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프터글로우 Sep 22. 2024

독서-1

책에도 정답은 없어

난 "노답이다"

라는 말을 안 좋아했다.



물론, 이 말 자체는 정말 어떤 어이없는 일을 이야기할 때 쓰는 것으로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그냥 "이건 답이 없는 문제야"라는 모든 것이 어렵고 싫었다.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답은 없지만 답과 유사한 뭣도 없다는 건가?

문제에 답이 없다는 걸 아는데 문제를 왜 풀지?






퇴사를 결심하기 약 한 달 전이었다.

당시 나는 무얼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있고

마음이 이미 붕붕 떠있는 상태였다.

나의 이런 심정을 어떻게 표출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당시 나의 독서는 목표가 분명했다.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들을 찾아 읽거나

또는 과거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봤던 책은 자기계발도서나 경험담 위주의 에세이와 같은 장르였다.

내가 원하는 답을 찾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책을 읽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앤돌핀이 돌았다.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나는 그동안 참 게으르고 자기계발에 많이 소홀했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퇴사를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자기계발을 제대로 충분히 하고 싶어서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욕 넘치는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며 나 스스로를 자극했다.







퇴사를 하고 나서도 나의 목적성 독서 행진은 계속되었다.

다시금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의미로 이번에도 역시 자기계발 책들을 한 아름 사서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는데,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동진 평론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다름 아닌, 자기계발 도서가 소히 말해 책으로 된 "꼰대"라는 것이었다.



"꼰대"는 본인의 생각 또는 자신의 경험이 맞다고 생각하고

남들에게 본인의 생각을 주입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에서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맞다"와 같이

정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되어있는데 사실상 그게 모든 사람들에게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은 이러했지만 그게 반드시 남에게도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건 꼰대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논리였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퇴사를 고민하던 당시와 퇴사 직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맞는 것인지 정답을 책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행동들이 과연 의미가 있었을까?

정답이 없는 인생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정답을 찾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나 스스로가 아이러니했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길을 가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서 나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는데,

어쩌면 그 당시 그 답도 틀린 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답", 그야말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자기계발 책을 덮어두었다.

물론, 자기계발 책이 나쁘다 쓸모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목적과 상황에 맞게, 나에게 알맞은 책을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나 스스로의 생각이 서지 않고 남의 말에 휘둘릴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라면,

잠시 덮어두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마치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 것만 같았다.

정(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 - 반(나 너무 생각 없이 살았어, 이제 나만의 길을 가자)- 합(알고 보니 정답은 없었어)






정답이 없으니,

내가 마음 가는 대로,

대신 충만하게, 재미있게,

살고 싶어졌다.



이젠 정답이 없다는 말을 마냥 싫어하지도 않게 되었다.

정답이 없다는 건, 어떠한 선택을 해서 나아가든 상관없다는 거니까.

그래서 정답이 없는 문제라도,

내가 푸는 이 과정을 즐기고 만끽할 수 있다면,

충분히 풀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전 08화 강아지와 함께 하는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