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연재를 들어가기에 앞서
아버지가 예전에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옛날 옛날에, 시골 마을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는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짓기까지는 귀찮으셨나 보다..)
A는 마을에 살고 있는 다른 여느 누구와 똑같이 농사를 하면서 먹고살았다.
그리고 B는 더 큰 세상을 보겠다며 마을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세월이 흘러 다시 마을로 돌아와 A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었다.
A는 떠돌아다니다 다시 돌아온 B에게 말했다.
“거봐, 사는 거 별거 없지? 어딜 가나 다 똑같아.”
B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맞아. 세상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녀봤는데 사람 사는 거는 다 같더라. 나는 지금 내 삶에 만족해.”
이 둘은 결론적으로는 똑같이 마을에서 농사짓는 삶이 괜찮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A는 B의 말이 자신이 하는 말과는 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A는 B가 자신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본인이 세상 밖으로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이 조금은 후회되고 씁쓸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데,
아버지가 해석해주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퇴사를 할지 고민된다는 이야기를 꺼낸 차 안에서 이 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그 뒤로 퇴사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을 때,
아버지가 해주신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얼마 전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했다.
요즘 퇴사하는 MZ들이 많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아, 나도 결국 어쩔 수 없는 MZ인가” 싶었지만,
다른 MZ들도 아마 그렇듯,
나는 지금의 나로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해도
또는 망한다고 해도 (망한다는 구체적인 정의는 없지만)
상관없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B처럼,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울지도.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나는 면세점 해외영업팀에 입사하여 회사를 4년 조금 넘게 다녔다.
처음에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꽤나 좋았다.
돈을 벌 수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물론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높아서 야근을 하며 "이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때마다 어른들이 남의 돈 버는 거 쉽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버텨보자는 결론 내렸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사원이 되다 보니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인정욕구가 꽤나 강한 나로서 이 효용성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면 월급을 이 만큼 주는 회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도 묘하게 나는 4년 간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게 나의 길은 아닌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시감..
그리고 나의 자기 효용성의 만족감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직장 5년 차,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리로 승진을 했지만 많은 고민 끝에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를 한 이유가 당연히 단지 기시감 또는 직감 때문은 아니다.
여기에서 다 말하려면 퇴사한 이유에 대한 주제로 따로 빼서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퇴사는 어찌 보면 내가 살면서 일궈왔던 것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막함을 가지면서 내린 선택이기 때문에,
퇴사를 하는 마지막 날까지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고,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패기롭게 퇴사하여 지금은 백수 상태이다.
나는 백수 생활을 통해 먼 훗날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대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크든 작든, 커리어에 도움이 되든 안되든, 그냥 나의 마음이 닿는 대로.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담아보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학창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로 수업을 듣지 않았던 탓에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필력이 좋지 않은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렇게 부족한 나의 글을 누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저하게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보는 사람이 적을 거라는 생각에 더 과감하게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브런치북은 한 번 연재를 시작해서 글을 올리면,
글을 삭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사유의 시간을 잘 걸쳐서 나를 위해,
그리고 몇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
이 순간을 잘 담아보는 것이 나의 목표다.
브런치북의 제목에 대해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는 나의 인생을 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서 하는 게 아닌,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 졌기 때문에 붙여보았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매운맛...
나의 선택으로 인해 살면서 어떤 맛을 보게 되든
내가 직접 먹어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브런치 소개 글에 적었듯이,
"된장인지, 똥인지 먹어봐야 알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나는 직접 먹어봐야 뭔지 제대로 알 것 같다.
그리고 난 인생을 좀 제대로 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의 첫걸음,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풀어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