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향하는 한 걸음
나는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모두가 다 자연스럽게 운전을 하게 되는 줄 알았다.
내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거의 모두 운전을 하실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어른들을 보면 되게 든든한 존재 같았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치 운전을 잘하는 사람들 같았다고나 할까.
아무리 먼 곳이어도 어디든 나를 데려가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지금은 안다.
어른이라고 해서 운전을 하는 게 당연한 것도 아니고,
운전을 하루아침에 잘해진 것도 아니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긴장을 많이 하기도 하고,
그들은 슈퍼맨이나 슈퍼우먼 같은 천하무적도 아니라는 것을.
운전면허는 대학교 때 한 번에 땄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 대비 면허를 따는 게 훨씬 수월한 편인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학원을 한 달 채 안 다녔는데도 합격을 했다.
그리고는 나의 면허는 자연스레 장롱 면허가 되었다.
그 당시 면허를 땄던 이유가 정말 운전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언젠간 필요할 일이 생길 것 같으니 미리 따놓자라고 생각해서 딴 거였으니까.
그러고 나서 회사를 다닐 때 운전 연수를 한번 받아보기도 했다.
그때도 정말 단순히 언니가 운전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냥 해볼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때 받았던 운전 연수는 사실 큰 소득은 없었다.
핸들을 계속 잡고 계셨던 선생님 덕에 사고는 안 났지만 실력은 늘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초,
남들처럼 올 한 해의 계획을 세울 때 나는 나의 to-do list에 '운전하기'를 넣었다.
옛날처럼 운전에 대한 니즈가 없는데 그냥 해야 해서 하는 운전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심으로 운전을 잘하고 싶었다.
명절에 부모님과 함께 외가댁에 갈 때,
항상 엄마나 아빠 둘 중에 한 명이 운전을 해야 했다.
그러면 거의 매번 아빠가 술을 드시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엄마가 아빠보다 술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명절의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못 드시는 걸 보고는,
이 중 술을 제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운전을 하면 딱 맞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남자친구와 근교로 여행을 갈 때도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나만 너무 편하게 갔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가끔 운전하면서 졸리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안쓰럽기로 하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두 사람이 운전을 할 줄 알면 교대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이번에는 운전 연수를 특별히 여자 선생님으로 부탁을 해서 연수를 받았다.
여자들이 비교적으로 남자들보다 공간 감각이 떨어져서 이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여서였다.
그리고 운전 연수를 받고 난 후에도 엄마와 남자친구에게 수차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나의 주행 실력은 현재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방향 감각이 1도 없어 제대로 하지 못했던 주차도 이제 할 수는 있다.
지금은 옆에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조수석에 앉아서 나에게 길을 알려주고
주변 상황을 봐주며 나에게 심신 안정을 시켜준다면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직까지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은 0이지만)
그리고 며칠 전,
부모님을 모시고 서울에서부터 파주에 있는 롯데아울렛을 가게 되었다.
그날은 원래 엄마에게 운전 연습을 같이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마침 아빠가 아울렛에서 살 게 있다고 해서,
그럼 내가 운전을 해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엄마의 제안에 의해
최초로 내가 두 명을 태워서 나름의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아빠가 처음에는 안된다고 말렸다.
내가 운전하는 차를 엄마와 아빠 두 명이 다 타는 게 위험하다고 하셨다.
혹여나 사고가 나면 세 명 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매우 이성적인 판단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역시 아빠는 나를 못 믿는구나 싶어서 사실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런데도 나는 괜찮다고, 나 잘할 수 있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내가 나도 못 믿는데, 남이 어떻게 나를 믿을까.
그래서 그냥 내가 집에 있겠다고 시무룩하게 말하자,
아빠가 그냥 나를 믿기로 결심을 하셨는지 "그래, 그냥 가보자." 하셔서 그렇게 가게 되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참, 숨길 수가 없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공기에 다 녹아져 있다.
파주를 가는 길 내내 아빠가 뒷자리에서 매우 매우 긴장을 하고 계신 게 느껴졌다.
호흡이 빨라지고 내가 가까스로 실수를 모면을 할 때는 얕은 한숨이 나오셨다.
그리고 나도 가족들을 태우고 다니는 게 처음인지라 온몸이 긴장되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긴장을 하니 덩달아 더 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다리도 경직되었다.
운전대에는 나의 손에서 흐르는 땀이 범벅되었다.
정말 다행히도 주차까지 잘 마무리하는 순간 긴장이 확 풀렸다.
아울렛에서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내가 운전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다른 차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운전을 꽤나 오래 했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나는 내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갑자기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감기 몸살에 걸렸다.
열이 나고 목이 아팠다.
나에게 아직은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하는 일은 버겁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직은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든든하고 멋진 어른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 느낌.
그래서 사실 그날 이후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운전을 못하고 있다.
그날 나에게 주어졌던 막중한 책임감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졌고,
내가 운전 연수 그리고 연습을 하면서 그리고 바라던 모습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껴서 괜스레 위축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이라 잘 못하고 긴장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한 번의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주눅이 들 필요가 전혀 없는데 왜 이렇게 기가 죽었었나 싶다.
퇴사를 하고 난 후,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는 일이 크게 없다 보니,
아마도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뭐라도 잘하고 싶었나 보다.
사실 안 좋은 기억들은 있는 대로 놔두고
다시 새로운 기억들로 채워가면 되는 것이고,
못하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연습을 하면 잘해질 수 있는데 말이다.
나의 조급함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는 조만간 다시 도전을 하려고 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어릴 적 상상했던 멋지고 든든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잘해오지 못했던 일들도,
내가 열심히 하면 잘해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처음부터 잘할 것이라는 욕심은 버리고,
그리고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기에,
어려운 첫 시작을 했으니 앞으로도 용기 내서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