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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n 04. 2023

도쿄도현대미술관, 블루보틀의 흔적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쿄 여행(2023.05.10~16)



조 나가사카의 가구와 사이니지 디자인은 간결하고 미니멀해서, 야나기사와 타카히코의 의도와 경쟁하지 않아요. 그저 기분 좋은 공존을 이끌어냅니다. 자신의 색깔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목적에 충실하고 편리와 효율을 도모하죠.



<사진 출처 : 도쿄도현대미술관 www.mot-art-museum.jp>


블루보틀의 건축가, 도쿄도현대미술관을 리뉴얼하다


도쿄도현대미술관에 앞서 블루보틀 이야기를 조금 할게요. 블루브틀은 2002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출발한 커피 브랜드입니다. 블루보틀을 상징하는 파란 병은 이제 아이폰의 '애플'과 다르지 않죠. 일본, 한국, 홍콩, 중국 등에 매장을 열었는데요. 적어도 아시아의 블루보틀은 조 나가사카(Schemata Architects)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조 나가사카는 2015년 블루보틀의 도쿄 1호점인 키요수미-시라카와 로스터리&카페, 아오야마점을 시작으로 도쿄 대부분의 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교토, 고베, 요코하마는 물론이고 서울 삼청동과 성수(2019), 홍콩(2020), 상하이(2022)의 블루보틀 역시 그의 솜씨입니다. 살아있는 '파란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루보틀 키요수미-시라카와(왼쪽),  아오야마(가운데), 성수(오른쪽)>  사진 출처 _ Schemata Architects사진 출처> http://schemata.jp


그에 앞서서는 아오야마 이솝과 긴자(2011), 오코메야 쌀집(2015)을 디자인했습니다. 모두 문을 열 당시 도쿄에서 화제를 모은 건물들이죠.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닌 브랜드의 이미지를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건축가이자 리테일 디자이너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알아챕니다. 옛 것과 새 것을 조화시켜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블로보틀은 조 나가사카에게 공간 디자인을 의뢰한 거겠죠. 그러니 공간 디자인이자 리테일 디자인이라과 봐야 하는 것이고, 블루보틀의 공간 브랜딩은 조 나가사카에게 빚진 셈이지요.


<이솝 아오야마(왼쪽, 가운데), 오코메야 쌀집(오른쪽),    사진 출처 _ Schemata Architects  http://schemata.jp>


도쿄도현대미술관, 세대를 넘나드는 콜라보레이션


이제 도쿄도현대미술관으로 돌아옵니다. 도쿄도현대미술관은 신국립극장을 지은 야나기사와 타카히코(TAK건축연구소)가 1995년에 완공했습니다. 조 나가사카는 그의 사후인 2019년에 리뉴얼 작업을 맡았습니다. 미술관은 조 나가사카에게 사이니지와 가구 중심의 리뉴얼을 의뢰했는데요. 상업공간에서 보여준 리테일 디자인 능력을 공공 미술관에도 접목하겠다는 의도였겠죠. 도쿄도현대미술관은 도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이니까요. 


도쿄도현대미술관은 키바공원 북쪽 끝에 있습니다. 인상적인 공간은 역시 로비입니다. 두 건축가의 개성을 단숨에 들여다볼 수 있어요. 윗세대 건축가가 만든 하드웨어로서 공간과, 그 안에 젊은 건축가가 세심하게 배치한 신호와 장치를 비교해 보는 건, 도쿄도현대미술관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사진 출처 _ Schemata Architects  http://schemata.jp>


야나기사와 타카히코가 설계한 로비는 아트리움 형태로 트러스 구조입니다. 동서로 약 150m에 이르는 긴 주랑이 특징입니다. 로비 양 측면으로 삼각형 철골 구조가 이어지는데 유리창과 구멍이 뚫린 메탈 판넬이 반복됩니다. 남쪽으로는 바깥에 선큰가든과 기바공원이 보이고, 안쪽에는 판넬의 그림자가 로비 바닥에 독특한 패턴을 연출합니다. 여기까지는 야나기사와 타카히코의 흔적입니다.


그에 비하면 조 나가사카는 쿨합니다. 가구와 사이니지 등은 모듈과 유닛을 적절히 활용해 기능의 편의를 도모했습니다.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분리, 조립이 가능해요. 메탈 소재 이음새를 쓰지만 나무색이 가진 따뜻함이 기본입니다. 원형과 나선의 오브제는 직선의 공간이 갖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요. 야외 쉼터와 파라솔 등은 야나기사와 타카히코가 의도한 기바공원과의 연결성을 기능적으로 확장하고요.


조 나가사카와 협업한 이로베 요시아키는 ‘(일부러) 건물의 대비를 의식’했다 말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가구와 사이니지 디자인은 간결하고 미니멀해서, 야나기사와 타카히코의 의도와 경쟁하지 않아요. 그저 기분 좋은 공존을 이끌어냅니다. 자신의 색깔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목적에 충실하고 편리와 효율을 도모하죠. 



< 야나기사와 타카히코의 '물과 돌의 산책로',   © 여행작가 박상준 >


야나기사와 타카히코의 '물과 돌의 산책로'


물론 윗세대 건축가 야나기사와 타카히코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조 나가사카의 동그란 의자에 앉아 로비 바깥을 바라봅니다. 아래층 선큰가든은 ‘물과 돌의 산책로’(WATER AND STONE PROMENADE)입니다. 로비에서는 그저 바닥연못 같았는데요. 지하에서 바깥으로 나갔을 때는 이 장소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선큰가든 안쪽 절반은 2층 로비에서는 볼 수 없는 발아래, 필로티에 해당해요. 하나의 장소 안에 빛과 그늘이 공존하며 번집니다. 물 위에는 커다란 바위와 판석들을 배치했습니다. 어느 돌은 인공적이고 어느 돌은 자연적이지요. 젠 가든, 일본 전통 고산수식 정원이 떠오릅니다. 모래 대신 물이 있을 뿐이지요. 


남쪽 기바공원 쪽은 돌담을 쌓았는데 고성을 연상케 합니다. 바닥연못은 그 앞으로 흐르는 해자 같고요. 고대와 현대의 시간이 넘나듭니다. 미술관 아래 이처럼 고전적인 하지만 현대적인 해석을 가진 정원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습니다. 지하 레스토랑에서도 ‘물과 돌의 산책로’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어요. 


조 나가사카도 이곳만은 부러 손을 데지 않은 듯하네요. 기바공원에서 연결되는 지상 진입로 광장에만 쉼터를 배치해, 기바공원을 품으려는 야나기사와 타카히코의 의도를 좀 더 효율적으로 보조하는데 멈추거든요. 


< 사진 출처(가운데) : IROBE DESIGN INSTITUTE,  irobe.ndc.co.jp  >

직각이 아닌 예각의 계단 손잡이나 간격을 띄운 유리 난간 또한, 처음부터 야나기사와 타카히코가 이 건물을 얼마나 섬세하게 디자인되었는지 보여줍니다. 그 곁에 조 나가사카와 이로베 요시아키가 새롭게 작업한 사이니지는 위트마저 느껴집니다. 이 사진(왼쪽)은 긴장과 조화, 도쿄도현대미술관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하나의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도쿄도현대미술관 주변, 카페 & 맛집)


참, 조 나가사카는 우리나라 아라리오갤러리도 연인이 깊어요. 올해 초 개관한 서울 아라리오갤러리가 그의 작품입니다.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 옆에 새로 지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아라리오뮤지엄(탑동시네마), 솟솟리버스 역시 그의 작업이고요. 


도쿄도현대미술관 근처에는 그가 디자인한 블루보틀 도쿄 1호점, 기요스미 시라카와 로스터리 앤 카페가 멀지 않습니다. 이곳을 들렀다 미술관을 방문하면 그의 디자인 특징들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뉴질랜드에 본점이 있는 Allpress Espresso Tokyo Roastery & Cafe에 들러볼 만합니다.(그러니 롱블랙이나 플랫화이트를) 미술관 근처에는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카레 집 ‘탄도루 바루 카마루 푸루’도 있습니다. 고로상이 먹은 치즈 크루챠나 램 민트카레를 꼭 맛보세요.



+ 도쿄도현대미술관

www.mot-art-museum.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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