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4 07화

4-7. 야외설치 중

by moonrightsea

다음날 아침.


" 끝나면 나랑 이야기 좀 해."

영은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휑하니 뒤돌아갔다.

그런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는데.


선배들이 분주히 짐을 챙겨 나간 자리 나는 그렇게 숙소에 엎드려서는 열심히 천에 대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천의 양쪽 중간쯤 머리의 뒤통수를 그리고 다시 양끝에는 마주 보는 얼굴을 그리고 다시 둘이 얼굴을 마주대고 키스를 하는 장면.

연인의 표정은 온화하고 사랑이 넘치고 둘의 표정은 너무나 다정하다. 크게 확대한 이목구비에는 닮은 듯 다른 남성과 여성의 얼굴이 절묘하게 드러나며 선으로 표현된 간략한 느낌은 그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붓을 들어 거기에 색감을 더했다.


푸른 색감을 사용한 여자와 핑크빛 남자 얼굴.

이질적인 색감에 핑크 입술. 붉은 남자 입술. 크고 선명하고 두터운 입술. 아랫입술이 도톰하고 윗입술은 얇은 여자입술. 그 들의 마주한 입술과 붉어진 불터치를 마무리하고 길게 늘어진 머릿결은 준비해 간 색색의 반짝이 털실장식을 하고는 그렇게 주렁주렁 달아서 들고 쵸크를 들고는 바늘과 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혹시 몰라서 스테이플러도 챙겨 들고는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


내려오는 길가에는 제법 작품이 눈에 띄게 설치가 되고 있었다.

색색의 천을 길에 나무에 늘어 뜨린 작품. 게란을 색색이 색칠해서 바닥에 심어 놓은 작품. 돌을 퍼즐처럼 바닥에 깔아 놓고 채색을 한 작품, 일정한 공간에 흰 천으로 물결을 표현한 듯 표현한 작품. 길을 다니는 동안에도 온 마을은 그야말로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도 채 전시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오후 2시인데 벌써 전시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 역시 전문가들은 다르구나. 역시 작가님들이야. 프로군. '

손에 들린 내 작품을 보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초라함에 나도 모르게 손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뒷짐을 쥐고 걷게 된다.

" 미소양. 준비 잘 되어가요?"


길을 내려오다 마주친 교수님께서 방긋 웃으시며 내게 물어보셨다.

" 아 교수님. 교수님 작품을 아직 못 봐서 죄송해요. "


" 아 난 그냥 조각작품을 가져와서 두기만 할 거라. 아직 안 내놨어요."

" 아 그렇구나. 전 지금 설치하려고요. "

" 오호. 처음치고는 잘 따라오고 있군요. 기대할게요. "


" 아. 안 돼요. 아직은... 너무 부끄러운데..."

" 괜찮아요. 아직은 학생이니 부담은 너무 갖지 말아요.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법이니. "

"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받은 용기로 또다시 나름 '아자' 마음속으로 외치고는 다시 씩씩하게 걸어 내려갔다.


나무에 도착해서 어제 만들어둔 돌담길 위를 지나 나무 아래 둥치부터 트리 선을 이용해 사람의 형상을 꾸미기 시작했다. 실루엣을 잡고 준비한 얼굴을 맞춰보고 옆으로 돌아가 옆면을 맞춰보고 또 돌아가 만나는 면을 만들고 다시 돌아가 보니 문득


' 저 나무 뒤에 저들이 진정으로 만나 사랑이 이뤄졌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하지도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의도인데. 쵸크로 체크한 부분을 부여잡고는 나무에 기대앉아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를 타고 쭈욱 올려 서는 실을 나뭇가지에 걸고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나 바라봤다.

' 키가 너무 작나?'

고민하던 찰나,


" 너무 낮은 거 같은데?"

뒤돌아 보니 영석 선배였다. 나는 금방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휘몰아치듯 떠오르는 어제의 장면들.

'비워야 해. 머릿속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투명스레 물었다.

" 웬일이에요?"

" 응? 지나다가. 조금 높게 달자. 있어봐. "


그는 다가와 두리번거리다 조금 큰 바위를 어디선가 낑낑 대며 가져와서는 밟고 올라가 나뭇가지에 내가 늘려 놓았던 실의 길이를 줄이고 있었다. 그러자,


" 알려준 대로 잘하고 있네. 학습력이 대단해?"

영은선배였다.


영석이 영은선배를 매서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 뭘 배운 거야?"


그러자 영은 선배는 팔짱을 낀 채

" 뭐긴 남자 다루는 법이지."




그러자 영석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 풉. 넌 배울 게 없어서 재한테 그런 걸 배우냐?"

내가 아무 말 않고 있자 영석은 바위에서 내려온 뒤 앞으로 나와 그림 높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가며 내 손을 그의 허리에 올리고는

" 잘 잡아 넘어지지 않게."

" 뭐 하니? 잘 잡으라잖아. 안 넘어지게."


이렇게 말하며 영은 선배는 휑하니 등 돌려 가버렸다. 내가 바닥만 보고 멍하니 있자 영석은 이내,

" 안 되겠다. 너 저 앞으로 나가봐. 이 정도 높이면 돼? 확인 좀 해봐."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앞으로 나가 나무를 보았다.


돌담길이 보이고 그 뒤 나무로 이어져 그 위로 그려둔 몸의 라인이 보이고 그 라인 끝에 둘러진 천 위 목의 길이를 조금 더 늘리면 그림에 비율이 얼추 맞긴 하겠는데 그리고 보니 그 옆에 영석이 서 있었다. 나뭇가지에 팔을 올린 채 바위에 올라가서. 화면이 정지화면이네. 나를 바라보는데 미동도 없이 그냥 서 있다.


" 팔 아파. 말을 해줘야지. 높이 괜찮은 거야?"




핏줄이 드러난 잘 발달된 팔근육. 긴 목을 타고 내려온 쇄골. 그리고 그 사이 보일 듯 말 듯 얇게 반짝이는 금 목걸이. 그 아래 풀어 헤친 남방 셔츠. 그 아래 잘 발달 되어 벌어진 대흉근.


딱 봐도 역삼각형 어깨에 아마도 저대로면 복근도 있겠네. 왜 몰랐을까? 난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렇게 떨어져 보니 그는 꽤 건장한 20대 청년이고 혈기 왕성한 남자인데 저리도 건장한 남자인데 왜 난 아무 경계 없이 그리 붙어 다녔지? 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아직 멀었어? 나 좀 그만 감상해 줄래? 잘 생긴 건 나도 알거든?"

" 훗"

어이없음에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그는 그제야 긴장을 푼 건지 '휴'라고 하며 바위에서 내려왔다.


" 설치 끝난 거야?"

" 아직 남았어요. "

" 언제 끝나?"

" 해봐야 알죠. "

" 나 피하려고 점심도 안 먹은 거야?"


"..."

그는 어디론가 가더니 우유와 떡을 챙겨 왔다. 그리고 내 곁에 내려두며

" 챙겨 먹고 해. 계속 일만 하면 쓰러져."

그렇게 말하면서 같이 들고 온 빵을 한 아름 베어 물었다. 나는 떡을 물끄러미 보다가 들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 달다."




멍하니 하늘을 보며 우걱우걱 씹으며 말하는 나를 바라보던 영석이 어이없다는 듯

" 넌 참. 연구대상... 맞지. 그래. 항상 그랬어."

그러다 돌담길을 보더니 손으로 쓱 만져봤다.


" 이야 촘촘히도 깔았네. 대단하다. 이걸..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혼자 촘촘히 채운 거야?"

" 혼자 한 거 아닌데."

" 응?"

" 혼자 다 한 거 아니라고요. "


" 어떤 새끼.. 아 아니다. 그럴 수 있지. 혼자 이걸 어떻게 했겠어. 누군가 도와줬겠지. 이 정도 정밀하게 완성도 올리려면. 그 짧은 시간에. "


그렇게 말하며 우유를 마시던 그를 째려보며 나는 퉁명스레 물었다.

" 작품 다했어요? 여기서 노닥거리게?"

" 아니?"

" 그럼?"


" 난 작가로 온 것도 아닌데?"

그의 대답에 너무 어의가 없어서 나는 거의 화를 내다시피 그에게 다시

" 그럼 왜 온 거예요? 도대체?"


" 말했잖아. 너 보러 왔다고."

" 허어."




어이가 없다.

어제 다 봤는데. 난 다 아는데.


'남자새끼들 거짓말쟁이. 다 거짓말이야. 그렇게 나한테 보고 싶었다고 난리 쳐 놓고 어제는 영은선배랑 그 짓거리를 하다 딱 걸려 놓고 난 다 봤는데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지?'


나 참 어이가 없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방 속 물감을 들어 돌담길을 채색하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색을 먼저 찍어두자, 눈치 빠른 영석이 내가 찍어둔 색을 뺏어서는 열심히 칠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가방을 뒤져서는 다른 색을 꺼내서 칠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냥 내가 칠하기 시작했다. 좁은 돌담이라 동선이 자꾸 영석과 겹친다. 나는 다시 붓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다른 색을 꺼내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뒤로 한발 물러나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를 일으켜 세웠다.


" 막 칠하지 말고 좀 보고 해."


순간 뒤로 물러 났을 때 그가 잡은 어깨를 풀려고 하는데 문득 내가 칠한 돌담길이 내가 원하던 방향의 색감과 다르게 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당황한 나는 그를 보며

"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가사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 훗. 내가 니 머릿 속에 있잖아. 안 그래? 이제 그만 말할 때도 되지 않았어?"

" 이 씨"

나는 붓을 집어던졌다.




화는 나는데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니까. 온통 잡생각이 가득해서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잡생각을 안 하려고 시작한 그림이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미친 듯 매달려온 그림인데 왜 빤히 내 속이 저 인간한테는 들여다 보인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하물며 내가 칠하고자 하는 색감방향까지 보인다는데 어이가 없다.

그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 그렇게 한참을 있어도 잠이 안 온다. 아직 낮인데다 작품도 계획대로 안되었으니 그럴만하지. 아휴. 내 성질머리는 왜 이래 가지고. 그렇다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다.


그때. 누군가 내 이불을 젖혔다. 그리고 팔을 치운다. 영석이다.


" 내려가. 방해 안 할 테니. 마저 마무리해. "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내 나무에게로 갔다. 그러자 어느새 돌담길은 내가 채색하고자 했던 색감들로 채워져 있었다. 붓은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햇빛에 말려둔 채.


" 하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붓을 들어 색감을 바꿨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대로 채색했다.

아주 악마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다시 생각해도 좀 웃긴 거 같은데 다 칠하고 보니 정말 내가 내 작품에 그 정성스레 곱디곱게 깔아 둔 내 작품에 흔히 말하는 난도질을 한 턱이다.

'어이가 없네. 내 작품의 제목이 '사랑'인데. 이리 시커먼 돌담길을 만들어 두다니.'


원래라면 흰 바탕의 돌담길이 회색이었다가 알록달록 바뀌며 핑크 빛으로 물드는 설정인데 이건 뭐 흠. 색감의 통일성이나 계획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가 없다.


그래 어차피 돌담은 정성스레 깔아 둔 거에 만족하자.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미친 짓을 더 하기로 했다. 색연필을 꺼내 밑그림을 그리고 그 울퉁불퉁한 나무 결이 드러나는 천 위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혀 핏줄처럼 얽힌 거미줄을 쳤다.


속이다 시원하다. 비록 내 작품의 의도와 달리 엉망이 되었지만.


어느새 둘러보니 검은 땅거미가 바닥에 내려 어두워져 있었다. 그림에 미쳐 그렇게 난도질을 해놓고 미친년처럼 감상까지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지친 발걸음을 옮겨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는 분주히 식사 중이었다.


" 왜 이렇게 늦었어. 벌써 다 준비했는데. 어서 이것 좀 도와. "




오늘따라 영은선배는 유달리 앙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몇 없고 거기에 후배라고는 1,2, 3학년은 통틀어 나밖에 없는데 내가 사라지면 재학생 여자는 언니들 두 명뿐이었다. 그렇다고 하늘 같은 대선배들이 많이 움직이신다 해도 수발드는 사람이 어찌 한 두 세명으로 될까.


또다시 열심히 여기저기 오가며 반찬에 술안주를 나르고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난 뒤 자리에 앉아 그제야 밥 숟가락 뜨려는 찰라, 식사를 마친 영은선배가 따라오라고 했다.


선배를 따라 펜션 뒤로 가니,


" 너 영석오빠 잘도 구워삶았더라. 민혁오빠한테 말하면 죽는다?"

" 뭘요?"

" 몰라서 물어?"


" 전 못 봤는데요?"

" 뭘 보긴 봤나 보네."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영석이 일어나며 말했다.


" 언제부터 듣고 있었던 거예요?"

" 넌 언제부터 그렇게 쥐 잡듯 잡은 거야?"


영은선배는 말했다.

" 괜한 오해 말아요. 그런 적 없으니까. 선배."






" 오해인지 아닌지는 본인한테 내가 직접 물어보면 되지. 일단 밥부터 먹이고."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나를 앉히고는


" 밥 먹어. 너 밥 먹을 때까지 안 갈 거야."

" 이렇게 있으면 밥이 넘어가요?"


" 오구. 투정 부리냐?"

그는 손으로 내 턱을 살살 간질이며 웃었다. 갈수록 어이가 없네. 그런 그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저 멀리서 졸업한 선배가 영석을 불렀다.


" 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우리 강아지 건들리는 놈 누구야. 영석이 너냐? 너 이리 와봐. 새끼야."

" 예 선배님! 제가 한잔 드립죠."

그렇게 말하며 영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큼 술병을 들고는 사라졌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배가 무지 고팠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기 싫은 건 왜 일까. 눈앞에 보이는 국을 당겨 밥을 말아서는 꾸역꾸역 밀어 넣다 갑자기 구토가 밀려왔다.


나는 급하게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그렇게 방금 밀어 넣었던 것과 낮에 먹은 떡까지 다 속을 비워내고 변기 옆에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 다시 세면대에 일어나 양치를 했다.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몇 번을 입을 헹구고.


세면대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영석이 들어왔다. 화장실 문을 잠근 채.




" 괜찮아?"

" 나가요."

" 묻잖아. 괜찮은지. "

영석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 괜찮을 리 없잖아. "

나도 모르게 그런 영석의 반응에 눈물이 핑돌아 신경질을 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며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밀쳤고 그는 아랑 곳 않고 다가와 옷사이 손을 넣어 가슴을 주물렀다.


" 발정 난 개 같아."


내 말이 그에게 더 자극이 된 것일까?

아니면 그를 더 화나게 만든 것일까? 그는 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내 다리 사이에 다리를 밀어 넣었다. 그러더니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며 가슴을 애무한 뒤 허리를 타고 내려갔다 내 볼에 거친 입김을 불어대며 귀에 대고 물었다.

" 어디까지 본거야? 응? 질투한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바지에 손을 짚어넣었다. 내가 손을 잡자, 그는 매섭게 뿌리치며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며 내 입술을 깨물듯 물고 내게 말했다.


" 너 내 거여야 해. 넌 내가 가질 거라고. "

강하게 뿌리치던 내 손길에 나는 힘을 빼고 그의 입술이 퍼붓는 키스에 호응을 했다. 그러며 그에게 물었다.


" 가져가 보시든가. 근데 마음도 가져가져?"


이렇게 말하며 나는 온몸의 힘을 쭉 빼 버리고 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노려봤다.

미칠 듯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던 그의 몸부림이 내 눈을 보더니 멈췄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면서. 그의 숨은 한동안 멈출 줄 모르고 거칠게 내 쉬고 있었다.


" 똑똑 안에 누가 있어?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옷을 고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나를 보고 영석을 보더니 '어'라고 연신 말하자 영석이

" 아 미소가 속이 안 좋아서 다 토해서..."

그의 구차한 변명과 다르게 나는 너무나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고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선배들은

" 오 영석이 드디어~ 이리 와봐. 자식아. "

하며 나를 따르던 그를 잡아챘다.




그사이 나는 내 작품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전화가 울렸다. 나는 받을 수 없었다. 누군지 알기에. 그렇게 나무 아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불빛.

제발 오늘은 오늘은 아무도 여기를 안오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 어이 우리 꼬마 아가씨 왜 울어."

"...."


" 말조차 할 기분이 아닌가 보네. 자."

연우가 건넨 건 맥주 캔이었다. 안에는 소주가 가득 든.

한참을 꿀꺽 거리며 들이켰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 오빠"

" 응?"

"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과 키스하면 어떤 느낌이에요?"


" 그거야. 상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상대와 어떤 목적이냐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다르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에게 키스를 했고 처음 그는 당황한 듯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천천히 부드럽게 고개를 돌리며 어느새 나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키스를 하고 난 뒤,


" 뭐야. 이렇게 해야 속이 풀리는 거야?"

"..."

" 흠. "

그는 연신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내게

" 도둑 키스 값은 받아야지? 이제 말해봐."


" 뭘요?"

" 아무 감정이 없는 상대와의 키스."

나는 순간 멍해졌다.

" 응? 지금 먹튀 하려는 거야?"




그는 고개를 푹 숙인 내게 고개를 숙여 얼굴을 들이민 채 물었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모르겠어요...."

그는 내 입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며 연신 물어본다.


" 뭐라고? 잘 안 들려"

"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멍해졌어요."


" 이런 실망인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네. 다시 할래?"


이렇게 말하며 그가 내 턱을 들었고 두 볼에 눈물 범벅이 된 채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천천히 내 두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천천히 더듬고는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입술을 비비고 코를 비비고 빙긋 웃더니 다시 입술을 맞췄다.


" 애기 맞네. 천천히 생각해 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말해. 알았지?"

이렇게 말하고는 나와 나란히 앉아 무릎에 팔을 얹고는 하늘을 보고 술을 연신 들이켰다. 내 어깨를 토닥이며.







keyword
이전 06화4-6. 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