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 롤랑 바르트]를 읽고
나의 결혼식 한 달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나는 너무 빨리 잊었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할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지며 병원에 입원하셨고, 집에 혼자 남은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결혼을 차근 차근 준비하는 날들마다 조금씩 더 쇠약해지셨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자주 나는 울기도 웃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들은 남편과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을 뿐 할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장례식에서만은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장례사가 염과 습을 하는 동안 수의에 싸여 꼼짝 않는 조용한 몸을 유리창 너머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돌이킬 수 없는 부재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그땐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많이 슬펐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49제 때 나는 아마 몰디브에서 신혼여행 중이었다. 나는 애도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 후 3년이 넘게 일상 속에서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날은 거의 없었다. 내가 결혼했던 그 해 초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를 귀찮게 할 만큼 수다스럽던 할머니는 이제는 치매까지 얻어 간신히 손녀딸만 알아보시고, 나를 볼 때마다 말 없이 살포시 웃어주신다. 생각하면 일 년에 세 네번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점점 더 작고 아이 같아지는 할머니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1.28일의 일기.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덕분에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추억에 빠졌다. 가부장적이고 고리타분한 옛날 분이었지만, 손자와 손녀는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주셨던 나의 할아버지.
내가 읽은 모든 책은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제 [애도 일기] 책의 띠지를 볼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가 생각날 것이다. 며칠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페이지에 표시를 했고, 다 읽고난 후에는 발췌를 노트북에 천천히 옮겨 적었다. 나는 또 다시 이 책을 읽을 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마망'의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나의 할아버지를 기억해야지.
덧.
[애도 일기]를 읽고 나는 원래 감상을 정리하려고 했다. 죽음을 대하는 슬픔, 상실, 고독의 감정 속에서도 글쓰기에서 구원을 찾는 롤랑 바르트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1978년 3월 23일 일기. 매번 확인되는 생각이지만, 지금 내 감정의 "울혈 상태"를 다른 상태로 바꾸고, "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완화시키는 건 글쓰기뿐이다.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한, 절반의 아싸(아웃사이더) 성향의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도 남기고 싶었다. 나는 아마 롤랑 바르트처럼은 못하겠지만, 그의 기발한 방법은 공유할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8년 8월 3일 일기. 혼자 있음에 대한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게 분명한) 나의 욕구를 곰곰이 생각해볼 것 : 그런데 내게는 마찬가지로 (그에 못지않은) 친구들에 대한 욕구도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친구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지면, 나의 무기력과 싸워 이기자면, 나는 억지로라도 가끔씩 친구들을 "불러야한다" - 무엇보다 전화를 걸어서 : 2) 하지만 전화를 거는 일은 나에게 맡겨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들이 전보다 드물게, 전보다 덜 주기적으로 내게 소식을 전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내가 그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하는 신호가 되리라.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그러나 한참 글을 쓰다보니 화면에 할아버지의 이야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한 분도 나와 마찬가지로, [애도 일기]를 읽고 서평을 쓰려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고.
[애도 일기]는 그런 책이다. 페이지마다 일기와 여백들 사이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롤랑 바르트의 사유가 배어 있지만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이자 [아침의 피아노]를 쓰신 철학자 故김진영 교수의 [애도 일기] 강의는 총 19시간이라고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결국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진심만이 강하게 독자의 가슴에까지 전달되는 책; 그래서 나도 한 때 많이 사랑했던, 그럼에도 종종 잊고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