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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그 집을 얻어, 말어?

8월 3일 월요일에 또 다른 두 사람이 집을 보고 나면, 4일 화요일에 프라이에 숄레 측에서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 집을 과연 내가 얻을 수 있을까?

또 만약 내게 기회가 온다면 그 집을 얻는 게 맞을까?

주말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집을 얻었을 때의 장점은,



1. 교통이 편리하다.



U-Bahn(전철) 역이 걸어서 5분 이내, 버스 정류장은 걸어서 3분 내에 위치하고 있다.

U-Bahn 역에서 두 정류장이면 시내의 모든 노선이 교차하는 중앙 기차역 Bahnhof에 도착하니 아주 편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류장의 버스는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부터 지금 살고 있는 보호소까지 지나는 버스로, 버스 노선 중에 가장 익숙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보호소를 나가도 때때로 도움이 필요할 때 들리기 위해 이용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친구들이 사는 동네에 놀러 갈 때도 역시 편리하다.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까지 다닐 수 있는 아기 모임도 걸어서 10분 남짓이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버스 한 종류, 우반 두 종류 총 두 번의 환승을 통해 다녔던 곳이다.



2. 마트가 가깝다.



시내 중심을 빼고는 역세원이라 해도 한국처럼 쇼핑센터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드문데, 이 곳은 특이하다.

Rewe마트와 생필품을 파는 DM, 약국, 유기농 제품을 파는 Bio 마트가 밀집해있다.



Aldi나 Lidl, Netto 같은 할인마트가 아니라 좀 아쉽다. 그런 할인마트에서는 최소한의 기본 채소, 과일, 물건만 파는 대신 저렴하기 때문이다. 레베 마트는 훨씬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브랜드를 팔지만 비싸다.



보통 할인마트에서 기본 생필품과 먹거리를 사고, 좀 특이한 제품은 다른 마트를 다시 가야 하는데 레베가 있으면 다 살 수 있다. 비오 마트도 웬만해서는 거의 없어서 이 근처에 살지 않는 친구도 내가 이사 올 이 동네 비오 마트까지 다닌다고 했다.



아기를 키우니 약국과 데엠이 가까운 것도 유리하다.

빵집도 가까우니 아침마다 이랑 걸어서 빵을 사러 가기도 좋다.



3. 위아래로 큰 근린공원이 3개나 된다.



작은 풀밭이야 여기저기 깔려있지만 녹음이 푸르른 공원은 이 도시 내에서도 드물다. 가까운 큰 공원이 마트 뒤편에 바로 있다.



그리고 근처에 큰 연못이 딸린 길쭉한 산책로가 또 있다.

그리고 더 왼쪽으로 올라가면 엄청 큰 공원이 또 있다.



지난주에 아이랑 미리 동네를 파악하러 집 근처를 다 돌아다녔는데 음... 자연은 언제나 옳다.

이사 가면 매일 그런 공원으로 산책할 수 있다니!

시내 중심에 살면서도 녹음을 맘껏 즐길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다.



아래 사진은 그 집 주변을 답사하러 갔다가 조금 전 언급한 근처 연못에서 찍은 사진이다.





4. 한국식으로 3층 집에 개인 지하실이 있다.




물론 독일은 건물들이 낮아서 1층에 산다고 해도 일조권을 침해받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



개인 지하실은 있으면 정말 편하다. 더군다나 나는 3층에 사니까 6개들이 생수를 사다가 한 번에 3층까지 올리는 수고 대신 지하실에 놓아뒀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가지고 올라갈 수도 있다.



5. 교통이 편리하면서도 무척 조용하다.



보통 교통이 편리할수록 대로변에 위치하기 때문에 소음이 크다.

그런데 이 집은 우반역이 위치한 사거리에서 유동차량이 적은 차도 쪽으로 한번 길이 갈린 뒤 다시 주택가로 한번 더 꺾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적막할 정도로 소음이 없는 것 역시 행운이다.

독일은 동네 자체가 고요해서 차가 몇 대만 지나가는 골목에 살아도 소음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6. 집 근처에 유치원이 서너 개 정도 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유치원은 역시 큰 공원 안에 있는 유치원이다.

입학할 수만 있다면 공원 산책로를 따라 매일 유치원 데려다주는 길이 즐거울 것 같다.



7. 독일식으로 방이 세 칸에 모두 정사각형으로 큼직하다.



주방이 작게 빠진 대신 방 세 개가 시원스럽고, 꼭대기층이면서도 천정이 기울어지지 않아 공간 활용도 역시 100%이다.


 

방이 정사각형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집을 보다 보면 한쪽 구석이 마름모꼴인 곳도 있고 삼각형인 주방도 있다.


 

또 꼭대기 집이라 천정이 기울어져있으면 옷장이나 키가 큰 가구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은 공간이 되기 십상이다.



이 집은 그런 면에 있어서 방들이 훌륭하다.



8. 바닥과 벽, 창문이 깔끔하다.



오래된 집은 바닥도 지저분하고, 벽이나 창문도 낡았다.

바닥 자재도 좀 중요한데 진짜 나무 바닥이면 보기야 멋스럽고 발 닿는 느낌도 좋지만, 관리가 까다롭다.



주방이나 욕실, 복도까지 타일 바닥인 집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타일 정말 싫어한다.

청소가 깔끔하게 되지도 않고, 차갑고, 아이가 넘어질 때도 심장이 철렁한다.



벽에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하는 집이면 돈과 시간이 들 테고 창문이 낡으면 겨울에 춥고 난방비도 많이 나온다.

이 집은 방과 복도까지 어두운 색깔의 PVC 바닥이라 보기에도 깔끔하고 청소도 용이할 것 같다.



9. 화장실에 욕조와 창문이 있다.



화장실에 창문이 있는 집에 살아보면 창이 안 난 화장실은 꺼리게 된다.

목욕 후 습기나 냄새도 잘 빠지고, 곰팡이도 안 슬고, 쾌적하고, 밝아서 등을 안 켜도 되고 여러모로 참 좋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대부분 집에 없었던 게 욕조다.

아마도 우리가 구하는 방 사이즈가 작다 보니 자연스레 욕조 대신 샤워부스를 둔 집들이 많았던 것 같다.



욕조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지만 아기 키우면서, 더구나 나처럼 혼자서 샤워를 할 수 없는 아기 엄마들에게 욕조는 아기와 둘이 즐겁게 목욕을 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날릴 수 있는 행복한 힐링 수단이 된다.









장점이 이 정도라면 단점 역시도 분명했다.



1. 방 하나에 바닥재가 깔려있지 않다.



이거 하나 만으로도 이 집을 포기하는 세입자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바닥 자재도 직접 골라 사야 하고, 스스로 못 깔면 기술자를 불러야 하는데 그것도 돈이다.

인건비가 비싼 독일에서 스스로 뚝딱뚝딱할 수 없다는 말은 곳 돈이 든다는 뜻.



자재나 방 크기에 따라 견적은 달라지겠지만 제일 싼 걸로 깔아도 보통 이 정도면 30만 원 이상 든다고 한다.

자재 값만... 그럼 기술자는? ㅜㅜ


 

바닥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2. 아기와 짐을 이고 지고 3층을 날마다 오르내려야 한다.



아기가 돌이 지날 때까지 3층 집에 살았었다.

누구보다 잘 안다 이 고충을..



직접 경험해본 바, 마트가 걸어서 20-30분 거리라 장보기 힘들었던 교통의 불편함보다 아기와 물건들을 이고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게 더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예전에는 팔다리에 힘이 빠지든 말든 아기를 내려놓을 수 없어 죽어라 품에 안아야 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이가 많이 커서 어느 정도는 스스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고려해볼 만하다.



3. 화장실 타일 색깔이 촌스럽고, 수도꼭지가 찬물, 더운물 따로 나온다.



이건 뭐 내 상황에서 그야말로 배부른 투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레몬색도 아닌 뉘리 끼리 하기도 하고 연둣빛도 도는 난감한 타일 색깔에 칼크(석회)가 잔뜩 낀 낡은 수도꼭지. 게다가 찬물, 더운물 따로 나오는 옛날식 수도..



남편이 이 집을 봤다면 단번에 No였을 것이다.

화장실에 좀 집착 비슷한 결벽증이 있어서 다른 게 다 괜찮아도 화장실이 좀 촌스러우면 죽어도 싫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상관없었다. 뜨거운 물만 잘 나온다면 이 정도쯤이야..



4. 발코니가 없다.



애석하다.

교통과도 맞바꾸고 싶을 정도로 소망하던 게 발코니였는데...



그래도 발코니 있는 집이 나올지 말지도 모르고, 그 마저도 기약이 없는데 발코니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교통이 너무 아까운 집이었다.



모든 게 다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5. 치명적인 단점. 정말 코딱지 만한 주방.



사실 다른 단점은 다 괜찮다.

그런데 선뜻 결정하기가 정말 망설여지는 부분이 바로 주방이었다.



얼마나 작냐 하면, 문 두 짝 달린 싱크대 들어가고 헤아트(레인지) 들어가면 발 디딜 틈 말고는 아무 공간이 없어 보였다.



주방은 정말 중요한데... 방은 작아도 상관이 없으나 주방 만은 정말 넉넉하기를 바랐는데...

냉장고는 절대 못 들어간다.


 

냉장고가 급한 게 아니라 식기세척기를 꼭 넣어야 하는데..

그 무엇보다 나는 식기세척기가 정말 절실한데...

주방 때문에 나는 이 집이 나에게 돌아와도 도저히 계약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아까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동네는 조금 별로였으나 발코니도 있고 화장실도 아주 신식에 깨끗한 새 집이 나왔다.



급하게 전화를 걸었지만, 금요일 오후라 담당자가 없다고 했고 나는 다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월요일에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화요일에 테아민을 잡았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 날이 밝자마자 부리나케 회사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나갔고,

대신, 내가 지난주에 찜 했던 저 집이 나에게 돌아왔다고 했다.



오!

그 말은, 내가 원하면 저 집이 내 집이 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순간 엄청난 내적 갈등을 해야 했다.



저 집을..


얻어, 말어?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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