 생각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소중한 내 인생,

편안한 일상을 위해!





이전 16화 근본적 결함 그리고... 수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