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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an 23. 2024

첫 출근 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나무 씨의 취업 도전기

   첫 출근 했습니다.   

   

나무 씨는 대학을 6년 다녔습니다. 의대에 다닌 것이 아닙니다. 뇌질환을 가지고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기초 학력이 부족했습니다. 20살을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할까? 어떤 일상의 규칙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 가족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은 대학 진학이었습니다. 사회성 훈련의 목적이 가장 컸고, 나무 씨도 소속될 커뮤니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고졸 검정고시로 고등과정을 마친 상태에서 갈 수 있는 대학은 많지 않았습니다. 나무 씨는 집에서 가까운 전문대학과 지방 종합대학교를 방문하여 비교하더니 지방 종합대학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는 사립 종합대학교였습니다. 나무 씨는 이 학교에서 산림조경학과를 다녔습니다. 곤충과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무씨의 적성을 고려하고, 나무를 공부하는 것이 나무 씨의 질병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학교 생활은 소속될 곳이 있다는 점에서 즐거웠고,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힘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업과 지방-서울을 매주 오가는 생활도 어려움을 더했구요. 그래도 나무 씨는 학교를 끝까지 다녔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그다음엔 또 무엇을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나무 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자전거정비학원에 다니며 자전거정비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제과제빵 학원도 다녔지요.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여러 번 면접을 보았지만 모두 탈락이었습니다. 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 채용에도 여러 번 응시했습니다. 서류 통과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무 씨는 실망했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사실 통과했어도 걱정이었습니다. 하루 12시간을 자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나무 씨가 하루 3교대 근무를 하거나,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진료시간, 교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젠 취업이 걱정입니다. 집에만 있을 수는 없고, 사회재활을 하려면 뭐라도 해야 하고, 어디라도 가야 할 텐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교수님은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돈을 벌면 많은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진료 다음날, 무턱대고 지역센터에 갔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사례관리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매주 상담을 받고 있던 어느 날 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시 공공일자리로 일하는 정신장애인 바리스타 채용에 지원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시립병원 내 카페에서 일하는 기회였습니다. 당장 바리스타 자격증과 센터 추천서를 첨부하여 서류를 접수시켰습니다. 서류통과, 그다음은 면접이었습니다. 면접위원 3명에 응시자 4명씩 면접을 보았습니다. 경쟁률은 4:1, 일주일에 6시간씩 6개월 동안 일하는 자리인데도 경쟁률이 높았습니다. 면접 결과는 불합격, 높은 경쟁률을 뚫기에는 나무 씨의 준비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나무 씨는 낙담했지만 서운함을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무 씨가 예비합격자였는데 자리가 생겼으니 다시 면접을 보러 오겠냐는 연락이었습니다. 나무 씨는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작업치료사의 작업성 검사가 끝나고, 출근이 결정 났습니다. 나무 씨는 안전교육을 8시간 수강하고, 통장사본을 준비하고,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 발급을 신청했습니다.


드디어 출근하는 날, 손톱을 깨끗하게 깎고 샤워를 평소보다 오래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나무 씨는 출근을 했습니다. 2시간 동안 음료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퇴근한 나무 씨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퍼졌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도 잘 가르쳐 주고, 함께 일하는 공익근무요원과 역할을 나눠서 일을 했는데 분위기가 좋다며, 다음에는 설거지를 더 잘해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나무 씨는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독립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속도로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 2024년 1월 19일 첫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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