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더 당당한 삶을 응원합니다 ”
『몸과 여자들』 / 이서수 / ㈜현대문학 / 2022
“저는 1983년생입니다.
그런 탓에 이 사회가 여성의 몸에 얼마나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누구보다 잘 알지요.
물론 1959년생인 저의 어머니보다야 훨씬 나은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작금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조리한 억압과 불평등에 짓눌려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이 서수 (1983~ ), 한국의 소설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동아일보』로 등단했으며, 장편 소설 『당신의 4분 33초』,『헬프 미 시스터』가 있다. 〈황산벌 청소년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고백을 들어야 하나?
살아있는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에 관해 쓰는 것이 미안하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생각하니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나 생각한다. 노벨상 받은 외국 작가는 어차피 연결도 안 되고 큰 상도 받아 말도 많았으니 딱히 미안할 이유가 없다. 하여간 이 작품은 작가가 우리 말로 썼음에도 제대로 읽었는지 확신 없어 양해를 구한다.
이 작품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와 3부는 ‘나’의 고백이다. 1부에서는 과거의 ‘나’를 3부에서는 현재의 ‘나’의 삶을 이야기한다. 중간에 들어 있는 2부는 1959년생인 엄마 ‘미복’의 고백이다. 두 사람의 화자가 번갈아 가며 자기 삶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딸의 고백에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엄마의 고백은 딸에 대한 당부로 끝난다. 그렇게 괜히 끼어있는 2부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혼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엄마,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두 명의 화자는 단 한 번밖에 하지 않을 내밀한 고백을 하며 정중히 요청한다. 가만히 들어달라고. 귀 기울여 들어달라고. 독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개인적이며 때론 부끄럽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고백을 먹먹히 듣는다. 한번 시작된 고백은 멈출 수 없고 듣는 자가 평가할 수도 없다. 가만히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삶이 그리 흐른 것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시대는 계속 변하니까요. 지금부터 행복하게 살아요.
1983년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83년생입니다. 그런 탓에’라는 대목에서부터 걸린다. 1983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 사회가 1983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만 더 냉혹했나?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맨 앞에 있다. 그들은 이제 마흔이다. 젊은 여성이라 말하기엔 조금 나이가 들었다. 그들의 청소년기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 IMF 경제 위기로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겪었다. 사회 체제에 희생되기보다는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 치는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첫 세대다. 거기에 여성의 인권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시기였다. 엄마나 주부라는 위치를 벗어나 ‘여성’이 탄생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은 체계 없이 학습되는 시기였다.
결국, 1부의 고백은 학습의 역사다. 변화와 혼란이 함께 하던 90년대,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이다. 지나치게 마른 몸 때문에 여학교에서 소외당하고, 타인(특히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다. 첫사랑과 첫 경험은 낙인처럼 상처로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도 강간이 되었다. 그 이유가 자신과 몸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결혼하자 남편은 의무적인 섹스를 요구한다. 시부모는 아기 낳기를 요구한다. 결국, 더 ‘나’의 몸을 의무적인 섹스나 출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한다.
첫사랑 남자와 결혼했던 남자, 남성들이 섹스와 여성의 몸을 대하는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화자의 묘사에 따르면 적어도 인성이 나쁜 놈들은 아니다. 배워 먹지 못한 놈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 육체적 관계를 해야 하고, 결혼하면 일주일에 두 번씩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다. 그리고 그런 요구에 응하는 것이 여성의 의무라는 태도를 보인다. 성 개방의 시대인 90년대를 거치면서 남성들은 여성과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가부장 시대의 책무를 터부시하면서 더 교묘하게 여성들에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확연히 다르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학습되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듯하지만 그 끝에 어떤 만남이 있을 것인지 멀고 답답하기만 하다.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모든 억압에 저항하고 있지만, 해방의 끝을 모른다. 그래서 계속 앞으로 나갈 뿐이다. 남성은 몸과 섹스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권력과 인정받음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개화된 세상에서 그 평행선은 좁아지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다. 주장하는 여성들을 몰아가면서.
회고, 또는 고백의 관점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이 과거를 회고하면서 정리하는 에피소드는 대개 가족 사랑, 성공의 밑거름, 고마운 사람, 첫사랑,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자기만의 여정 그런 것 아니겠는가. 2부에 기술된 엄마의 고백만 따로 놓고 보면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작정 상경, 봉제 공장, 유흥업소, 동거를 거쳐 유일한 탈출구로서의 결혼까지, 근대화 시기에 교육받지 못한 여성이 살아낸 인간 극장 스토리다. 그렇지만 그것이 1부의 이혼한 딸과 연결되며 ‘여성의 몸’으로 관점을 바꾸면 단순히 ‘기구한 운명 또는 팔자 센 여성’이라는 감상이 시대의 폭력, 남성적 시각의 문제가 보인다. 두 세대의 대화를 통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혼동되고 착취되었는지 알 수 있다. 엄마와 딸은 다른 몸을 갖고 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남성들의 눈길을 받는 몸을 가졌고 그것을 감추며 살았다. 너무 마른 몸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 딸과는 다르지만 ‘몸’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같다. 평생 관습에 충실한 삶을 살았지만, 달로부터 ‘몸’에 관한 고백-섹스에 관한 고백을 들었을 때 이해할 것 같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그저 이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가길.
내 몸은 내가 결정한다는 식으로 정신과 몸을 분리할 순 없다. 나의 몸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내가 곧 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내 몸을 보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보는 것이다. 이 작품에 덧붙여서 하고 싶은 말은 타인의 시선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이다.
다음 단계를 위한 시간
그렇다면 그 시대의 젊은 여성들은 억압과 불평등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1959년 태어난 어머니 세대와 비교해선 훨씬 나은 환경에 있고 학습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해서도 주체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타인의 시선을 계속 신경 쓰며 피해 의식이 나타나는 묘한 지점이 있다. 요리 강좌에서 만난 두 여성은 결혼과 섹스에 관해 또 다른 가치관을 전한다. 결혼을 앞두고 예민한 신부, 섹스도 사랑도 해봤지만 재미없다는 언니, 그 상이에서 억압과 해방의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끝없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고백체로 기술된 이 작품이 단순히 한 사람의 과거 기록이 아니라 몸이라는 관점으로 쌓아나가는 여성의 서사, 1983년생으로 대표되는 세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작가의 다른 작품 『젊은 근희의 행진』에는 이른바 관종 여동생이 등장한다. 오프숄더 클리비지룩으로 입고 책 소개를 하는 북튜버인 그녀에게 구독자가 늘면서 덩달아 악플러도 늘고, 집적대는 남자들도 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하는 언니에게 그녀는 말한다.
“언니의 몸은 식민지야. 언니는 왜 우리 몸을 강탈의 대상으로만 봐”
동생은 ‘몸’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아름답다고 표현해주길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몸과 여자들』에서 말하고 싶었던 작금의 젊은 여성들에 대해 부러움이다. 3부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팀장의 행동에 대한 동료 직원의 말에서 그 방향은 다시 나온다.
“팀장이 왜 우리한테만 그러는 줄 알아? 요즘 신입사원들은 잘못 걸리면 난리가 나거든,
어찌나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지 살벌해서 말문이 막힐 정도야.
근데 우리처럼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여자들은 말이야.
우리는 그런 농담에 수줍은 반응을 보이게끔 학습되어 있잖아”
시대와 학습, 세대에 걸친 학습. 그것만으로 몸을 보는 관점을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을 섹스와 연결하면 여성과 다른 남성의 시선도 있고, 결혼과 출산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도 있다. 결국 ‘여자의 몸’을 이 작품 하나에서 정리할 수 없다. 처음에 밝힌 대로 그들의 내밀한 고백을 존중하고 인정할 뿐이다. 다양한 생각과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지만, 엄마는 딸에게 언니는 동생에게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내 몸에게 당당하기
사실 몸에 대해 말한다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건강이다. 건강한 몸으로 노동을 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우선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생활 체육이나 몸만들기 트렌드에 긍정한다. 물론 지나치게 과시하는 바디 프로필이나 노출 북튜버엔 살짝 거부감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남성적 관점, 낡은 세대의 편견을 드러내는 것 같아 찝찝하기도 하다. 그렇게 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교차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자신의 내밀한 고백을 들려준 섹스를 싫어하는 30대 이혼녀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 지나간 시간에 자신을 보는, 자신의 몸을 보는 시선에 갇혀서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이제 당당하게 비록 혼란스럽더라도 행진하라고 권하고 싶다. 젊은 동생을 응원하듯 모두가 응원하는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