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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Jan 03. 2022

마음이 삐뚫어질 때

  마음이 삐뚫어질 때가 있다. 갑자기 속에서 짜증과 분노에 가까운 무언가가 확 올라올 때가 있다.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 화가 나고 짜증난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그런 순간들 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조금 더 빨리 타겠다고 기어코 나를 몸으로 미는 사람이 있을 때. 버스 앞자리에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며 씩씩대고 욕하는 걸 들어야 할 때. 조용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있을 때(이어폰을 껴도 목소리가 노래소리를 뚫고 들어올 때). 나를 분명히 봤을텐데도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급하게 누르고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있을 때. 횡단보도를 버젓이 건너고 있는데 거의 자동차가 거의 나를 칠듯이 슬금슬금 머리를 밀고 들어올 때. 앞에 가고 있는 사람이 무거운 문을 쾅 놓아버려 문에 부딪히지 않게 팔로 부들부들 버텨야 할 때. 딱딱한 가방이나 어깨로 나를 세게 치고 갔음에도 사과 한 마디 없을 때.

  뭐가 이렇게 많을까.


  같은 상황이어도 항상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날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여유롭게 넘길 때도 있다. 얼마나 급하면, 얼마나 피곤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까 하고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건 무조건 외부의 상황 탓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상황이 나를 자극한 것 뿐이지 사실은 그런 상황이 오기 전부터 나는 마음 속에 화를 가득 담고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짜증을 낼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 놈만 걸려라' 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다닌다. 내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하는 누군가가 없는지. 그리고는 생각한다. '너도 한 번 당해 봐.' 그래서 나도 똑같이 행동한다.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을 몸으로 막고 내가 기어코 먼저 탄다든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이 있는데 닫힘 버튼을 다급하게 누르고 먼저 올라가 버린다든지, 뒤에 오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문을 그냥 놓아 버린다든지. 매너가 없다며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 내가 예의를 차려도 나만 손해인 것 같으니까. 나만 '호구'가 되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이런 손해보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 먼저 타라고 웃으면서 양보를 해 주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 버스에서 내리며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마스크가 없으니 안 쓰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게 덜덜 떨면서도 다가가서 새 마스크를 건네는 사람,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으실 때까지 기다려주는 버스 기사님 같은 사람. 신기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면 그 순간 주변의 공기와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이다. 피곤함에 절은 팍팍함과 삭막함이 가득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따뜻해진다. 사람들의 마음에, 아니 나의 마음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여유가 생긴다. 공격성과 경계심을 장착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나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워진다. '나는 왜 그렇게 날카로웠을까.'


  항상 이런 사람들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삭막한 공간 속에 한 줄기 따뜻함을 주는 사람. 여유가 없이 다급하고 바쁜 사람들에게 순간의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 내가 겪었던 따뜻함을 간직하고 그대로 흘려 보낼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래도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 속에 작은 공간을 남겨 놓는 사람. 그렇다고 만만하고 쉽게 여겨지지는 않는 사람. 상황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사람. 그러나 보다시피 매일 매일 철저히 실패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해에는 내 마음 속 고슴도치의 가시를 조금 누그러뜨려 보려고 한다. 얼마 전 우체국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어느 분이 무거운 짐을 끌고 들어오려고 하고 계셨다. 그냥 가려다가 들어가시기 편하게 문을 잡아드렸다. 그 분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고 나도 같이 눈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다. 친절을 베푼다거나 소위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 괜한 선민의식은 가지지 않으려 했다. 내 마음과 상황을 분리해서 보려고 노력했다. 내 마음 속의 가시가 엉뚱한 사람을 향하지 않도록 했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상에 쫓겨 조급하고 바쁜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마음  구름이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하자. 내가 어떤 일에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 있다면 혹은 어떤 일이나 사람이 눈에 과도하게 거슬린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다들  이렇게 매너도 없고 생각도 없어' 씩씩대며 불도저처럼 행동하기 전에  마음이 어떤지 1초라도 생각해보기로 한다. 해가 바뀌어도 똑같은 해가 지고 똑같은 해가 뜨는 여느 날과 다를  없는 날이지만, 그래도 새해를 핑계로라도 따뜻한 기운을 조금은 흘려보낼  있는 존재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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