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다시 다섯 명이 되었습니다
멀리 떠난 아주 작은 우주에게.
슬픔은 조금 꺼내 놓았을 때 옅어지니까.
우리 가족은 좀 그렇다. 따뜻하고 애틋하면서도 약간은 서먹하고 가끔은 어색한 그런 가족. 드라마에 나오는 화목하고 발랄한 가족이나 차갑고 냉정하고 서늘한 가족, 그 어느 쪽과도 닮지 않은 가장 보통의 가족이랄까. 표현할 줄 몰라 때론 애를 태우고, 잠시 대화가 끊겨 정적이 흐르면 대화의 주제를 찾느라 속으로 고민하는 그런 가족.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아 있기를 원하고 있음을. 표현은 서툴러도 속으로 끈끈하게, 우린 그렇게 30년이 넘게 무던히 지내온 중고 가족이다. 우리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새것처럼 변하긴 어려울 테지만, 우리는 다시 또 30년을, 그리고 그다음 30년을 계속 따뜻하고 애틋하고 서먹하고 애태우며 보내겠지.
아부지, 엄마, 누나, 나. 우린 전형적인 4인 가족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따뜻하고 서먹한 식구가 된 착한 매형과 함께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 되었다. 이 작은 무리가 모이는 날, 그러니까 가족 구성원 누구의 생일이라던가 하는 날이 되면 엄마는 잡채를 무치셨다. 술이 약한 아부지는 신이 나서 연거푸 맥주를 들이켜고, 엄마는 종종거리며 자꾸만 음식을 내오고, 나는 불판에서 고기를 굽고, 누나와 매형은 이제 됐다고 어서 같이 드시자고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풍경이 자주 보였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나는 정말 사랑했다.
그날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푸짐한 잡채와 삼겹살과 연거푸 들이켤 맥주를 상 위에 펼쳐 놓고,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이 울었다. 생신 선물이라며 누나가 건네준 초음파 사진과, 그 위에 적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이라는 단어와, 붉어진 누나의 눈시울이며 떨리는 목소리와,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 모든 것이 함께한, 그토록 바라 왔던 새 생명이 처음 와준 날. 우린 너무 많이 울었다. 그때의 울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주야. 무한하고 큰 세상이 와주었구나.
어느 날, 어느 밤에,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 준 작은 세계야. 누구도 정확히 할 수 없는 그날에 너는 새싹 돋듯 혼자 피어났겠다. 그리고 그 혼자인 시간 끝에 우리를 만났겠다. 너의 작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가족―너를 지켜줄 세계를.
네 사진을 처음 보던 날 우리는 모두 울었단다. 너를 품은 키 작은 네 엄마도, 그 엄마를 품었던 키 작은 네 할머니도, 키가 조금 더 큰 할아버지와 삼촌도. 그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리는 어버버, 하며 눈물만 쏟았단다. 그러니까 너는 울음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 눈물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고 다만 기쁨과 축복만이 가득했으니, 너는 뱃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듣고 자라나 가장 건강한 울음을 뿜으며 태어날 테다. 그리고 우린 모두 너 하나로 인해 가장 행복하게 울고 웃을 테다. 삼촌은 그날을 감사히 기다릴 거다.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온갖 축복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맑은 울음으로 대신해 전한다. 안녕, 아주 조그만 세계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너를 사랑해줄 조금 더 큰 세계란다―아직 어설픈 네 삼촌이란다.
이 편지는 결국 직접 읽어주지 못했다.
어느 날, 거실에 엄마가 눈시울을 붉히고 앉아있었다. 아부지는 조용히 방에 혼자 계셨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아기 심장이 안 뛴대. 이유를 모르겠대. 잘 크고 있었는데, 이제 심장이 안 뛴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세수를 하는데 그제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울던 그날처럼 맑은 울음, 하지만 이제는 슬픔이 가득 찬 울음. 울음을 멈추고 밥을 먹었다. 식탁엔 정적만이 흘렀다. 무얼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연유산은 흔한 일이라고 했다. 더 건강한 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신호라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래,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잘못이 아니니까, 다만 잘 보내주고 잘 추슬러야 하는 일이다. 그뿐이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 곁을 빠져나와 잠깐 산책을 했다. 햇볕이 따뜻했다. 전화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메시지를 썼다. '사랑하는 누나야. 많이 힘들지..?'로 시작하는 짧은 문자를, 온 힘을 다해 꾹꾹 눌러썼다. 전송 버튼을 못 누르고 한참을 망설였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망설임 끝에 메시지를 보냈고, 곧 답장이 왔다. '누나는 괜찮아~ 잘 이겨내고 있어!'로 시작하는 짧은 메시지.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겨우 이런 울음이 우리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는 멋없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부지와 엄마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시댁에서 몸조리 잘 하라며 이것저것 잔뜩 해주신 음식으로 누나와 매형도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쉬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일에 감사하면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을 먹는다. 가끔씩 식탁에 정적이 흐르긴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따뜻하고 애틋하고 서먹하고 애태운다. 우리 가족은 다시 다섯에 익숙해지고 있다.
누나 잘못이 아니야. 우주 잘못이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울음으로 맞았듯 울음으로 보내주려 해. 울음 뒤엔 덤덤해지길 바라면서. 너무 오래 슬퍼하진 않기를 바라면서.
자연유산은 흔한 일이래. 선물처럼 찾아온 아기가 환상이었던 것처럼 떠나버리는 일. 그래, 그렇게 숱하고 흔한 슬픔을 이겨내고 태어났으니 모든 생명은 경이로운 거겠지. 나는 우리에게 홀연히 찾아온 이 막대한 슬픔이 특별한 슬픔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위로를 받아. 언제든 다시 아기가 찾아올 수 있는 건강한 몸의 증거라는 격려의 말도 감사할 뿐이야. 다만 분명 특별한 슬픔 속에서 많이 울고 있을 우리 누나, 누나의 그 슬픔은 내가 조금 나눠서 먹어버렸음 좋겠다. 사랑하는 모두가 조금씩 나눠서 슬퍼하자. 그리고 건강히 회복하자. 몸도, 마음도.
네가 왔던 게 실감이 나기도 전에 서둘러 떠났구나, 우리 조카. 그래도 원망하지 않아. 미워하지 않아. 네 잘못이 아니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와줘서 고마웠고, 많이 사랑했어. 아직은 양치할 때나 걸을 때, 아무 때나 왈칵 눈물이 나려고 하지만 삼촌은 괜찮아. 좋은 날에 또 만나자. 잘 가. 우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