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은 도통 제목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분 좋게 소주를 한잔 마신 날. 기분 좋게 취하고 보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밤.
주제도 없이 생각이 흐르는 밤, 그래서 제목도 붙일 수 없는 날입니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간만에 오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자연스레 소주를 한잔 기울였지요. 안주는 닭볶음탕입니다. 보글보글, 빨간 국물이 맛깔나게 끓습니다. 우리는 금세 소주 한 병, 밥 한 공기씩을 뚝딱 비워냈지요. 먹는 와중에도 용케 대화는 끊기질 않습니다. 씁쓸한 소주에 진득한 대화를 얹으니 빨간 국물이 더 걸쭉하고 진해집니다. A군은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와 크게 다퉜더군요. B군은 오늘 일하다가 남에게 뺨을 한 대 맞았답니다. 저는 뭐... 요즘 마음이 조금 아팠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냅니다. 엉망진창, 뒤죽박죽, 토닥토닥. 우리 사는 얘기. 밤이 깊어갑니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귀갓길입니다. 해가 지니까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네요. 음료 한 캔 사들고 혼자 공원에서 청승맞게 앉아있습니다. 아직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요. 벚꽃이 벌써 예쁘게 피었습니다. 벌써 바닥에 떨어진 꽃잎도 있더군요. 알딸딸하네요. 괜히 슬픈 마음이 찾아옵니다. 그런 마음 가눌 길이 없어, 몇몇 보고픈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고픈 이들이 있다는 것도 다행이네요.)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더군요. 그래요, 우린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 적(敵)이 대체 누구인지는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 모두가 힘들다는 거,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거, 슬프고도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합니다. 남의 몫까지 함께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남의 슬픔을 위로하겠다는 생각까지는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 접어둡니다.
음료 한 캔을 다 비웠습니다. 술냄새는 여전하지만 술은 조금 깼습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네요.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은 지켰습니다. 모두에게 괜히 미안하고 고마운 밤입니다. 왜 미안하고 고마운지는 알 수 없는, 그래서 제목도 없는, 그런 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