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하는 감정
나는 무리에서 가장 이쁜 애를 종종 질투했다. 이쁜데 몸매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대인 관계도 좋은 애가 주로 내 질투의 대상이었다. 친구들과 그 아이의 흠을 잡아 수다 떨었다. 그렇게 하면 잠시라도 내가 뭐가 된 기분이었다. 높은 곳에서 그 아이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혼자 있으면 공허했다.
질투는 염증이다. 터트리지 않고 계속 내 안에만 두면 곪는다. 심하면 열등감이라는 종기가 된다. 그 종기는 내 근본 없어 보이는 우울의 원천이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질투를 입 밖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질투를 소재로 내 이야기를 하고 나면 질투는 더 이상 힘을 잃었다. 나 쟤가 저래서 싫어라는 말 보다 나 쟤가 저래서 질투 난다는 말이 날 건강하게 만들었다. 질투가 열등감이 되지 않았다.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질투를 느끼면 그대로 말하게 되었다. 나는 네가 무엇을 잘해서 부럽다. 질투 나. 그 말을 하니까 내가 살았다.
“질투심을 느낄 때, 나는 네 번 괴로워한다. 우선 질투하는 것 자체가 괴롭고, 질투하는 나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괴롭고, 내 질투심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 괴롭고, 내가 그런 시시한 감정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괴롭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이런 질투의 무시무시한 힘을 다르게 바꿀 수 있다. 질투를 그대로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질투는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 깎여만 가던 기분이 덜 우울해진다. 내가 무심코 나를 아프게 하는 감정에 익숙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감정을 그대로 통과시켜 보내버리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