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내가 할 수 없었던 동작이 거뜬하게 되는 날이 있다. 힘도 적당히 들고 이 정도면 된 것만 같다. 동작을 풀고 매트 위로 내려와서 숨을 고른다. 다른 사람들은 동작을 시도하는 중이다. 선생님이 더 해보고 싶은 사람은 해봐도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동작을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날에는 이상하게 되던 동작도 힘에 부치는 날이 있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 내가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던 동작인데 오늘은 계속 실패한다. 체력은 애초에 바닥이 났고 다른 사람들은 슬슬 동작에서 빠져나오는 중이다. 그런데 이제 그만하라는 선생님의 말이 따로 들리질 않는다. 오기가 생긴 나는 다시 도전한다. 힘이 빠져 실패하지만 또 도전한다. 다시 시도한다. 그제야 선생님이 그만하라는 지시를 준다. 나는 내 역량의 120%를 불태운 채로 매트 위에 쓰러진다.
수련이 잘 되는 날과 수련이 잘 풀리지 않은 날은 이렇게 반복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날은 자세를 잘 수행하고 여유 있게 수련을 마친 날보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뭐라도 해보겠다고 낑낑댔던 날이다. 후굴을 거뜬히 해내고 유유히 동작에서 빠져나와 여유롭게 숨을 고르는 그 순간은 뿌듯하다. 나는 오늘 힘든 동작을 해냈으니 말이다. 잘 되던 머리 서기가 유독 안 되는 날, 혼자서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순간은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해냈고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가볍고 발걸음이 가뿐한 날은 오히려 두 번째 날이었다.
계속 실패했던 날. 또 계속 시도했던 날.
그 차이는 내가 순간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는지였다. 몸이 잘 풀려서 동작이 어렵지 않게 되던 날은 나는 내 역량을 쏟지 않았다. 만약 1분 동안 시도해볼 시간이 주어지고 20초 즈음에 동작을 성공했다면 나는 남은 40초를 매트 위에 누워서 쉬곤 했다. 나는 미션을 수행했으니까 이제 된 것이었다. 내 목적은 동작의 완성이었다. 나머지 40초 동안 나는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다음 동작을 위해서 숨을 고르고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수련은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님을 내 마음은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날은 수련을 잘 마쳤음에도 집에 돌아가는 길은 마음이 불편했으니. 마음이 편하고 충만한 날은 오히려 주어진 1분 동안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날이었다. 거꾸로 섰다가 매트 위를 굴러도, 다리를 위로 차 올랐다가 쿵쿵대며 떨어져도, 균형을 잡다가 비틀거리고 휘청거려도 나는 1분을 낭비하지 않았다. 여유 부리지 않았다. 끝까지 도전했다.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나는 땀을 뚝뚝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비록 내가 원하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결국에는 내 마음은 시원하고 후련했다. 뭔지 모를 찝찝함은 없었다. 나는 60초 동안 최선을 다 했다. 그 후련함은 최선을 다한 내 자신을 위한 후련함이었다.
결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뿌듯함과 성취감이 결과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때도 있나 보다. 내가 나에게 떳떳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면, 한계가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서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면 내 마음은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서로 다른 수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서로 다른 마음을 들여다본다. 수련이 잘 되는 날이든 안 되는 날이든 내게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기를. 그러면 미련은 저절로 사라져 버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