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도 인사하고 수련 시작하겠습니다. 나마스떼-"
모두가 양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나마스떼-"
"함께 수련하시는 옆분들과도 인사 나누실게요."
어색하게 옆 사람을 보면서 또 한 번 인사한다.
"나마스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나의 몸에 숨에 마음에 집중해 본다.
나는 퇴사를 하기 훨씬 전부터
퇴사를 하게 되면 바로 요가원에 등록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집 근처에 다닐만한 요가원이 없었고,
운동을 하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으므로 혼자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아파트에 붙여진 전단지를 가지고 왔다.
'요가원 신규오픈'
그리고 아래 적힌 주소를 보았는데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였다.
드디어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요가원이 생겼다.
전단지를 본 그 날 바로 등록했다.
내가 요가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나의 굳어진 몸을 펴기 위함도 있었고,
유산소보다는 근력 운동이 필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가를 하면 마음이 평온해질 것 같아서였다.
나는 요가가 힐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요가를 시작해 보니
이건 힐링이 아니라 수련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매우 어렵고 힘든.
나의 첫 인요가 수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인요가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하자면,
요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인(陰) 요가와 양(陽) 요가.
인요가는 음의 기운을, 양요가는 양의 기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요가(빈야사, 아쉬탕가, 하타...)는 대개 양요가에 속한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아사나(동작)와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인요가는 정적인 요가여서 한 자세로 짧으면 3분 길게는 5분을 유지하는 요가이다.
신기하게도 양요가를 하면 온몸에 땀이 나지만,
인요가를 제대로 하면 온몸에 찬 기운이 돈다고 한다.
그날의 수업은 고관절을 타겟으로 하는 인요가였다.
앉은 채로 다리를 벌리고 쿠션 위에 얼굴을 대고 있는다던지 피죤 자세를 한다던지 하는 자세들로 이루어졌다.
사실 그렇게 힘든 자세도 아니고 나의 컨디션이 나쁘지도 않았었는데,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자 느낌이 이상했다.
같은 자세에서 숨을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나는 순간 호흡이 가빠졌다.
어두운 방에 혼자 갇혀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숨이 안 쉬어졌다.
‘쿵’하고 심장이 내려 앉았다.
‘쿵’
‘쿵쿵’
‘쿵쿵쿵’
호흡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도 마치 동굴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멀어져 갔다.
미친듯이 수련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금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사실 나는 이러한 증세를 올해 초 몇 번 겪었다.
아마 아는 사람은 알터인데,
스트레스성으로 공황이 온 것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그리고 공연장에서
내가 그 곳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몰려오면서 시작되었다.
불안이 증폭이 되고 내가 나의 몸을 통제할 수 없어진다.
처음에는 이게 뭔지 몰라서 너무 당황스러워 무서웠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나에게 이러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왜 멀쩡한 나에게 이런 문제가 생긴 걸까.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주변에 나와 같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러한 증상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위안이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그러고는 한동안 나의 증세는 사라졌다.
그런데 인요가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다시 시작이 된 것이다.
이게 무엇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에 덤덤해지려 했지만,
요가 수련이 끝나고 나서 난 생각이 많아졌다.
왜 그랬을까?
내가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퇴사도 하고 이제는 그럴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려다가 이내 깨달았다.
내가 잘살려고 하는 욕심이,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퇴사를 했지만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너무 소중했던 탓에 압박감도 같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움 뿐 아니라,
어쩌면 그냥 쉼이었을 지도.
내가 나를 향한 관대함이었을지도.
그 후로 요가를 하는데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세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수도 있어요, 그만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하지 마시고, 아 내가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구나 하고 내 자신을 받아들이세요."
나는 깊은 내면의 나를 마주했다.
나는 이걸 문제가 아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구나, 내가 조금 힘들었구나, 아팠구나.
그리고 요가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요가가 힘들지만 좋다.
요가를 하다 보니 조금씩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고 인정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요가를 계속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어떤 나를 마주하게 될까?
그게 어떤 모습이든 난 반갑게 맞이하기로 했다.
"오늘도 귀한 시간 내어서 저희 요가원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수련하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남은 하루도 평온하게 보내세요. 나마스떼"
“나마스떼-”
요가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도 나는 나를 받아들이며 마음의 무게를 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