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탈리아어를 잘 구사하지 못했으므로 영어를 주언어로 쓰는 이탈리아의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국 회사의 이탈리아 법인에 취업하게 되었다. (어쩐지 취업은 항상 수동태로 쓰게 된다. 회사-갑님이 나-노예, 을을 뽑아주는 것이며 내가 능동적으로 하고자 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돈과 처우는 한국에서 받던 것에 비하면 형편 없었지만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 사무직 노동자치고는 이탈리아 기준으로는 엄청 나쁜 조건도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나는 한두푼이 아쉬운 상태였다. 그리고 태생이 노예인건지 취업하지 않는 백수의 삶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다녀보기로 했다.
한국 색이 짙게 묻어 있긴 했지만 이탈리아 땅에서 직원 다수가 이탈리안인 회사는 역시 다르긴 달랐다.
- 직원들이 자꾸 휴가로 사라졌다.
나는 그 회사에서 겨울이 올쯤부터 여름이 올쯤까지 일했는데, 육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직원들이 자꾸 휴가를 가는 것이었다. 나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건데 거의 불가능한 정도의 휴가였다. 혼자 대체 여긴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거야? 고민만 하다가 친해진 직원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연차가 26개란다. 26개면 영업일로만 따지면 한달하고도 일주일을 쉴 수 있는 기간이다. 그래서 애들이 크리스마스며 부활절이며 자꾸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교환학생 준비를 한창 하던 몇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나는 기숙사를 알아보느라 마음이 급한데 한달동안 자리를 비웠던 프랑스 대학교 담당자... 프랑스는 연차가 연간 30일이라고 한다.
- 직원이 감기에 걸렸다고 안왔다.
감기가 대단한 병도 아닌데? 동공지진이 온 것은 나뿐이고 모두가 당연히 쉬어야하고 바이러스 전파될 수도 있으니 안오는게 맞지 않냐? 했다. 나는 대도시에 있어 경험한 적 없지만, 조금 더 작은 도시로 가면 폭설이 오거나 폭우로 인해 회사나 학교를 가지 않는 일도 왕왕 있다고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가 말해줬다. 아 역대급 장대비가 온 작년 강남역에 출근했던 우리들이여...
- 그는 자꾸 오후 4시에 사라졌다.
오후에 출근하거나 이른 오후에 퇴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당장 내가 일하던 팀만 해도 팀장이 매주 화목 오후 4시에 퇴근했다. 육아를 위해 시간을 조정한 것이라 했다. 학교가 끝나면 애들을 집에 데려다줘야 했으니까. 옆팀에는 팀장이 새로 왔는데, 매일을 오후에 출근했다.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헌신한 직원이 출산휴가 가는 것도 눈치보는 나라에서 온 나는 자꾸 그 직원의 출근 시간이 신경쓰였다. 나만 신경썼다.
물론 누군가는 이래서 이탈리아가 경제발전이 없고 어쩌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뭐 일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뭐- 이탈리아는 첫째 내 나라가 아니고, 둘째 젖과 꿀이 흐르고 축복받은 관광자원을 가진 나라니 내가 걱정할 바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