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가도 고마운 날들
올 가을은 유독 바빴다. 당신과 단풍을 보러 가자 약속하고 몇 번을 취소했다. 계절은 먼 산처럼 서 있다가 낮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나는 단풍이 드는 걸 보며 가을이 지워지는 걸 내내 안타까워 했다. 낙엽 한 줌 쥐지 못한 채 겨울을 맞는 건, 축구로 치면 오프사이드 같은 건데.
12월의 첫날, 지난 가을에 당신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받아보았다. 은행나무가 침엽수라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찍은 기억은 나는데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가을 은행나무, 사진 속에는 샛노란 단풍이 금빛처럼 반짝였다. 내가 지운다고 가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늘 당신이 선물한 가을이라는 꽃. 울다가도 고마운 날들.
#여행의사람
#겨울
#괜찮다괜찮다다괜찮다_천상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