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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Aug 22. 2024

다시 읽고 쓰고 둔다

봄에서 여름으로

 

   교차로 빨강 신호등 앞에 섰을 때 문득 다가오는 - 얼굴. 파란 불로 바뀌는 순간 앞으로 치고 나간다.

다음 신호등에 다시 멈추지만 생각은 연속되지 않는다.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다음 주에는 써보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 주가 서너 번은 지난것 같다.


   그림자. 모든 기억들은 그림자를 매달고 다닌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밟지 않고는 코너링이 안될 정도다. 이번 계절의 독서 목록에는 유난히 그림자가 긴 작품이 많았다. 생활 반경이 그림자로 채워지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정리할 때마다 그림자를 세 치씩만 잘라내기로 하자. 평생을 써 왔던 수법이다.


언젠가는 쓸 것이야. 다만 지금은 쬐끔 바쁘거든.

게으를 뿐이야. 내가 여기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부지런해지려 노력했다는 변명이다.




   여름은 다 지나가는데 다시 한무데기가 쌓여있다. 책과 만난 흔적들이.

이번에는 목록에 있는 책을 다 읽지도 못했다. 책의 두께도 시대 배경도 훨씬 무거워진 작품은 포기했다.

편하게 읽고 쓰고 마무리하기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에 비해 쓰는 글은 변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등장 인물을 이해하고 작가의 의도대로 감상을 적는 패턴이 반복되자 쓰는 것을 미루기 시작했다. 쓰는 것에 대한 강박으로 읽는 것도 시들해졌다. 읽고 나서 기억하는 것은 대강의 줄거리뿐 생각을 놓쳤다. 그림자만 붙들고 있는 꼴이었다. 일방적으로 책의 내용을 쑤셔넣고 있었다. 두 줄을 쓰고 다음을 생각해보면 항상 같은 글을 쓰는 느낌이었다. 걸림없이 흘러가는 듯한데 읽어보면 마무리가 없다. 제자리 걸음. 그림자 놀이.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부지런히 읽고 쓰다보면 그림자 아래 인연들이 살아나 말을 걸어 오리라. 내 옷장의 흐트러짐보다 내 차의 스크래치보다 더 자주 생각하고 걱정하고 보고 싶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지금 우리 모두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에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떠나자고 재촉하리라. 그렇게 그림자를 줄이는 작업을 하며 가을을 시작한다.




  함께 책 읽는 사람들이 다시 책을 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지들이 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작품에  사람이 달라붙었다. 닮은 듯 다르게 보는 시선이 흥미롭다. 예전에 합평하며 보았던 글이지만 책으로 읽으니 느낌이 다르다. 동지들의 성장이 보인다. 나만 제자리인가.  


 어느새 15명이 된 우리 모임의 작가들이 18권의 책을 읽고 쓴 그들의 인생이야기. 더 많은 책을 읽었지만 아쉽게도 분량이 넘쳐 누락된 이야기 까지. 그들과 나, 우리는 계속 책을 만든다.


  책 만드는 과정에서 다듬고 공감하며 즐겁게 한 꺼풀 성장했다면 충분히 목표 달성이다.

그렇지만 어딘지 아쉬움도 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가진 독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다.함께 하자고.

 

혼자서는 안 읽었을 책들 :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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