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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독일에서 정부보조를 통해 집을 얻는 과정


그 자리에서 대답을 줘야 했다.

Ja oder Nein...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갔지만, 막상 찾아온 기회 앞에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국 나는 오케이를 하고 말았다.

바닥과 주방이 정말 마음에 걸렸지만, 주말 내내 나도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했다.



비프케가 바닥 까는 건 도와준다고 괜찮다고 했으니 일단 내려놓고, 주방 역시도 처음엔 작아서 싫었지만 나중에는, 그 작은 주방에 싱크대랑 가열대만 들어간다면 다른 방 하나를 다이닝룸으로 써도 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분명 주방이 아무리 작아도 기본적인 건 들어가도록 설계를 했을 거고, 그 전 사람도 그렇게 살았을 테니 독일인 친구를 데려가 보여주면 독일 현지에 맞춰 살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거라고 조언해줬다.



그리고 정말 엄마 말대로 비프케는 그 주방 크기에 맞는 작은 주방을 꾸밀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만 믿고 계약을 하기로 했다.









계약을 하기까지 과정이 번거로웠다.

실수할까 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회사 측에서 불러주면,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받아 적어 왔다.



1. 코스텐 위버나메에 대한 베슈테티궁을 잡센터에서 두 장 받아오기.



Kosten übernahme 위버 나메는 떠맡음, 인수라는 뜻이다.

Bestätigung 확인(서), 증명(서)



세 달치 칼트 미테(Kaltmiete/ 난방비 등 잡세를 제외한 기본 월세)가 보통 보증금이 되는데 나는 돈이 없으므로 그 돈을 잡센터에서 내준다는 증명서를 떼오라는 뜻 같았다.



2. 프라이에 숄레 측에서 아이네 안나메에어클레룽을 우편으로 보내면 내가 그걸 받아 서명하고 다시 부치기.



Annahme 수령, 인수

Erklärung 설명, 해석, 성명, 공표, 선언



집을 나에게 넘긴다는 서류를 보낼 테니 확인서명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입주는 원래 9월 1일부터인데 원한다면 8월 16일 날 집 키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집 키를 먼저 받아 집 청소도 하고, 바닥도 깔고, 주방이랑 가구도 먼저 들여놓을 요량으로 16일 날 받겠다고 했다.



프라이에 숄레 측에서는 그것도 잡센터랑 상의하라고 했다.

열쇠를 먼저 받아가면 보름치 월세를 더 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프라이에 숄레에서 나오자마자 잡센터로 가서 필요한 서류들을 떼었다.

그리고 집세를 내는 방법, 잡센터로부터 가구를 얻는 법 등을 물었다.



집세는 잡센터 측에서 직접 집주인에게 내 줄 수도 있고, 잡센터에서 나에게 집세를 주면 내 계좌를 통해서 집주인에게 자동 이체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직접 집세를 내겠다고 했다.

집세가 내 계좌를 한번 거치면 들고 나는 상황을 눈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세가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계좌잔고를 늘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내가 사는 내 집이니 나 스스로 관리하고 싶었다.



8월 16일 입주도 허락을 받았다.



다음 문제는 가구들이다.

나는 아무런 가구도 가진 게 없다.

잡센터 측에서는 내가 기본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도록 가구 구입비를 준다고 했다.



얼마나 될지는 그쪽에서도 잘 모른다고 했지만 대략 1,000유로(대략 130-40만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그 정도 돈이면 중고시장에서 웬만한 가전은 다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바닥을 내가 깔아야 하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했더니, 그 천 유로를 어떻게 쓰는지는 내 재량이기 때문에 가구 살 돈을 좀 아껴서 바닥을 깔라고 했다.



 밖의 여러 가지를 물어봤지만,  집과 돈을 담당하는 잡센터 직원 휴가 중이라 랜덤으로 정해진 직원에게 상담을 받은 것이다 보니, 친절하기는 했지만 뭔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같지는 않았다.










보호소로 돌아오니 보호소의  다른 Betreuerin (베트로이어린/ 담당 직원) Bb나를 불렀다.

 베트로이어린 G 일주일간 휴가 중이라 자리에 없어서 Bb 대신 일을 봐주고 있다.



집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잡센터에 가구 살 돈에 대한 신청을 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프라이에 숄레 쪽에서 편지를 받자마자 바로 계약을 하라고 했다.



오늘이 화요일이니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편지가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사인을 해서 다시 부쳐야 하고, 그 뒤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테아민을 잡을 수 있다.



적어도 금요일 오전 중에 계약서를 작성해야 금요일 오후까지 잡센터에 가서 가구 구입비를 신청할 수 있다.

만약 계약이 늦어지면 다시 주말이 지나고 시간이 가는 만큼 가구 구입비도 늦게 나온다.



감이 없던 나는 멀뚱멀뚱 돈이 나올 때까지 얼마나 걸리길래 그렇게 서두르느냐고 되물었고, Bb 못해도 2주가 걸린다고 했다.



오늘이 4일, 입주는 16일, 이사까지 12일이 남았는데 오늘 신청해도 돈이 나올 때까지 2주가 걸리면...

나는 빈 집에 몸뚱이만 들어가야 한다.



큰일이었다.








일이 빨리 진행될  있도록 Bb 미리 가구 구입비 신청을 위한 편지를 작성해주었다.

원래는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독일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들어있어 사진 대신 편지 내용을 글로 옮기니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양식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An das Job Center 도시 이름


본인 잡센터 고객번호

자녀 잡센터 고객번호


Antrag auf Erstaussattung


Hiermit beantrage ich die komplette Erstausstattung (incl. Elektrogeräte) für die Wohnung 새집 주소, für mich und meinen sohn.

Der Mietvertrag beginnt zum 입주날짜.


Ich bedanke mich und verbleibe

Mit freundlichen Grüßen


도시 이름,  나의 서명


내 이름



*Aussattung (자식을 위한) 독립자금, 혼수, 지참금, 채비









일사불란하게 일을 마치고 나니 목요일이었다.

프라이에 숄레 측에 서명한 서류를 되 부치고 금요일 오전 중에 계약 날짜를 잡으려고 했더니 통화하는 사람이 깜짝 놀라며 다음 주 화요일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게 시간적 여유를 두고 느리게 돌아가는 독일에서, 쇠뿔도 단김에 빼려는 내가 아주 어이가 없었나 보다.



신분증과 현금으로 720유로를 들고 오라고 했다.

내 한 달 생활비보다 많은 돈을 그것도 현금으로?



나는 통화하는 도중에 받아 적기가 바빠 미처 그 돈이 왜 필요하냐고 묻지를 못했다.

통화를 끊고 또 다른 베트로이어린 베아트리스에게 얘기했더니 그녀 역시 그 돈이 어디에 필요한 거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도 모른다고 했다.


말하고 보니 민망하다.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왜 나는 항상 누군가 말을 하면 꼬치꼬치 되묻기보다는 응. 응. 하고 대답만 하는 걸까.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독일에서 지난 한 달간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해 보니 이런 일이 좀 빈번했다.

뭐 어디나 그렇겠지만 그래도 독일에서는 나 스스로 챙겨야 할 부분이 많다.



한국에서는 굳이 묻지 않아도 행정직원들이 "통장사본이랑 신분증, 사진 한 장 꼭 챙겨 오셔야 해요."하고 친절히 알려주지만 여기서는 정말 필요한 사항도 알려주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뭔가 미심쩍거나, 뭔가 이해가 안 되거나, 뭔가 궁금하면 그것이 설사 아주 손톱만큼 작은 의구심이나 찝찝함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콕 집어 되묻고 속시원히 넘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꼭 뒤탈이 난다.

독일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한다.



베아트리스는 프라이에 숄레 측에 다시 전화를 걸어 깔끔한 독일어로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아마도 보증금의 절반을 계약금조로 가져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잡센터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므로 그 돈은 잡센터 측에서 줘야 한다.



고로 나는 가져갈 필요가 없는 돈이었다.

베아트리스 덕분에 문제가 하나 또 해결됐다.



참고로, 집 보증금이 1,500유로인데 보통 이 돈은 살면서 집에 큰 흠을 낸 게 아닌 이상 이사 갈 때 다시 받아 나온다.



나는 보증금도 공짜로 잡센터에서 내주는 줄 알았더니 아니다.

일단 잡센터에서 목돈인 보증금을 내주지만, 매달 나에게 주는 생활비에서 10%씩 다시 떼어가며 장기적으로 보증금을 회수한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증금을 다 갚으면 이사 갈 때 받는 보증금은 오롯이 내 돈이 되는 것이다.

오... 똑똑하다.



이런 자세한 내부 시스템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가 보다.

경찰인 비프케도 가구 구입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모르고, 다른 독일인 친구들 역시도 풍문으로 잡센터에서 해준다더라, 해주지 않을까? 하는 정도이지 나보다 아는 게 없다.



요즘 나는 정부보조를 받으며 공짜로 독일 복지에 대한 공부를 몸소 하고 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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