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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Jul 03. 2024

여전히 화를 내고 미워합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나를 받아들이게 된 것뿐입니다.

1.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일과

2. 결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어느 게 더 울까요?


2. 모자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보단

1. 이 두려움에서 저 두려움으로 옮겨가기가 훨씬 쉽지요.


순식간에 닥친 어긋난 상황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은 가치의 배신

숨기고 억눌러온 나에 대한 투사

내 안의 그림자를 보는 괴로움


모든 것이 나로 인해_

내가 여기 있음으로 발생함을 알고서도



여전히 화를 내고 미워합니다.


...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나를 받아들이게 된 것뿐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실체를 알아버려서

이제는 더 근사하게 꾸밀 자신이 없다고

그래봤자 다시 돌아오는 게 너무 명백해서

이제는 더 결심도 못하겠다고


징징대며 놓아버린 후

쏟아진 은총이 너무나 커서


여전히 화를 내고 미워하지만

부족한 내가 이런 글을 씁니다.


자포자기하여

못난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니


아무런 기준도 없었다네요.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하네요.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사랑이래요.


내가 알던 시시하고 뻔한 사랑이

참 사랑에 깜짝 놀라 눈물 흘려요.


받아들여졌음을 받아들이니

평범하던 일상이 평범치 않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가 차

신비로운 섭리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삶은 이미 그러했는데

내가 변하여 이제야 보이게 된 거죠.


그토록 오지 않던 변화가

이제야 저절로 주어졌나봐요.

그러나 이마저도 크게 기뻐하지 않아요.

또다시 미워하고 화를 내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비 갠 후 하늘의 구름은

여느 때와 달리 빠르게 지나갑니다.


나뭇잎은 흐린 하늘을 따라

세찬 바람에 몸을 맡기고


다시 또 내리는 비를

그 자리서 가만히 받아들입니다.


여전히 화를 내고 미워하지만

비 갠 후 구름처럼 지나갑니다.


세차게 흔드는 비와 바람에도

그 자리에서 선 나무는

아무런 불평도 기대도 없습니다.


태양은 원래 거기에 있었습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태양이

지나는 구름 사이로 찬란하게 쏟아집니다.


흐렸다가 맑았다가

그렇게 작은 나무는


자신을 키워

하늘에 닿아갑니다.





* 작업 중인 '안 멀쩡한 날 보는 책(가제)' 2. 화(火) 편에서 가져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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