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시험관 6차 실패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냥 청승을 떨자
Q. 시험관 6차째 실패. 피검 결과 비임신이라는 소식이 너무 절망적이에요.
이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A. (단호하게) 없습니다.
삼십 사년동안 숱하게 실망과 절망, 우울을 겪으면서 내가 배운 건 이거다. 이 감정은 없앨 수도, 줄일 수도 없다. 술을 마시면 우울하게 취하고, 술에 깨면 그 우울감이 증폭된다. 친구를 만나서 울면서 하소연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어차피 혼자여서 우울해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고 짠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나면 그게 다 내 뱃살이 될 것 같아 우울해한다. 하여간 나는 내 감정을 다스리는 데는 참 약했다.
그래서 그냥 그런 날은 내 감정에 굴복한다.
아주 제대로 청승을 떠는 것이다.
예전 남자친구들과 헤어졌을 때도, 지금 남편과 싸웠을 때도, 시험관 1차, 2차, 3차, 4차, 5차, 6차에 실패했을 때도 나는 마음껏 우울해했다. 아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해. 내가 이렇게 아기가 안생기는 것도 너무 슬프고 그 동안 먹었던 호르몬 약으로 인해 몸이 망가진 것도 싫고 매일 주사를 맞는다는 것도 서럽고 하여간 온 우주와 은하수와 코스모스 안에서 내가 제일 불쌍해.
대략 이런 생각들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있거나 펑펑 울거나 혼자 거리를 걷는다.
아 물론 회사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사무실에서 업무를 볼 정신이냐고.
중요한 건 세 가지.
1. 가능하다면 미리 우울할 것을 대비하고 하루를 비워둔다.
남자친구에게 갑자기 차인다거나 남편과 싸우는 일처럼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일도 물론 있다. (나는 사실은 이런 경우에도 내 우울함을 1순위로 돌보기 위해 회사에 급히 연차를 내곤 했다. 물론 그만큼 무척 감당 못할 정도로 우울할 때만이었지만.) 그러나 간절히 바랐던 입사 시험의 합격 통보일이라든가, 병원의 중요한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든가, 오래 끈 인연을 내가 먼저 정리하러 가는 일들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할까, 시험관 피검일은 보통 최소 열흘 전에 안내를 받기 때문에 피검일, 혹은 하루 이틀 전 임테기를 시도할 시기에 맞춰 미리 연차를 신청해둘 수 있다.
이렇게 불행을 예상하고 하루를 비워놨는데, 좋은 소식이 들려 우울할 필요가 없어지면,
그땐 뭐 축제인 것이고.
2. 가능하다면 하루 안으로 최대한 많이 우울하자.
울고 싶으면 이 날 다 울자. 먹고 싶은 건 이 날 다 먹자. 목표는 스스로 피곤하고 지칠 정도로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가자. 너무 오래 동안 우울해 하면, 그 감정에 내가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되려 다시 출근해서 하루치 밀린 업무를 바쁘게 처리하고 사람들과 회의도 진행하고 마감에 쫓기다보면, 글쎄 마음에는 위로가 되지 못할 지언정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3. 위의 1번 2번 문장이 모두 '가능하다면'으로 시작되는 걸 잊지 말자.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 밉고 싫은 감정들도 나 나의 감정들이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원칙 같은거 외우고 있을 여유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우울하자.
그래서 결론은,
우울한 날에는 술을 마시고 우울하게 취하자. 술에 깨면 더욱 증폭된 우울함으로 해장하자. 친구를 만나서 울면서 하소연하자.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어차피 혼자여서 우울해하자. 맛있는 음식을 먹자.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고 짠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나면 그게 다 내 뱃살이 될 것 같아 또 우울해하자.
그래도 그러다 보면 곧 괜찮아지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