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여니 Jan 17. 2022

다리찢기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요가가 내 일상에서 이렇게 중요한 요소가 될 지는 나도 몰랐다. 수험 생활을 시작하고 30분 이상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파와 공부가 어려워서 집 앞 요가 센터에 등록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요가를 선택한 것은 단지 집 앞 5분 거리에 센터가 있어서라는 이유였는데,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의 종류가 다양한 요즘과는 달리 내가 공부하던 그 당시에는 헬스장 아니면 요가센터 뿐이었기 때문에 선택지가 그리 넓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는데, 귀찮아서 일주일만 운동을 안 가도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에 시험 합격을 위해서라도 요가를 놓을 수가 없었다. 공부가 끝나고 나서는 호기심에 다른 운동도 몇 가지 시도해봤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나는 요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동작을 성공하는 성취감에 신나게 몰입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좌절감도 느껴보고 또 그 좌절감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제 요가는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나의 중요한 스토리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저 오래 앉아 있고 싶어서 시작했던 것 뿐인데, 끈질기게 질척이는 연인처럼 내가 이렇게 요가에 매달리고 집착(?)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7년차 요가 수련자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는 다리찢기를 못한다. 요가를 오래 했다고 하면 흔히 받게 되는 질문도 이것이다. "그럼 다리찢기 잘 하시겠어요." 그럴 때면 나는 민망해하면서 다리찢기는 잘 안 된다고 대답한다. 드라마틱하게 유연해지고 싶은 마음에 요가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도 요가를 하고 나서 유연성이 정말 많이 좋아진 편이긴 하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체형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유연성이 길러지고 나면 그 이상으로 몸을 구기거나 접는 것은 잠깐의 수련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 것이다. 골반이 어떻게 생겨먹었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운동을 안 해도 다리가 쭉쭉 벌어지는 반면에,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수련을 오래했다 해도 어느 이상으로는 도대체가 다리가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 것이다. 

  

  골반이 많이 열리고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면 아무래도 할 수 있는 동작의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나도 한 때는 다리찢기에 욕심을 냈었다. 지금도 욕심이 있긴 하지만 예전에는 '꼭 해내고야 말겠어'와 같은 어떤 집착 가까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요가를 이만큼이나 오래 했는데 다리가 이렇게 밖에 안 벌어지다니. 도대체 지금까지 운동을 어떻게 한거지?' 같은 생각도 종종 들었다. 가끔은 명함 내밀기도 창피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요가를 한 기간을 줄여서 말하기도 했다. 그 놈의 다리찢기가 뭐라고 말이다. 세로로 찢는 것은 어떻게든 다리를 앞 뒤로 벌리고 중력의 힘을 빌려서(너무 아파 숨이 안 쉬어지더라도) 비슷하게 흉내는 내겠는데, 가로로 180도 벌리는 것은 어떻게 연습을 해도 도저히 되지가 않았다. 내 골반은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하며 몸을 많이 탓하기도 했다. 요가를 오래 했어도 매일 변함없는 내 자세에 실망하기도 했고, 수련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놈의 다리찢기가 뭐라고 말이다. 



  지금도 내 다리는 대략 120도 정도 밖에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리찢기를 예로 들자면, 다리가 많이 벌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척추와 골반이 균형을 찾아 건강하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집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 '왜 더 안 돼?' 하며 내 다리를 일부러 손으로 옮겨보기도 하면서 낑낑댔다면, 지금은 티비를 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리의 피로를 풀어준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한다. 이상하게 전날보다 더 다리가 굳은 느낌이 들 때에도 속에서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기보다는, 그저 적당히 자극이 느껴지는 자세에서 머물면서 편안해지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 자세가 편안해지면 조금씩 팔을 앞으로 뻗고 상체를 숙여본다.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을 뿐더러 심지어 어제보다 더 몸이 안 움직이는 날도 있지만, 이제는 전처럼 몸을 혹사시키지 않는다. 다리찢기 못하면 어때, 건강하면 됐지. 팔다리 잘 움직일 수 있어서 지금 요가 수련도 내 맘대로 갈 수 있잖아. 자기 합리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쪽이 내 정신건강에 훨씬 좋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리찢기가 안 되는 요가인들이여, 위축되지 말자. 그리고 혹여나 누가 '요가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 다리도 못 찢냐'고 물어볼 때에는 사람마다 체형은 다 다른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하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위축됐었던 소심한 요가인으로부터,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공감이 됐길 바라며. 

이전 04화 행복한 기억은 그저 행복한대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