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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22. 2023

유언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


지난여름, 무더위를 피해 캠핑장에 갔다. 측백나무가 우거진 숲 속 캠핑장은 적어도 열대야는 피할 수 있어 좋았다. 오토캠핑장이라 각자의 오두막이나 텐트 사이트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오두막과 샤워장을 오가는 길바닥에는 ‘서행’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샤워장을 오갈 때면 그 앞에서 잠깐씩 멈췄다. 낮에는 멈춰 서서

개울 물소리를 들었다. 밤에는 멈춰 서서 별을 헤아렸다. 그때마다 엄마가 생전 몇 년 동안 가장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애쓰지마. 애쓰지 말고 편하게 살아”


그럼 나는 매번 비슷한 대답을 하곤 했다.

“엄마, 모두 그 정도 애는 쓰며 살아. 돈 버는 데 쉬운 게 있겠어.”

엄마에게 나는 애쓰는 사람처럼 보였을까. 그저 모든 엄마에게 아들은 애틋한 존재니까. 아니면 살아보니 삶이란 그리 애쓴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란 의미였을까. 돌아보면 엄마는 내 인생에 ‘서행’표시 같았다. 엄마가 떠나고 나니 내게 ‘애쓰지 마라’ 말하는 이가 없다. 나는 여전히 애쓰며 지내는 날이 많은데 그때마다 엄마 말

이 떠오른다.


‘너무 애쓰지마’


엄마가 떠난 다음부터는 여행을 떠올리면 그날 보았던 ‘서행’ 표시가 자꾸 떠오른다. 신혼여행으로 판문점에 갔다는, 그날이 하필 1972년 10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된 날이었다는, 서울에서 탄 택시가 더는 갈 수 없다해 파주 어디 즈음에서 돌아섰다는, 돈가스에 김치가 없어 목이 멨다는, 엄마의 여행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끝나고 말았지만. 신호등 앞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처럼 당신의 목소리는 내 여행의 길목에 남아 메아리친다.


“그래도 너무 애쓰지 마. 사람 사는데 소중한 게 참 많아.”





#여행의사람

#유언

#더는들을수없는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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