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율 1%가 아파트 값을 바꿀 수 있을까?
최근 이사를 했다. 대전에서 학군지라고 불리는 둔산동이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사를 결정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선도지구’였다. 선정 결과가 나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사를 가야겠다는 이상한 조바심이 들었다. 최근 둔산동의 선도지구 관련 아파트들은 5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게 상승했다.
최근 둔산동의 선도지구 관련 아파트들은 5천만 원에서 1억이 넘게 상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나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사를 온 이후 나는 ‘선도지구 동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총성 없는 전쟁을 보고 있었다. 며칠 전, 단지를 천천히 걸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80% 달성”이라고 적혀 있었던 문구가 어느새 “90% 임박”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작 10% 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숫자는 조금 올라갔을 뿐인데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 것 같았다. 선도지구 단톡방에는 동별 동의율 현황이 계속 올라온다. 누군가는 그 숫자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경쟁 지역 상황을 분석하고, 누군가는 자원봉사 참여를 이야기한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건 단순히 동의를 받는 과정이 아니구나. 이미 시작된 전쟁이고, 속도 싸움이구나. 선도지구 동의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동의율이 얼마나 나오면 되는 건가요?”
“90%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80%든, 90%든
기준만 넘기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구조 자체가 달랐다. 선도지구는 기준만 넘기면 되는 시험이 아니었다.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느냐를 겨루는 경쟁이었다. 동의율이 높은 단지가 유리하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벌어진다. 90%와 91%의 차이. 숫자로 보면 1%지만,
실제로는 순위가 뒤집힐 수 있는 간격이다. 그 순간부터 “나 하나쯤은…”이라는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가벼운 표현이 아니라 결과를 바꿀 수도 있는 변수였다. 선도지구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재건축이 싫다, 분담금이 부담된다,
이주가 불편하다. 각자의 이유는 충분히 이해된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정된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추진위원회와 이미 동의한 사람들은 이런 답을 내놓는다. 아파트는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비용을 만들어낸다. 배관은 낡고, 설비는 교체 시기가 오고, 외벽은 보수가 필요해진다. 한 번에 터지지 않을 뿐, 계속 쌓인다. 그래서 결국 선택은 단순해진다.
지금 구조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점점 커지는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 재건축은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지금의 구조를 정리하는 선택에 가깝다. 오늘도 단지에서는 선도지구 관련 방송이 흘러나온다. 무관심한 세대주를 향한 간절한 호소이다.
무관심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흐름에서 빠지는 선택이 된다. 이미 시장은 움직이고 있고, 단지마다 속도가 붙고 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은 더 빨라지고, 멈춰 있는 곳은 더 조용해진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진다.
부동산에서 속도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먼저 움직인 쪽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간다. 며칠 전, 다른 단지를 지나가다 95%라는 숫자를 봤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단순히 “많이 모였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방향이 정해진 느낌이었다. 고민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움직이고 있는 상태.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누군가는 아직 고민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결정을 끝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과는 결정을 끝낸 쪽에서 만들어진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라는 걸.
더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늦은 판단은 선택 자체의 의미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지금은 선도지구 선정 막바지다.
선택은 강요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압박한다. 동의하면 흐름을 타게 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 흐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고 지속적으로 압박한다.
선택은 강요되지 않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압박한다
그 차이는 결국 가격으로 나타난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다. 부동산은 늘 비슷하게 움직인다. 좋은 선택이 결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빠른 선택이 더 큰 결과를 만든다. 이미 시작된 흐름 안에서는 속도가 곧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1%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건 단지의 속도를 바꾸고, 결국 가격의 방향을 바꾼다. 지금은 시간 싸움이다. 그리고 시간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