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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ug 03. 2023

'요소의 합'이 이룬 진심

반듯한 편안함, 고기리막국수

요소의 합.이 말에 공감합니다.
얇은 수육과 얇게 썬 마늘과 청양고추, 잘게 썬 물김치까지, 
소담하게 모아 담은 수육에서 막국수 면사리까지, 
이곳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의 태도가 있습니다.

용인시에 있는 고기리막국수에 다녀왔습니다. 월요일이었고 오후 5시 즈음 도착했습니다. 이미 대기 줄이 길었습니다. 예상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30분 즈음 지나 차례가 왔습니다. 들기름막국수와 수육을 주문했습니다. 들기름막국수는 이제 고기리막국수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유수창,김윤정 부부가 단골들과 나눠먹은 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한 동안은 단골들만 주문하던, 메뉴판에도 없는 음식이었고요.  


들기름막국수도 좋았지만 저는 수육 차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기리막국수 수육은 작은 접시에 살포시 겹쳐 원을 그립니다. 소담스럽고 단정합니다. ‘한 올 한 올 흐트러지지 않게 말아’ 나오는 고기리막국수 면사리(물과 비빔막국수)를 닮았습니다. 수육에는 마늘과 청양고추, 새우젓과 물김치가 같이 나옵니다. 여느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다만 모든 음식의 두께가 다른 곳과 다릅니다. 얇습니다. 수육도, 편 마늘과 청양고추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물김치도 잘게 썰어 나와요. 상추와 쌈채소와 거리를 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차림이 합을 맞출 때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그럼 귀 기울일 무언가가 있는 것이고, 대체로 미식을 제안하는 걸 테고요. 수육 한 점을 가져옵니다. 그 위에 새우젓과 얇게 썬 마늘 그리고 고추를 얹습니다. 층층이 쌓아올렸지만 얇고 편편해서, 핑거푸드처럼 즐기는 한 입 수육이 됩니다. 맛을 봅니다. 먼저 식감이 대화를 시도해요. 살코기는 무척이나 연하고 비계 부위는 쫀득합니다. 얇게 썬 고추와 마늘은 스낵처럼 씹히죠. 매운 맛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요. 여리고 순합니다. 무엇보다 입안에 적당히 들어찹니다. 뒷맛이 깔끔해요. 



물론 호불호가 있을 수 있어요. 상추쌈에 고기와 마늘, 고추를 잔뜩 올린 씩씩한 ‘보쌈’은 아닌 거죠. 그렇다고 두툼한 고기와 통마늘, 뭉텅하게 썬 고추의 넉넉함도 아니고요. 그래서 제안이라는 겁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부드럽고 편하게. 이곳의 수육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더불어 말합니다. 수육은 거들 뿐, 이제 나올 막국수가 주인공이라는 거죠. 


김윤정 대표는 ‘국숫집 곳곳에는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장치들이 있다’ 말합니다. 더불어 ‘음식맛은 물론이고 다른 요소의 합을 끌어올려야’한다 덧붙입니다. 예를 들면 첫인사는 ’편한 곳 아무데나 앉으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방향을 가리키는 손끝의 언어를 곁들여 정확하게 좌석을 안내’하는 것으로 시작하죠. 파인다이닝처럼 생화를 비치하고, 흰 벽에 간결한 메뉴판을 걸고, 직원들의 조리복과 앞치마를 주문 제작하고, 스피커의 음질과 실내 조도와 온도까지 조절하는 것까지일 테고요. 직원 응대도 그렇습니다. 과하지 않고 다정해요. 목소리는 다르지만 톤과 매너가 일정합니다. 가구 또한 탁자와 의자는 절도 있게 각진 형태지만, 마루와 천장은 짙은색 나무로 차분한 공기를 만들죠. 


요소의 합!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얇은 수육과 얇게 썬 마늘과 청양고추, 잘게 썬 물김치까지, 소담하게 모아 담은 수육에서 막국수 면사리까지, 이곳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의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장치가 공통의 목적을 향합니다. 합하여 맛을 이루겠다는 듯이요. 그래서 반듯한데 편안해요. 그게 작은 가게가 진심을 빚어내는 비결일 겁니다. 김윤정 대표가 쓴 책 제목처럼요.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고기리막국수는 이제 더는 작은 가게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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