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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Sep 28. 2021

운동처럼 억지로라도 책을 읽는 것

마틸다를 생각하며


 책을 읽다 보면 옛날 옛적에 보았던 영화 마틸다가 생각난다. 어울리지 않는 가족에서 태어나 그녀를 무시하고 티비나 보라는 부모 밑에서 마틸다는 언제부턴가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책을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한다. 현실이 말 그대로 시궁창이었던 마틸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마틸다는 책 속의 주인공과 교감하며 꿈을 꾼다. 답답하고 외로움을 느끼던 마틸다는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세계에서 쏙 사라지는 듯한 경험을 했을 듯 하다. 


 영화 마틸다의 원작인 로알드 달의 '마틸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오후가 되면 텅 빈 집에서 따끈한 음료를 들고 조용한 자기 방으로 올라가, 책을 읽으며 곁에 있는 따끈한 코코아를 홀짝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마틸다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행했고, 아주 흥미로운 삶은 사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다. 마틸다는 조지프 콘래드와 돛단배를 타고 항해를 떠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는 아프리카로 떠났으며, 러드야드 키플링과는 인도를 탐험했다. 마틸다는 영국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자신의 작은 방에 앉아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 속에 알지 못할 충만감에 사로잡힐 때, 그 때 마틸다를 떠올린다. 아, 나도 그 해방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나의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틸다처럼 나는 나의 사고가 이만큼, 또 저만큼 확장하는 걸 느낀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 구절은 내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이걸 읽으니 이제야 어떤 현상의 원리가 이해가 되는구나... 한도 끝도 없다. 

 동시에 나는 책에서 어휘력과 사고 능력을 배운다. 내 생각을 적당한 단어와 적당한 표현으로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일부러 익히려고 해서가 아니다. 책의 문장들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 많은 단어와 문장은 내 속에 남는다. 그리고 내가 말할 때, 무언가를 기록할 때 그것이 발현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요즘처럼 종이책의 중요성이 피부로 다가오는 때가 없다. 드라마, 예능도 짧은 요약본으로 소비하고 밈 또는 소위 '짤'을 많이 접하는 이 시대에 나는 언제부턴가 간단한 생각이나 감정 조차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어떻게 표현해야 될 지를 모르고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서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짤'에게 내 생각을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야 함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종이책. 전화, SNS 알림, 광고 등 중간에 쓸데없이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고 무엇보다도 충전을 안 해도 된다. 이 정도면 종이책은 음식으로 치자면 슈퍼푸드가 아닐까.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책을 지속적으로 읽는 습관을 기르기로 한다. 운동이 이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닌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었듯이 내 정신의 생존을 위해 독서를 의무적으로 하기로 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의 한 부분을 기록해 본다.

「나는 그 모든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할 수가 없었다. 지게차를 조종하던 그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가진 언어를 그때는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은 이해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깜둥이라고 수없이 불리고, 수없이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웃을 수 없게 됐다는 것. 그 단어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숀 오빠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그 단어를 듣는 내 귀뿐이었다. 내 귀는 그 안에 담긴 농담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내 귀에 들린 것은 시간을 관통해서 울리는 신호음이자 호소였고, 나는 거기에 점점 더 강해지는 확신으로 응답했다. 이제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에 내가 꼭두각시로 이용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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