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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Apr 04. 2024

섭대천(涉大川), 큰 내를 건너다.

#17. 다시, 준석


"선배, 선배는 현재 자신에게 점수를 주라면,

점을 있을 것 같아?"


"글쎄... 그렇게 질문하니 

더 고민해 봐야 알 것 같지만... 

한 50점?"


"엣, 그렇게 낮아?"


"이게 낮은 건가?

넌 몇 점인데?"


"음, 난 89점 정도?! 어디서 본 건데 이렇게 질문해 보면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이 3분의 2 정도 된대.


능력이나 외모나... 솔직히 누가 봐도 괜찮은 선배가, 자신에게 너무 팍팍한 거 아냐? 가만있자. 이걸 자존감이 너무 높다고 봐야 하는 건가? 아, 아니다... 그 반대인 건가?"


"흠, 이게 그렇게 연결되나?"

모르겠다."


...


"오늘 과장님 댁에서 참 좋았지?"


"응."


성철 부부와 함께 넷이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석과 지민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혼자의 시간,

준석의 방.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고 얼마 못 가

다시 눈을 떴다.


'오늘 너무 많은 얘기를 해서 그런가?'

잠이 오지 않는다.


불편함을 외면하지 말라는 인영의 말이 떠올랐다.

누운 상태로 몸과 마음을 가만히 느껴보았다.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까와 비슷한 질문을 다시 던지자


곧이어


'측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뭐지? 

측은하다라니...


당황스럽다.


내가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더욱 당황스럽게,

순식간에 눈물이 찼다.


스스로를 측은해하는 자신이 측은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누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하다.


막연한 이상을 접고 취업을 하긴 했지만

부모님과 자신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


준석은 여전히 자신을 패배자로 보고 있었다.


이래저래 제일 만만한 건

싸고 굴리기 좋은 몸뚱이였다.


더 잘하라고,

이것밖에 못하냐고

틈을 주지 않고 채찍질했다.


나는 왜 이리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걸까?


뭔가 건드려진 건지,

'존중'이란 단어가 아프다.


아프면서도 시원하다.


잠자리에 들거나 아침에 일어날 때

가끔씩 준석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거나

알 수 없는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


모호하고 어두운 회피보다

밝은 고통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말하는 것 같다.

이제 두려움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가 왔다고.


준석은 무언가 결심한 듯 침대에서 일어나

조명을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지민이 알려준 것처럼,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마음을 쏟아보기로 했다.


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부족하다 느끼게 하는가.


여전히 하나를 틀리면 울었던,

자기가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재수 없는 김준석의 기질이 남아있는 건가.


대체 나는 언제쯤 나를 인정해 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높은 기준과 잣대를

언제까지 들이밀고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칠 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그래.'


그래,

더 잘할 수 있는데... 는 달콤한 유혹이다.


인정해 주는 척 다그치는

그런데도 그 살짝 알아주는 느낌이 좋아서

스스로에게 더 잘하라는 말을 속삭이곤 했다.


'맞아.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사실 욕망을 버리기 싫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거기까지 쓰던 준석은 타이핑을 멈췄다.

 

잠시 더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고,

그러다가 순간

지민이 자주 이야기했던

 '집착'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욕망이 나쁜 게 아니라,

'집착'하는 욕망이 위험한 거라고.


그래,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말은

진심 어린 나를 찾으란 의미이지

포기하고 목표를 낮추라는 게 아니다.


욕망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라는 달콤한 보상

더 나은 나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지만

그 보상이 정말로 만족스러웠던 적이 있었나?


만족하기보단 더 진실한 무엇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공허함은 갈수록 커지는 듯했다.


그래... 그렇게 집착했던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바로 덜어내야 할 환상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나에게

성공은 멀게만 느껴졌고,

나는 항상 목말랐구나.


집착을 비우면

그렇게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아도

성장은 자연스러운 것일 테니,

 

그래. 고통에 빠뜨리고, 갈기갈기 찢고, 사랑인척 나를 갖고 놀고, 넌 특별해라고 속삭이며.... 어장관리하는 그 거짓 욕망... 그것만 제발 그냥 놓아줘보자. 


못나든 잘났든 성공하든 하지 않든 그대로의 날 사랑한다는 말, 그 품을 기억하자. 진짜 사랑에 안기자.


돌아보면 나는 늘 자신에게 가혹했지.

설사 남들이 나에게 낮은 평가를 할 망정

적어도 나는 스스로를 격려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름대로 진심으로 노력해 왔는 걸

난 왜 이리 늘 나를 낮은 점수 취급했던 걸까?


측은한 사람.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 쓸

나의 스토리. 


그러면서 준석의 머릿속에 하나의 문구가 떠올랐다.


동틀 녘이 가장 어둡다.



7년 후,

준석은 모교의 졸업식 연설대에 섰다.


지민에게 준석은

언제 봐도 번듯한 남자친구였지만

오늘따라 여유 있는 모습이 더욱 멋져 보인다.


준석이 첫 회사에 입사하던 때쯤 만났으니

그 사이 준석도 지민도 참 많이 달라졌다.


연설이 시작되고,

편안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웅성웅성하던 졸업식장이 조용해졌다.





그 좁다는 취업문을 비집고 들어가
그 어렵다는 평범한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했고
더 이기적이어야 했고
더 자기중심적이어야 했습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쉴 틈 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공허함을 잊기 위해
나다움을 찾았습니다.

그래야 자존감을 지키며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열심히 하고, 간절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믿었기에

더 열심히 하지 못하고
더 간절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무리 채워도

갈증은 여전합니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확언을 하는 것도
루틴을 체크하는 것도

서서히 의욕을 잃고

수없이 그렸던 미래에 대한 계획은 멋지게 준비 태세를 갖추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발을 묶여 옴짝달싹할 없는 상태에 와버렸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다시 또 그런 그런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껏 길들여진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데는


알에서 나오고
누에고치를 벗어나는
고통이 따릅니다.

말 그대로

기존 세계의 붕괴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죠. 


바닥을 치는 패배감과

무력감을 경험하고서야 저는,


이제까지 해왔던 무마와 회피의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때가

진짜로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도록

요구받는 시기였습니다.


새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은


원망도 자책도 아닙니다.

억지로 뭔가를 더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과 실패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용기.

부족하고 열등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기.


부질없는 욕망에 집착하는 나와

무기력과 자책으로 혐오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싸 안는 사랑.


이런 것들이죠.


이전까지 밖에서 구하던

사랑과 인정을

제 안에서 발견한 순간


그때서야 비로소 저는

타인을 사랑하는 위치에 설 수 있었고,

제 인생의 주인이 된 기분을 느꼈습니다.


지금의 저는

든든한 무기를 가진 듯합니다.


힘들었던 시간이 준 선물.


어떤 상황이 닥치든

잠시 혹은 한참 동안 흔들리겠지만 


지켜보고 가라앉길 기다리며

언제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감정을 다스리는 자신감은

그 어떤 자신감의 원천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캄캄한 암흑이라고 느껴진다면,

변화를 요구받는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골짜기가 깊을수록

산은 높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는 두려움을 지켜보고 품을 수 있는 

더 큰 존재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는 여러분에게

인생은 알 수 없어 더욱 아름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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