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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Sep 21. 2020

배를 통째로 보여주면 됩니다

박물관계의 숨은 레전드,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디스트릭트(D'strict)가 코엑스에서 선보인 ‘Wave’는 소재가 주요했다. ‘Wave’를 담는 틀은 기존과 다른 ‘ㄴ’자형(또는 ‘ㄷ’자형)의 가로 81m, 세로 20m의 스크린이었다. 그 안에 다름 아닌 파도를 구현하자 더 역동적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숲이나 하늘 그리고 수평선보다 시각 끌림이 훨씬 컸다. 또한 파도의 단면을 보는 듯는데, 그 부분 역시 인상 깊었다. 바다는 두부처럼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만큼 무엇을 또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중요하다. 매우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 고민의 결과를 디테일이라고 하는 거겠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하는 질문과 가장 밀접한 여행지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하품과 짜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박물관의 전시는 약속이나 한 듯 비슷비슷하다. 특히 ‘국립’이 들어가면 좀 더 엄격하고, 지루하다.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다르다. 아이들까지 꽤 호기심을 보일 만한 상설전시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기도 하고. 바로 신안선실 전시다.


신안선실은 약 700년 전 바다에 침몰한 길이 약 28.4m, 폭 6.6m, 높이 4m, 적재중량 약 200톤의 목선을 통째로 들여와 전시한다. ‘Wave’가 거대한 스케일로 압도하듯, 신안선실 역시 신안선 단 한 척을 전시실 중심에 두고 시위하듯 전시한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맞다. 직진이다. 보물선을 보여주고 싶다면 보물선을 통째로 전시하면 된다. 그보다 명쾌한 답안은 없다.  

      

이 또한 청계광장 스프링의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작품이 주는 시각 충격과 비슷하다. 예상하지 못한 스케일은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가한다. 

      

[ 자료 출처 :신안선보존복원보고서 ]

신안선의 시작은 이렇다. 1975년 5월 한 어부가 신안군 지도면 도덕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다, 청자 유물을 발견한다. 오랜 시간 지역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보물선’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후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0차에 걸쳐 이뤄져 발굴이 이뤄진다.   

   

바다 속 개펄에 묻혀 있던 신안선은 통째로 인양이 불가했다. 배의 파편 720개를 하나하나 지상으로 옮겼다. 그 가운데 497편의 복원 조립을 시도했다. 나무 파편마다 인양한 날짜와 구획 위치를 적고 배의 실측도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1/5 신안선 모형을 만들어 원형복원의 기본 참고 자료로 삼았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선체는 2004년 6월에 그 자태를 드러낸다. 처음 발견한 시점부터 약 30년이 걸렸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신안선의 그 유물들을 담기 위해 지었다. 그 가운데 신안선실은 처음부터 전시장 하나에 배 한 척을 담겠다는 의도였다. 그 의도는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실감한다. 작은 조선소를 연상케 하니까. 


무역선 주변을 따라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관람동선을 걸으면, 온전하지 않을지언정 선체는 우리를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보물선 안으로 더 가까이 끌어들인다.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 순간 신안선을 모르는 이라도 신안선이 궁금하다. 


[자료 출처: 국립해양유물전시관 ]

신안선실을 바다 속처럼 느끼게 만드는 건 여백으로 남겨진 신안선의 미완성 부분이다. 수묵화처럼 여백이 생겨나는 그 빈 자리가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 영역을 만든다. 신안선은 무역선을 일부러 완벽하게 재현하지 않았다. 우선 철골로 배의 형체를 짰다. 그리고 본래 배의 것이었던 1300년 전의 나무판자만를 얹어 선체를 완성한다. 사라진 목재 부분은 그대로 뒀다. 


그 기준은 개펄이다. 침몰한 선체의 일부는 개펄에 파묻혀 있었고, 개펄에 잠겨 있던 부분은 바닷물에 쓸려가지 않아 복원할 수 있었다. 그러니 뼈대만 있는 부분은 바다 속에 노출돼 형체가 없이 사라진 부분이고, 나무판자가 남은 부분은 개펄에 파묻혀 있던 부분이다.      


우리는 침몰 당시 얼마간을 제외하고는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없었던, 개펄 위로 노출된 부분과 개펄에 파묻혀 있던 부분을 동시에 본다. 바다 속에서 보였던 부분은 시간이 지나 보이지 않게 되고,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유무의 경계가 동시에 존재하므로 그 역설이 재미나다.      

         

신안선 선체의 일부에 새로운 판자를 만들고 덧대어 이었더라면, 옛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한데 어울려 존재했을 수 있다. 배의 형체도 좀 더 완성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양도성을 걸을 때 서로 다른 성벽돌이 각자의 시간을 말해주는 것처럼. 그런데 신안선은 철골 사이로 비어있는 여백들이 좋았다. 그 자리가 1300년 전과 지금의 사일르 보여주는 듯도 했고, 이어주는 듯도 했다. 


1300년대 무역선을 보여주고 싶다면 무역선을 통째로 보여주면 된다.  그것보다 생생한 체험은 없다. 더불어 바다 속을 보여주고 싶다면, 바다 속에 남겨진 그대로를 재현하면 된다. 부서진 건 부서진 대로, 남은 건 남은 대로.                 




⁋ 신안선은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해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복원한 배들은 그 배가 침몰한 바다의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 무역선은 중국배입니다. 다만 어선의 선주가 누군지 알 수 없다. 

반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된 거다. 

그래서 중국 국적의 무역선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시하는 데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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