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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Nov 03. 2019

그녀가 시험관 시술을 기록하는 방법

난임 정보. 우리가 이 시간을 버티는 방법

회사 동료이자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한동안 마주치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봤다고 생각했는데, 3개월 동안 휴직을 했다가 얼마 전에 복귀했다고 했다. 그녀도 나처럼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고, 1차에서 임신을 했으나 결국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고 했다. 우리는 쿨하게 경험담을 나누며 돈까스를 먹었다. 식당 안에 우리만 있는 건 아니었는데도, 조용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채취와 냉동, 시험관 주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작은 카페로 이동했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녀는 그린티라떼를 주문했다. 얼그레이 마카롱과 산딸기 마카롱을 절반씩 나눠먹으며 그 동안의 경험을 서로에게 들려주다가 우리는 울었다. 같이 울고, 한 명이 냅킨을 들고 와서 각자 눈물을 닦았다.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 덜 지나간 일에 우리는 씁쓸해했다.


카페에서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알게된 사실은, 그녀도 나처럼 시험관 시술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정을 쓰고 있는 반면에 그녀는 정보를 기록하는 쪽이었다. 시험관 시술에 들어가기 전에 부지런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지만, 카페나 블로그에 넘치는 경험담과 글들에는 여러 정보들이 조각조각 흩어져있을 뿐 시술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하나로 요약된 글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부지런히 정리했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며 한 달에 병원을 몇 번이나 가야했는지, 비용은 총 합해서 얼마나 들었는지, 그때 그때 처방 받았던 각종 약과 주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매 번 내 배로 주사바늘을 밀어 넣으면서 그 주사가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 번도 궁금해본 적 없는 나와는 달랐다.


그녀에게 나의 브런치 계정을 공개했다. 그녀는 기꺼이 나에게 그녀의 기록을 전달해주기로 했다. 그녀가 세심하게 정리한 시험관 시술의 기록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이 날짜, 비용, 진료 내역, 처방 결과, 몸 상태만 메모되어 있었지만 나는 최근에 읽었던 어떠한 문학 작품보다 이 기록을 읽는 것이 더 아팠다.




그 기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5/28(화) 병원 방문 (전일휴가), 생리1주일전
조기배란억제(로렐린) 주사시작
- 매일 일정 시간 1회 (자가진행)
초음파
- 혹 없이 깨끗함
비용
- 이동 : 자차 이용
- (병원) 주사 : 67,100


수정란 이식 시술날에도 그녀는 각각의 과정을 기록했다.

7/23(화) 병원 방문
슈게스트 주사
수정란 착상 시술
- 10시40분 병원 도착 → 옷 갈아입고 대기  → 정맥 주사 연결 → 수액 맞기 → 대기하다가 호출 시 시술실 들어감 → 5분 소요 → 회복실


첫 아기의 심장 소리를 확인했을 때는 이렇게 남겨져 있다.

결말을 알고 읽는 상태에서 괄호 안의 (문제 없음)을 읽는데 마음이 힘들었다.

8/29(목) 병원 방문
초음파
- 아기 심장소리 확인 (문제 없음)


그 후에도 아기 심장 소리를 확인할 때마다 옆에는 꼭 (문제 없음)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그 다음주의 기록에는 이렇게 남겨져 있었다.

9/9(월) 병원 방문
초음파
- 아기 심정지 최종 확인
소파 수술
- 정맥 주사 (수액 2포)
  → 항생제 엉덩이 주사 (1방) → 수면 마취 수술 (유착 방지제 추가)→ 엉덩이 주사 (뭔지 모르겠음)
  → 1시간 가량 회복실 대기 후 귀가
태아 사망 사유 검사 요청
- 조직(1주 후) / 염색체 검사(2주 후) 결과 공유 예정


그 후에도 기록은 계속 이어졌다. 유산 후 후유증으로 찾아온 골반염에 그녀는 아이를 잃은 슬픔도 무뎌질 만큼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통증이 겨우 가라앉았을 때는 다시 슬픔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누른 채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왔고, 당시의 과정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그녀는 그 정보들을 나의 브런치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해도 된다고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이 간절한 기다림을 겪고 있을 나를 위해, 다른 이를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 난임 일기를 쓰는 건 우리가 이 지난한 시간을 버티는 방법이다.


우리는 같으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이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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