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사랑이야
우리 집에 네가 처음 온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하우스 안에 정말 들어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조용했던 너.
이내 문을 열었더니 웬 털뭉치가 쫑쫑쫑 걸어 나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하더니 내 다리 위로 올라왔지.
너무 감격스러워 약간 눈가 끝에 눈물이 고였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 너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어야 할지 우리는 골똘히 생각했어.
사실 네가 우리 집에 오기 전,
다른 아이가 올 뻔했는데 그 아이가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지.
우리는 그 아이를 만나기도 훨씬 전에 이름은 지어줬기 때문에,
이번에는 선뜻 이름을 지어주기가 두려웠어.
너를 보자마자 마음이 몽글몽글 구름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지.
나와 언니가 쌍둥이라서 '둥이'라는 이름을 이내 떠올렸고,
왠지 귀여움이 조금 더 추가되었음 해서 결국 너의 이름은 '둥둥'이 되었고,
그 후로 너는 우리 가족이 되었지.
우리 집 강아지 둥둥은 4살 토이푸들이다.
둥둥은 내가 퇴사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 집에 왔다.
지금은 시집가서 집에 없는 나의 쌍둥이 언니가 아직 집에 있었을 때,
강아지를 키우자고 해서 우리 가족은 큰맘 먹고 둥둥을 데리고 왔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는 둥둥과 긴 시간 함께 있지 못했다.
평일엔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냈고,
주말에는 몰아 잡은 약속들을 소화하느라 집에 거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귀여운 털뭉치는 내가 매번 집으로 돌아오면 매번 나를 반겼다.
밖에서 쌓여있던 피로가 한 번에 싹- 풀리는 기분.
보드라운 털과 꼬순내 나는 발바닥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힐링이 되었다.
다만, 둥둥에게 나는 언제나 4순위 누나.
가끔씩 자신에게 간식을 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잠깐 나를 반기고 간식을 얻어먹고 나면 쌩하고 엄마와 아빠 곁으로 갔다.
결코 올라올 것 같지 않던 둥둥 마음속의 나의 순위가 변동이 되기 시작했다.
내 방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둥둥은 이제 틈만 나면 내 방에 들어와 바닥에서도 자고 내 침대 위에서도 잔다.
그리고 내가 거실에 있으면 어떻게든 내 무릎 위에 올라오려고 한다.
퇴사를 한 후,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둥둥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둥둥과 하루에 최소 산책 한 번은 꼭 나가고,
끼니와 영양제를 챙겨주고,
틈틈이 놀아주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퇴사 직후 초반에는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해봤다.
둥둥은 맨날 밖에 있던 누나가 왜 계속 집에 있는 것일까 궁금해하려나?
정말 이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강아지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이 작고 소중한 생명체가 우리 집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너는 이 넓은 세상 속에 어쩌다 보니 딱 우리 집으로 왔을까.
우리 집에 없었으면 어디에 있었을까, 이름은 뭐였을까.
이 털뭉치가 우리 집에 있고, 이름이 둥둥이라는 것에 감사하다는 감정이 가슴속에 피어난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가족, 애인, 친구들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법정 스님은 사랑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마지막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는 불교의 교리 중 하나인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이라는 뜻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가 상대방에게 잘해주면,
상대방도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이 말에 의하면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도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나를 기꺼이 희생하며 베푸는 것이다.
나는 과연 진정한 사랑을 했었나? 지금도 하고 있나? 앞으로도 할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난 제대로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 가깝게 간 적은 있어도,
그 기억은 되짚어보면 '이기적임'이 분명 숨어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감정은 사랑과 정말 비슷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형태로,
내가 상대에게 다소 의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푸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나는 둥둥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그리고 최근 들어 가까워지면서,
내가 둥둥을 사랑한다고 느꼈다.
네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그저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그리고 너에게 어떠한 일이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내 몸을 바쳐 너를 보호해주고 싶다.
네가 없으면 안 돼 라는 마음도 분명 있지만,
너를 위해 무언가를 계속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 순간,
이게 사랑일 수 있겠다 스스로 알 수 있었다.
sns에서 반려견 용품을 광고를 보다가 웃긴 글을 봤다.
"가슴으로 낳아 통장으로 기른 내 새끼"
옛날에 마당에서 개를 키우시던 어르신들은 이해 못 하실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
TV에 나오는 동물 프로그램을 보면 강아지도 결국은 동물이라 서열이라는 게 있고,
때문에 강아지를 애기처럼 대하면 안 되고 "개는 개다"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도 둥둥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너무 좋아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둥둥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
나는 내가 지켜오던 그 경계를 허물고 그냥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순간,
그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밖에 없다.
너가 오늘도 내 옆에 있어주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