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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이사는 또 어떻게 한담?

하...

산 넘어 산이다.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바닥이랑 주방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미 바닥을 깔아본 사람들 말이, 절대 나 혼자 바닥은 못 깐다고 했다.

적어도 성인 남자 두 명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Baumarkt에 가서 바닥 자재도 골라야 하고, 그걸 또 차로 실어와야 한다.

나는 차도 없고, 바닥 자재 고르는 법도 모른다. 그걸 사 온다 한들 또 어떻게 바닥에 붙이고 마감한단 말인가.

미장이?

내가 살면서 언제,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울 기회가 있었겠는가...



다음은 주방.

주방은 더 골 때린다.

싱크대를 사는 것도 돈이 많이 들지만, 그걸 설치하는 건 돈으로도, 노력으로도 안 되는 거라고 했다.

정말로 수도관을 연결하는 기술자가 와서 제대로 설치를 해야 하는 거라고 Be 말했다.

하... 나는 싱크대를 살 돈도 없고, 기술자를 부를 돈도 당연히 없다.



가구랑 이사는 또 어떻단 말인가.

이사 갈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3층 집이다.

설사 돈이 있어서 가구를 산다고 한들, 어떻게 집까지 가져온 단 말인가.

독일은 가구배달이 공짜가 아니다.

다 돈이다... 돈.. 돈.. 돈....



그냥 돈 몇 푼 주고 사람 쓰지 뭐.

의 수준이 아니다.

이케아 같은 경우는 가구값이랑 배달 값이 같은 경우도 있다.

그냥 돈 두배 주고 배달해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정말 친구 몇이나 가족들끼리 직접 차로 이고 지고 온다.



아무리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다지만, 그들에게 손 벌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바닥이며 주방이며 이사까지 부탁하고 또 가구점 데리고 다니며 이고 지라고 부탁을 할 수 있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한담.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알면 알수록 나는 앞이 깜깜해졌다.









다들 바닥을 직접 까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일반 사람들이 하기도 어려운 걸 지금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직접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라며, 기술자를 쓰게 되면 정부가 됐든 남편이 됐든 둘 중 하나는 그 돈을 내야 할 거라고 했다.

나와 아기 둘이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보호소로 돌아와 나는 다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

이대로 가면 나를 도우려는 내 주변의 선량한 사람들만 피해를 본다.



푹 쉬어야 할 주말 하루를 포기하고 기꺼이 이사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인데, 거기다 바닥이며 주방까지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생각할수록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아직 부부 사이이고, 아이의 아빠인데 왜 그 자식은 새 여자랑 커플 운동화를 신고 블로그에 사진이나 올리면서 룰루랄라 하고, 나는 어린애를 데리고 사방팔방 살아보겠다고 뛰어다니며, 우리를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만 우리 모자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가.



집을 괜히 계약하기로 한 것 같았다.

대책 없이 일을 벌인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다.










결국 나는 남편을 만나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삿날 차도 렌트해서 짐 옮기는 것도 도와주고, 바닥 까는 걸 도와주든지 기술자를 불러주든지 하라고 부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일 아침에 변호사랑 통화해서 그래도 된다는 전제하에.



그가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의 눈을 엄청 의식하는 자식이니 회사로 찾아가 로비에 앉혀놓고 조곤조곤 얘기하면, 아마 그 소심한 성격에 심리적 압박이 어마무시할 것이다.


 

나쁘게 굴 생각은 없으나 안 통하면 그냥 로비에서 사무 보는 아가씨 둘 앞에서 있는 그대로 팩트만 곱게 읊을까도 생각했다.



이 회사에 다니는 내 남편 누구가 상사인 누구랑 바람이 나서 나와 아기를 무일푼으로 쫓아냈고, 그래서 길거리에 나앉게 생겨서 도움을 청하러 온 거라고.

그러고도 정 안되면..



그 연놈들보다 위에 있는 상사를 만나 감정적으로라도 호소를 해볼까 싶었다.

남편이 전에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회사 인사과에 찌르면 자기들 둘 다 잘린다고.

그래서 회사에 이미 내가 의부증 걸린 미친년이라고 밑밥을 깔아놓은 거라고.



이도 저도 안 통하면...

뭐 화요일에 계약을 안 하면 된다.



어쨌든 아직은 내 집이 아니니까.



뒤척뒤척..


나는 밤새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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