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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프터글로우 Aug 11. 2024

나 홀로 여행-1

고생 많았어

퇴사를 한 후 내가 도전했던 일들 중 하나는 혼자 여행을 하러 간 것이다.

다소 뻔하긴 하지만 갑자기 자유를 얻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필수 코스 아니겠는가.



여행을 어디로 갈지 크게 고민은 안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멀리도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하는 첫 여행이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뚜벅이어도 잘 다닐 수 있고 여자 혼자 다녀도 위험하지 않은,

그래서 난 내가 여러 번 갔기 때문에 친숙하다고도 할 수 있는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은 정말 여러 번 갔기 때문에 크게 설레지는 않았지만,

막상 혼자 ktx를 타고나니 과연 2박 3일의 여행 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상상을 하게 되어서 신이 났고,

남들이 출근하는 평일에 여유롭게 여행을 간다는 게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지만 내심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너무 외롭다고 느끼면 어쩌지?"

부산은 특히 내가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재밌는 추억을 많이 쌓은 곳인데,

덩그러니 혼자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의 목표는 너무나도 확고했다.

나는 고립되고 싶었다.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만 있을 때 나의 진짜 모습이 궁금했다.

냉철하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최대한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한참 멀었어서 캐리어를 보관해 두기 위해 부산역에 있는 보관함에 짐을 맡겼어야 했다.

배가 고픈 상태로 빨리 짐을 넣으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서두르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캐리어 사이즈보다 한참 작은 사이즈의 보관함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아이고, 바보."

라고 하면서 약간 당황했다.

이미 넣어버린 2천 원은 다시 받을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다시 반환을 하고 새로운 큰 칸에 짐을 보관했다.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캐리어 사이즈를 유심히 보면서 이게 들어갈까? 하면서 같이 상의했을 텐데 싶었지만,

그래도 뭐 혼자니까 이런 작은 실수는 나만 잘 넘어가면 되니까.

이건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허기진 몸을 이끌고 서면으로 향했다.



사실 내가 부산 여행을 결심하면서 이번 여행에서 최대한 스스로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미리 계획을 짜두지 말 것"이었다.

어떠한 틀 안에 스스로가 갇혀있었다는 생각이 강했던지라

혼자 여행을 하면서는 최대한 틀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부산으로 가는 ktx에서 바로 나와의 약속을 어겨버렸다.

나의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맛집과 가볼 만한 곳들을 검색하고 있었고,

나의 두뇌는 오늘과 내일 일정표를 짜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검색한 서면 맛집 '바오'로 향했다.

대만 음식을 정말 맛있게 한다는 블로그를 보게 되어 가게 되었는데,

식당 근처로 가니 웨이팅 줄이 엄청 길었다.



나는 이미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긴 줄을 보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왜 웨이팅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약간 자책을 할 뻔했지만,

그럴 수 있지 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갑자기 엄마가 예전에 가족 카톡방에 tv에 나온 부산 맛집이라며 알려준 식당이 생각나 검색을 해봤는데,

내가 있는 곳 바로 근처에 그 집이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엄마가 알려준 물회집으로 향했다.






'동해횟집'이라는 곳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물이 없는 물회집이었다.

비빔회에 가까웠는데 상추에 싸서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사장님이 무려 나한테 네 번이나 오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찌짐 (부추전)도 서비스로 주셔서 푸짐하게 먹었다.



여자 혼자 여행 와서 혼밥 하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계셨다.

사장님도 아마 내가 혼자 와서 씩씩하게 먹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챙겨주신 게 아닌가 싶다.

사장님의 따듯한 인심에 먹는 내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점심을 먹은 뒤 나는 광안리로 갔다.

부산은 무조건 바다지.

혼자 바다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바다는 나에게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살았을 때 내가 지내던 연태라는 곳도 바다를 둘러싼 도시였어서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닷가였다.

그리고 어릴 때 오래 사귀었던 사람도 바다가 있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왠지 바다는 나에게 미래보다는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곳이다.

이번에도 난 바다를 혼자 멍하니 쳐다보면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았다.



서툴렀고 실수도 많았고,

더 잘할걸 후회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 나름 잘하려고 노력했었던 시간들.



매 순간순간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열심히 산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던.

어쩌면 너무 생각 없이 열심히만 해서 문제였나? 싶었던 시간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동안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속도를 내려고 했던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나도 모르게 그런 나 자신을 책망하고 미워했다.



그런데 그날 멍하니 바라본 바다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참 고생 많았다고, 수고했다고.



그래, 비록 방향을 모른 채 살았지만 그 간 내가 시간을 낭비한 것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이제는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은 낮부터 밤까지 광안리에 머물렀다.

어두워져 가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코 끝에 스치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가슴속에는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정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부터 조금은 다르게 살아볼 미래에 대한 설렘 같은 거였을까.



그렇게 그날 나는 과거의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넸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자신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바다는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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