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여느 때 같으면 그의 그런 거친 숨에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을 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손끝이 그를 파고들었다.
그의 몸 구석구석 그를 훑고 지나가자 그는 거칠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 내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줄 알면서도 나를 탐하려 들었네?"
그렇게 말하며 그의 볼에 입술을 가져다 댄 채 그의 입으로 가져가자 그는 거칠게 키스를 퍼부었고 그런 그의 얼굴을 이내 떼어냈다.
" 여기에 룰은 당신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
그렇게 말하며 그의 몸 구석구석에 나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그가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내가 머릿속에 아른 거리도록 그렇게.
부드러운 나의 손짓과 나지막한 음성들이 귓가를 맴돌고 온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도록. 그의 거친 손과 그의 격한 몸을 가녀린 두 팔로 움켜쥐고 그렇게 그를 타고 내리자 그는 온몸을 베베 꼬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 후훗. 아직 게임 시작도 안 했다니까?"
룰을 정한 자의 여유.
그의 어디가 성감대인지 그에게 어떤 행동이 그를 자극하고 그를 환장하게 만드는지 정확하게 인지한 나는 그를 안달 나게 그렇게 온몸이 말리도록 애간장을 녹여가며 그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와 한 몸이 되어 그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때로는 내가 그를 이끌며 그렇게 열정적인 밤이 깊어가며 우리가 나눈 몸의 대화는 그의 뇌리에 인이 새겨질 정도로 강하게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틈이 날 때마다 주말이면 나를 찾아 들도록 그렇게 길을 들여놨다.
" 넌 예전부터 내게 그렇게 말하는데 나한테 관심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말하지? 왜 자꾸 나를 떠보려 드는 거지? 남자들은 이상한 버릇이 있네?"
그러자 그가 커피를 마시다 나를 곁눈질로 힐끔 바라봤다. 그리고는 커피컵을 그대로 입에 문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 뭐 다른 여자들과 반응하는 것도 다르고 어쩌면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 가늠할 수 없고 때로는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네가 여자란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냥 술술 말하게 되니까. "
" 뭐 여자들도 똑같아. 편한 상대에 따라서는 성적인 이야기도 편하게 하지. 친구사이고 고민 들어주는 거니까. 오늘만 해도 네가 관심이 있는 그녀에게 어떻게 잘 보일까 고민하는 거고 내가 아는 세희는 너 같은 무성욕자는 딱 질색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 포인트에서 내 얘기가 왜 나오지?"
" 그냥 네가 좀 다르다는 말을 할 타이밍이었다니까. 근데 거기서 내 성욕을 운운한 건 너잖아. 그리고 내가 성욕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 그거야 네 시선이 말하잖아. 저렇게 몸매가 드러나거나 네게 잘 보이려고 예쁘게 한껏 멋을 낸 여자들에게는 눈길도 안 주면서 네가 모르는 정보나 지적인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에게 너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연히 시선이 가고 그때마다 눈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이 반짝이니까. 그게 네 스타일이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들이켜자 그가 놀란 눈으로 커피잔을 입에서 떼어 두 손으로 쥐고는
" 와 너 관찰력 장난 아니다. 그래서 네가 우리 부서구나."
" 그걸 이제야 안 거야?"
" 그럼 그냥 딱 봐도 남자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바로 눈에 보인다는 거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꼬며 그의 어깨에 내 가슴을 바짝 붙이며 그의 귀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 이런 은근한 스킨십?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상대를 향한 야릇한 욕망?"
그러자 한팀장은 꼬고 앉아 있던 다리를 풀며 벌떡 일어나 귀를 막 후벼 팠다. 그리고는
" 야 귀 간지러. 으 닥살 돋아. 그건 상대마다 다르다고. 난 딱 질색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뒤돌아서 먼저 내려가 버렸고 나는 그런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친한 척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 아잉 왜 그래용. 한 팀장 뉘임~~ 네 엥?"
그러자 그가 더 깜짝 놀라 나를 물리치고는
" 으 잡귀는 물러가라~휘이~~ 으 요망해. 으 닥살...!!!!"
그러며 후다닥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닫힘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나는 씩 웃으며 얼른 달려가 엘리베이터에 내 발을 밀어 넣고는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 그렇게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나 싶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30층.
'어 이상하다. 이 엘리베이터는 여기 안 서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태호가 탔다. 그의 수행비서와 함께.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수행비서의 태블릿을 통해 보고를 받으며 연신 수행비서는 한 손으로 그의 귀에 대고 머라고 속삭였고 그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그.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 뒤 멀뚱히 뒤에 서 있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한팀장은 내 곁에 서 있다 슬그머니 한 발짝 더 옆으로 물러나 엘리베이터 귀퉁이로 가더니 천장을 보며 연신 머리를 한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무슨 생각을 떠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 대표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머리를 두드린 한팀장 입에서 12층이 다 되어서야 나온 첫마디.
그러자 태호는 고개를 반만 돌리고 눈을 내려간 채. 까딱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1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우리가 비켜가듯 문에 바짝 붙어 그의 곁을 지나가는데 태호가 말했다.
" 이제 식사하려고요. 식사는 다들 하셨나요?"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그 앞에서 숨이 넘어갈 듯 멈춰서 버렸던 한 팀장은 그제야
" 후우~~"
하며 크게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다시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엘리베이터 안에는 비서가 급하게 문을 잡았는지 열림 버튼을 열심히 누른 채 서 있었고 한 손으로 손짓을 했다.
" 식사 안 했으면 같이 할래요?"
순간 당황해서 입이 딱 벌어진 한팀장의 턱을 내가 손으로 바로 닫아 올려 버리며,
" 죄송해요. 대표님. 저희는 방금 식사하고 커피까지 마시고 왔어요. 식사 맛있게 드세요. 찡긋. "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들어 보였고 그제야 한팀장은
" 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더 먹을 수 있습니다!"
" 그럼 다음 기회에 식사나 한 끼 하죠. 한팀장."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와 나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나 설마 내일 잘리는 거 아니지?"
" 갑자기? 네가 왜? 대표랑 식사 같이 안 해서? 대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사람 밥줄 가지고 그렇게 마음대로 자르게?"
" 응. 그러니 대표지."
" 진짜 어이없다. 그냥 자르라 그래. 너 정도 능력이면 어디든 안 받아 주겠어?"
그러자 심각하던 한팀장의 표정이 금세 익살스러운 얼굴로 바뀌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 흠. 난 절대 혼자 잘리지 않겠어. 나 잘릴 때 너도 꼭 같이 잘리게 해 주지. 칫."
" 뭐야. 물귀신 같은 놈!"
" 들어가자. 이러다 점심시간도 지났겠다. 정말 이러다 진짜 잘릴라."
한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낀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나를 비상구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이 밀었다.
" 어쭈? 사무실로 후퇴를? 칫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한팀장님. "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다시 사무실 모드로 태새 전환 돌입하며 업무로 빠르게 복귀했다.
여유를 한껏 부리고 돌아오자 이내 책상 위 던져뒀던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으. 나의 업무들.
한동안 호기롭게 여유를 한껏 부려왔건만 이제는 정말 업무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것을 잘 알기에 프로젝트란 프로젝트는 죄다 발을 담궜고 그 업무 분석과 자료 취합의 정점에 내가 있다 보니 연일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강행군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쉬는 시간인 점심시간 마저 이렇게 한팀장과 꽤나 수다를 오래 떨고 집에 가면 정말 말 그대로 떡실신이 되기 일쑤였다.
오늘도 그렇게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자료들에 파묻혀 나는 기어이 새벽 1시가 넘어서 퇴근을 했다.
그런 바쁜 일정 속에서도 주말이면 태호는 나를 찾아왔고 진짜 잠시 시간을 내어 태호의 차 안에서 그리고 태호의 집에서 잠깐씩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내게는 일이 더 많이 산더미처럼 밀려들었다.
마치 네가 그렇게 놀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듯이. 일은 아주 사람을 잘 알아보고 찾아왔다. 어찌 내가 워커홀릭인 줄 알고 그렇게 줄기 차게 찾아드는지.
결국 일을 한 움큼 쳐내고 프로젝트를 끝내기 무섭게 다시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다시 분석을 끝내면 새로운 회사 데이터가 쌓이고 구성원들 신상 파악부터 회사 분위기 파악에 정치, 사회면 트렌트 파악에... 쉴 틈 없는 일 속에 점차 지칠 대로 지쳐가는 하루하루가 지속되며 어느새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미친 듯 일을 하다 보니 결국에는 한팀장과 시간도 맞지 않아 점심마저 거른 채 그렇게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 으~~~ 내가 이렇게 미친 듯 일을 하면서도 일이 이렇게 손에서 안 놔지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사무실에 직원들은 다들 식사를 하러 나갔고 그나마 몇몇 남아 있던 사람들 마저 커피를 마시러 나간 사이 갑자기 웅성웅성 소란 스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사무실 앞 유리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바라보고 있었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바라보자,
태호가 눈에 들어왔다.
" 도저히 안 되겠다. 나가죠. 나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 세희 씨에 관해서. "
느닷없는 그의 말.
얼떨결에 그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지 태호는 이내 뒤따르는 내게 등을 보이며
" 세희 씨 연락은 왔어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저랑 가서 이야기 좀 하시죠. "
' 세희? 세희는 자기가 더 자주 연락 잘하고 지내면서 왜 나한테 묻는 거야?'
" 김비서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나중에 합류하도록 하지. "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지하 4층을 눌렀고 이내 문이 닫혔다. 그러자 그가
" 휴우~"
" 따라와."
그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순간 세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이내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아무 말 없이 그의 말대로 태호의 차에 올랐다. 차문을 닫자 말자 그는 급히 차를 몰아 회사를 벗어났고 나는 그가 어디론가 향하기에 그의 심각한 표정에 정말 큰일이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가 향한 곳은 그의 집 차고.
차가 도착하자 그제야 그는 환하게 웃으며
" 휴우. 내려. "
" 여기... 이 시간에 왜 온 거예요?"
" 도저히 안 되겠어. 자꾸 눈에 밟혀서 미칠 거 같아. 일이 손에 안 잡혀. 이렇게라도 못 보면. "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허벅지를 쓸어 올리며 키스를 해왔다. 그리고 나를 엘리베이터로 밀어 넣으며 문을 닫았다.
나와 일가친척도 아니고 그저 아는 동네 언니였고 조금 친한 사이 정도 일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사람들은 도통 믿으려 들지 않았다.
왜 대표가 그렇게 애타게 찾아와서까지 세희 안부를 물으며 세희와 대표는 어떤 사이길래 직접 찾아가지 못하고 그렇게 쩔쩔 메느냐며 나를 안달복달했다.
나도 모른다고 내가 모르는데 남녀 사이를 내가 어찌 알겠냐고 말해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뛰어난 상상력과 SNS 서치실력을 동원해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그렇게 연일 뉴스나 기사를 가져와서는 내게 들이밀며 검증을 요구했다.
정말 이놈의 회사 이놈의 부서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말했던가. 시간이 약이라고... 꽤나 시간이 흘러가자 자연스레 연애가십거리에 새해에 그렇게 또 사람들은 한 텀 숨을 돌리며 잊어버렸다.
사람들하고는.
하지만 한번 사라진 내 입맛은 도통 두 달이 넘도록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급기야 음식만 보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팀장은
" 야 그러다 너 송장 되겠다. 죽이라도 먹어. 그래도 너 챙기는 건 이 친구 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죽을 사다 줬고 그것마저도 겨우 한두 숟가락 겨우 뜨고 나머지는 먹는 족족 다 토해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구나.
그날도 피곤에 절어 밤 11시 넘어 집 앞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갈증에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벌써 두 달째 먹는 족족 토하다 보니 집에 물도 떨어져 사야 한다는 걸 까먹어 버렸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니 그럴 만도 하지.
출근하면 사람들한테 시달려, 퇴근하면 집에 들어가 화장도 안 지우고 그대로 잠들기 바쁘고 그나마 깨어 있을 때는 대학원 수업 준비로 미친 듯 리포터를 써내거나 시험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몰랐기에 집은 거의 쓰레기통 수준에 옷은 거의 이틀에서 삼일에 한번 갈아입을 정도로 내 삶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나마 속옷만 겨우 매일 갈아 입구 세수도 아침에 하고 나가는 게 신기할 정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그냥 그것만 사기 미안해서 둘러보다 보니 마침 진열장에 맛있는 딸기가 예쁘게 포장되어 있어서 나는 그것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고 물과 딸기를 올려놓자 점원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다 후다닥 계산을 하러 들어오며 내 앞에 있던 카운터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나는 뒤로 뒷걸음질 친다는 것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 뽀뽀 삐뽀~~"
희미하게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 그리고 이내 누군가 내 눈에 불을 비추며
"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
" 저 물...."
그러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바짝 마른 내 입술을 보고는 물을 한잔 떠 주며 나를 받쳐주었고 그녀가 건넨 물을 받아 마시자마자 나는 구토끼가 올라 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하다 다시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자 병실 안.
" 환자분. 임신인 줄도 모르신 거예요? 이러다 산모도 아이도 둘 다 영양실조 걸려서 죽어요. 왜 그러셨어요?"
" 제가 임신요? "
" 어머 진짜 모르셨구나. 어떻게... 임신 5개월이 다되어 가시던데... 생리도 없었을 텐데 모르셨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규칙적이지는 않았지만 생리가 최근에 없어지긴 했었다. 원래 두 달 걸러 한번 하거나 이렇게 많이 먹는 것을 못 먹으면 두세 달에 한 번씩 하기도 하니까 모르기도 했지만... 내가 임신이라니.
" 네가 오려고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구나. 미안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