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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만남3
08화
#1-29. 가졌다는 착각
나를 움직이는 것
by
moonrightsea
Jul 5. 2023
그는 내가 만나는 동안 한 번도 부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단언컨대.
그는 항상 내 위에 군림한다 생각했고 그가 원하는 대로 나를 이끌어 왔다.
나는 그의 그 군림에 순순히 응하리라.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에게 도착과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 집 앞이야. "
그러자 지하 주차장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그는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거의 반이 인사불성이 되어서는.
"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평소에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뭐 그럴 만큼 같이 오래 있어 본 적도 없지만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것 또한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나를 훑어 봤다.
" 입구 왔네. 엄마 유품. "
나는 그의 옷방으로 갔다. 그러자 그가 따라 들어와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벽면인 줄 알았던 맞은편 벽 한쪽이 두쪽으로 갈라지며 또 다른 옷방이 나왔고 그 안에 옷장이 하나 더 있고 그 옆에 사진과 그의 어릴 적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 오늘이 엄마 기일이야. 날 두고 떠나 버렸거든. 그 미친 새끼 때문에. "
굳이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따라 들어와 비틀 거리는 그의 손을 내 어깨에 얹은 채 옷방 의
자에 앉히고는 반이 열려 있는 그 방으로 들어가 종이가방에 가지고 온 내 옷을 꺼내서는 갈아입었다.
그러자 그가
" 옷은 왜 입어?"
" 훗. 내가 너네 집에 오면 당연히 자는 줄 아나 보구나?"
그러자 그가 의자에 비틀거리며 앉은 채 내게 두 팔을 벌렸다.
" 안아줘. "
예측할 수 없는 그 답지 않은 모습.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칭얼대는 듯한 모습.
오늘 그가 내게 바란 건 이런 모성애였구나.
나는 그에게 다가가 두 팔을 뻗어 그의 머리를 감싸 안고는 포근히 가슴에 파묻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내 품을 파고들며 얼굴을 비벼 댔다.
" 가요."
나는 그의 팔을 내 어깨에 얹은 채 그를 이끌고 거실로 나왔고 그는 이내 다시 거실 소파에 가서 늘어졌다.
그리고 한 팔을 이마에 얹은 채 그는 내게 말했다.
" 굳이 벗어놓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입구만 있어도 되는데."
" 그 옷하나 없어져도 그렇게 서운해하면서 어떻게 옷이 닳게 그냥 둬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의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하우스 키퍼가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을 잔뜩 해뒀었다. 나는 그중에 소고기뭇국을 꺼내 데우고 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치와 반찬 몇 가지를 더 내어 놓고는 계란 프라이를 했다.
아마도 그가 평소에 보지도 못했을 반찬들. 다행히 진열장 구석구석 뒤지니 양념장도 이것저것 튀어나왔다.
'여기서 요리를 하긴 하는구나. 하우스키퍼도. '
나는 그중에 간장과 참기름, 버터를 꺼내서는 계란 프라이와 갓한 밥에 넣고 비벼서는 식탁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 밥 식어요. 어서 먹어요."
그러자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있던 그가 놀라 식탁으로 달려왔다.
" 이게 뭐야?"
" 가정식 개밥이라고 하는거. 어서 먹어요. 떠 먹여줘요? 자 아~"
" 아?"
그가 내게 물으며 입을 벌렸고 그 틈을 놓칠세라 나는 냉큼 그의 입에 한 숟가락 떠 넣었다.
그러자 그가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했다. 빈 속에 얼마나 술을 쏟아부은 것인지. 그는 그렇게 술을 다 개어 내고는 이내 기다 시피해서 침실로 갔다. 그의 뒤를 따라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눕히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그가 내 손을 잡으며
" 나 잠들 때까지만 같이 있어."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고 그의 새근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침대아래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잠이 들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깨서 보니 침대에 그가 없었다.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어느새 그가 식탁에 앉아 아까 차려 놓았던 밥을 먹고 있었다.
" 일어났어?"
" 괜찮은 거에요? 속은?"
" 응 이제 정신이 좀 드네. "
아까 데워서 다 식어빠졌던 국을 한 입에 후루룩 둘러 마신 그가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 개밥 먹을 만 한데?"
" 잘 먹었으면 됐어요. 난 이제 집에 가야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다가와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 나 아무래도 가족이 필요한 것 같아. 아니 네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더 잘 알겠어."
나는 그런 그의 말에 뒤돌아 그의 팔을 풀고는
" 나도 모처럼 맞은 주말에 잠은 좀 편하게 자고 싶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밥도 든든히 먹었겠다. 이제 좀 잠 좀 여유 있게 더 자요."
그렇게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새로 장만했던 이불로 몸을 던졌다.
편안한 나의 공간. 어느새 노곤해지는 몸. 잠이 스스륵 밀려온다.
채 몇 시간 잠도 푹 못 잤는데 미친 듯 전화가 울려 댔다. 전화의 전원을 꺼버리려고 들었다가 한숨을 쉬고는
" 왜! 아까 갔잖아요!"
" 집 앞이야. 나와."
' 집 앞이라고? 나 어제 이사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나는 놀라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가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냉큼 그의 차에 올라탔다.
" 어제 이사했는데 어떻게 안 거에요?"
" 어딜 가든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한 게 이상한 거 아냐?"
" 그럼 이제껏 내가 어디 사는 지도 다 알았던 거에요?"
" 모른 척한 것뿐이지. 네가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
내 눈은 초점 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정말 그의 말대로 난 그의 손바닥 안에서 이제껏 놀고 있었던 것인가.
" 그럼 계속 모른 척 하죠. 왜 이래요?"
그러자 그가 나를 두 팔을 벌려 끌어안고는
" 이제는 더는 못 두고 보겠거든. 나도 인내심에 한계에 다다른 거 같아."
그렇게 말하고는 안전벨트를 채운 뒤 차를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 어디 가는데요?"
내 물음에 그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내 손을 잡고는 방긋 웃으며 미친 듯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고 표지판을 보니 인천으로 가는 길.
하아~
창문을 바라보며 손을 이마에 기댄 채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몇 번을 나를 바라보다 이내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 좋은 곳에 데려가려고 했는데... 너는 이런 게 전혀 안 통하는구나?"
" 알았으면 차 돌려요."
그가 차를 돌려 다시 천천히 운전을 하며 나를 힐끔 바라봤다.
" 언제부터 내 눈치를 봤다고?"
" 내가 눈치를 언제 봤다고 그래?"
그가 당황하며 말했다. 나는 그를 보며
" 풉"
그가 나에게 보인 틈 하나.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가 긴장하며 앞을 주시한 채 운전하는 틈을 타 그의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허벅지를 쓱 쓸었다. 그러자 그가 바짝 더 긴장하며 어깨를 쫙 펴고는 내 손을 잡았다.
" 이 손 위험한 신호인 거 알지?"
그는 내 손을 꼭 쥔 채 입으로 가져가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나는 그런 그의 손에서 내 손을 쓱 빼며,
" 글쎄. 제법 탄탄한 거 보니 운동 좀 하나 보네."
그러자 그가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 내가 괜히 젊음을 유지하겠어? 나이도 너보다 세 살 밖에 안 어린데."
' 나보다 세 살 어리다고?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그가?'
그러고 보니 세희와 내가 두 살 차이 나니 그와 세희는 한 살 차이. 둘이 연인이 될만하긴 하네. 어쨌든 그가 확실히 동안은 동안이다. 관리를 잘한 비결이 따로 있긴 있었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아직 싱글이니 그럴 수밖에.
어느새 그의 차는 더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이제 내 차례인가?'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다.
이 판의 설게자는 나다. 내가 내 인생을 걸고 시작한 이 길.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뛰어든 판에서 내게 목숨 따위는 아깝지 않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것은
뭘까. 내게 연민 따위가 있을까?
내게 사랑이나 애정 따위가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착각한다.
이 타이밍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나는 악녀여야 하고 나는 악녀이니까.
그렇다 나는 악녀이니까.
그들의 그 착각의 타이밍에 나는 놀아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야 게임이 본 궤도에 진입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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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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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1-27. 들여다보면
07
#1-28. 판의 주인공
08
#1-29. 가졌다는 착각
09
#1-30. 스며들다
10
#1-31. 길들여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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