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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29. 2022

걸음걸음 기운을 얻는 곳

-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지리산 둘레길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대개 내가 가본 산이란, 이미 유명한 등산로라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모두 사람들이 줄지어있었다. 때문에 말소리는 물론이고 염치없이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뽕짝’까지 너무 시끄러웠다. 무엇보다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눠야 한다는 것! 제일 참을 수 없었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안 궁금하고, 응원 같은 거 안 받아도 되는데.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자면 나는 I인데, 그것도 90%나 되는 극 내향인이다. 그런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이야기 전에 몇 개의 대사를 준비하고 심호흡을 한 후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하게 된다. 내가 말하는 것도 힘겨운데, 상대가 누군지, 어떤 이야기인지 파악하느라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만 해도 많은 기운을 쓴다. 그나마 요즘은 사회생활로 단련되어 외향인의 가면을 쓸 수 있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이런 성격은 언제나 단점이 됐다. 말이 없는 것, 발표하지 않는 것, 앞에 나서지 않는 것, 안내 데스크에 길을 묻지 않는 것, 주문 전화를 하지 않는 것. 모두 결점이었다. 내 성격은 내 성격대로 사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틀렸다고 자주 혼이 났다. 마치 산을 오르면서 마주 내려오는 사람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묻지 않고, 산을 내려오면서 마주 올라오는 사람에게 “얼마 안 남았어요, 힘내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나의 산 타는 법이 틀린 것처럼.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서 만난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정상을 향해가는 등산로가 아닌 산등성이를 에둘러가는 길이라 등반인들이 적기도 했고, 워낙 코스가 많고 길어서 각자의 속도로 걷다 보면 흩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어떤 말도 듣지 않고, 누굴 마주칠 거란 기대도 하지 않고, 그러니까 아무런 긴장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새소리만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조용할 때 기운을 얻는 타입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은 곳, 시끄러운 곳에서도 잘 놀지만 그런 곳은 기운을 빼고 오는 곳이다. 잘 놀고도 조용히 혼자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엔 지리산 둘레길이 제격이다. 걸음걸음 기운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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