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1. 내가 모르는 것들

인간이기에 알 수 있는 것들

by moonrightsea

유독 따스한 봄날.

오랜만에 나온 호수는 잔잔하고 바람은 따스하다.


두 볼을 스치듯 지나가는 그 바람은 내 볼을 지나쳐 호수가를 둘러싼 아름드리 가로수를 흔들고는 옆으로 늘어선 진달래꽃을 스치고 뿔뿔이 흩어졌다.

손을 맞잡은 정우는 이내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불렀다.

" 공기가 다르네. 봄은. "


" 당신은 아들 걱정은 안 돼요?"

" 그런 것치고 당신도 너무 여유로운 것 아냐? 미국 한번 간다고 안 하고."


그렇게 말하며 익살스레 내 볼을 정우가 잡아당겼다.

" 그거야 정영이 주립대 입학을 했으니 걱정 말라고 하니까 그렇죠. 원하던 곳은 비록 못 갔지만."

" 뭐. 그 아이 인생은 이제 그 아이가 사는 거지. 우리가 걱정한다고 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잖아."


정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립심이 강한 정영에게 우리가 뭐라고 조언을 한들 그 아이의 미래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 아이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더 정영을 믿고 응원하는지도 모른다. 그 덕에 한편으로 마음을 더 놓고 있는지도.


" 당신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어요?"

" 음. 나는 말이야. 이렇게 당신과 매일은 아니지만 이곳을 틈 날 때마다 이렇게 걷고 싶지. 천천히 느리지만. 그래도 나름은 나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도 되고. "


" 어머 그런 생각도 해요?"

" 당연하지. 그래서 소방서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안 빠지고 나가잖아. 이제 조금 있으면 나도 곧 이발사 자격증 따니까. 좀 더 당당하게 어르신들 머리도 잘라드리고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

" 그럼 당신은?"





" 음... 난 사람이 되는 거?"

" 아직도? 요즘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 거야?"


정우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었다.

수시 때때로 밀려오는 기운들을 떨쳐 내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누군가를 살려야 하고 그런 누군가의 간절한 부름을 듣는 일. 그 일이 외면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아직은 내게 들리지 않지만 내게 기운이 더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가는 어떤 순간에 그런 일들이 다시 내게 일어날지 모르기에 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사람이고 싶다.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내 삶을 가지면서 어느새 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한 사람으로의 삶.


어쩌면 내게 이러한 욕심이 생긴 것은 탐욕을 내려놓으며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숱하게 겪어온 수많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며 느껴온 일들 속에 진정 삶에 필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아마도 희망이고 그 희망의 실마리는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걸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에.


때로는 나도 모르게 드는 작은 욕심도 내려놓고 나도 모르게 이는 갖고자 하는 마음도 내려놓으며 그렇게 얻은 소소한 행복들이 어느새 조금씩 쌓여 평온한 일상을 내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무료할 수 있는 일상이지만 막상 그 모든 것을 잃는 것은 한순간임을 잘 알기에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것들.

인간이기에 그것을 지키고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든 줄 하루하루 살아가며 뼈저리게 느끼는 나날들.




" 아니. 당신이 곁에 있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요?"

나는 그렇게 그의 팔을 바짝 당겨 안고는 그렇게 느리고 천천히 호수가를 걸었다.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우.


" 당신이 없는 삶은 상상이 안 가. 나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온 거지?"


정우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정우를 다정스레 올려다보며

" 나를 만나기 위해 살아온 거겠죠?"


그러자 정우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 그래. 당신이 나를 구했으니까. 내 목숨을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의 표정에 나는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 뭐 덕분에 이렇게 코가 꽤어 팔자에도 없는 사람 노릇도 다해 보고. "


그러자 정우는 마치 부인이라도 하듯 씩 웃으며

" 그럼 내 덕분에 당신이 못 보던 또 다른 삶을 사는 거잖아? 그럼 좋은 거지?"

" 음. 그런가?"

" 내가 말했지? 당신은 내가 지켜준다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만난 거라고. "


" 어 아닌 거 같은데?"

" 맞아. 내가 당신 곁에 있으니 당신이 어디 도망도 못 가고 이렇게 내 곁에 딱 붙어 있는 거잖아. "

그렇게 말하며 정우는 내 머리를 헝클어 틀렸다. 그런 정우를 환하게 웃으며 나는 바라봤다.


" 당신 조금 뻔뻔한 구석이 있어요? 어쩜?"

의기양양해진 정우는 어깨를 쫘악 펴며 조금은 흥분한 목소리로


" 뭐. 내가 뭐. 나만큼 든든한 사람이 어딨 다고. 나처럼 와이프한테 잘하는 사람이 어딨 어?"

" 흐음. 그런가? 어디 찾아봐요?"


내 말에 당황한 정우는

" 뭐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그래. 에험. 이제 와 찾기는 또 뭘 찾는다고 그래. 그냥 곁에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 거지. "




나는 그런 정우를 짓궂게 올려다보며

" 어쭈. 불안하긴 한가 보네?"

"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안 찾아도 된다는 거지. "


정우는 연신 먼 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고 그런 정우를 보며 나는 더 방긋 웃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정우의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이런 순간에 그는 왜 그렇게 귀여워 보이는지.


" 아참 점심때 우석 씨랑 어디서 보기로 한 거예요?"

" 아 우석이 일단 작은 애가 아파서 집으로 가기로 했어. 경수가 감기 걸려서 밖으로 나오기는 좀 그래서 그냥 집에서 간단히 먹자고 하더라고. "


" 그게 집에서 먹는 게 간단해요? 참 남자들이란. 사람이 집에 가면 얼마나 챙기고 할게 많은데... 안 그래도 애들 키우고 정신도 없을 텐데... 그냥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요. 오래 간만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지 뭐. 지수 씨한테 그냥 편하게 오면 된다고 말해주고. 아니다. 지수 씨 한테는 내가 전화해 볼게요. "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걸었다.

" 어머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안 그래도 그이가 오늘 같이 식사하자고 해서 집 정리하려는 중이에요. 언제 오세요?"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집 정리는 그냥 천천히 해. 내가 우리 집에 밥 차릴 테니까. 그냥 걱정 말고 우리 집으로 건너와. 경수 아프다며? 괜찮겠어?"


" 경수야. 밖에 나가기 그래서 그렇지. 집에서는 잘 있어요. 언니 집에 간다고 하면 좋아하죠. 그런데 괜히 언니 주말에도 못 쉬게 하는 거 같아서 미안해서 그렇죠. 모처럼 쉬는 날인데. "


" 야. 너는 별 걱정을 다한다. 주부라고 집에서 쉬는 것도 아니면서. 너라도 주말에는 편하게 쉬어야지. 걱정 말고 우리 집으로 와. 1시까지. 알았지? 이 언니가 맛있는 삼겹살 준비해 놓을게. 근데 진짜 경수 컨디션은 괜찮은 거야? 병원은 갔다 온 거야?"


" 네. 경수는 어제까지 열이 좀 높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열이 좀 내렸어요. 뭐 초등학생인데 이 정도야 당연히 괜찮아 야죠. 모처럼 쉬는 날인데. 나도 언니 덕분에 육퇴 좀 해보겠다. 언니 좀 있다 봐요. "




" 경수야"

내가 두 팔을 뻣자 경수는 달려와 와락 안겼다.

" 이모 오랜만이에요. 맨날 바쁘다 그러고 얼굴도 못 보고. 칫"


" 어머 제 좀봐. 여보 우리 아들이 저렇게 애교 있었어?"

지수가 경수를 바라보며 말하자 우석은 이내 딴청을 피우며


" 글쎄. 누구시죠? 아드님?"

" 어머 말하는 건 참.. 어서 와요. 우석 씨. "

나는 그런 우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 제수 씨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잘 지냈죠?"

우석은 반갑게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그간 못 봤던 이야기를 나누며 마저 음식을 챙긴 뒤 오랜만에 둘러앉아 열심히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리고 좀 있으니 늘 정영의 방에 걸린 우주선과 태양계 모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던 경수가 정영이 방으로 들어갔다.

" 큰딸은 공부하느라 바쁘구나?"


" 요새 맨날 눈만 뜨면 도서관 간다고 난리예요. 도서관에 낭군이라도 숨겨둔 건지 말도 안 하고 아주 사춘기 제대로 하는 중이에요. "

지수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옆에서 우석이


" 딸 얼굴 보는 게 소원이에요. 맨날 들어오면 방에 쏙 들어가 버리고 눈 마주칠 때면 맨날 어디다 통화 중이고... 아니면 맨날 핸드폰에... 용돈 필요할 때만 '아빠앙'하면서 애교나 부리고 에잇."

우석은 이내 서운한 눈치였다. 곁에 있던 술잔을 연신 들이켰다.


" 그러니 우석 씨도 술좀 줄이고 이제 그만 집에서 애들이랑 시간도 보내요. 시간 금방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우석은 이내 술잔을 살며시 내려놓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는


" 그래야겠죠? 재수 씨?"

" 이야. 너는 내가 옆에서 그래 잔소리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우리 와이프가 한소리 하니 듣는 척은 하네?"

" 그러게요. 형부. 언니 말이 무섭긴 하나 보네요?"




" 하하 내가 또 뭘 그랬다고 그래. "

" 아닌 거 같은데?"

그러며 그들은 나를 바라봤고


" 내가 뭘? 난 별 말 안 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나는 능청스레 고기를 구웠다. 그러자 곁에 지수가 다가와,

" 언니 그래서 지난번에 말했던 양양 언제 갈 거예요? 또 갈 거예요?"


" 음. 너도 애들 제법 컸으니까 너 시간 될 때 한번 갈까?"

" 뭐야. 또 그 양양 소리야? 아휴. 그놈의 양양... 귀에 딱지 안겠어."

" 양양? 무슨 양양?"


곁에서 열심히 고기를 먹던 우석이 물어보자, 우리는 일순간 동작을 멈췄고 나와 지수가 서로 번갈아 보자 정우가 아무렇지 않은 척.

" 있어. 애 엄마한테 느닷없이 키스타임인가 뭔가 해서 뽀뽀시킨 놈. "


" 뭐?!! 뭐 그런 불건전한 곳에 간단 말이야? "

" 어머 형부도 알아요?"

나는 놀란 지수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더 놀란 건 우석이었다.


" 아니 너는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 당장 혼을... 아니 아무튼 그런 건 말도 못 꺼내게 해야지."

" 아니 와이프가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 이 사람이. 척 보면 알지. 뭐 그런 걸로 참견이야. 내 거면 그만인데. "


" 와. 정말 대인배인 거야? 간이 큰 거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 줄 알고?"

그렇게 말하며 우석은 나와 정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자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구웠다. 그러자




" 아니 몇십 년 같이 한 이불 덮은 와이프가 척 보면 내 건지 옷깃만 스쳐도 알지 그걸 왜 몰라. 모르는 게 바보지. 다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 그런 게. 난 그날 와이프 오자 말자 바로 확인했지."


그러자 지수는 더 당황해하며

" 어머 형부는 남녀 관계를 어떻게 알아요? 그냥 장담한다고 알 수 있나? 물론 언니가 그럴 분은 아니지만."


" 후훗. 둘이 속속들이 알고 오랜 기간 밥 먹은 것만큼 몸도 섞다 보면 알게 되는 날이 오죠. 제수 씨. 이 이상은 39 금이라 에헴. "


정우가 그렇게 말하며 우석의 술잔에 술을 따르자 우석이 연이어 몇 잔을 들이켰다. 그러더니 어느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서는


" 아 뭐야. 두 사람. 언제 이렇게 야해 진거야? 아 안 되겠어. 당신 짐 싸. 아직 우리가 39금을 못 넘어간 거 같아. "

" 어머 당신은 언니랑 형부도 있는데... "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붉어진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러며 살며시 돌아서 술을 한잔했다. 그러더니 귓속말로 내게


" 어머 언니 형부 저리 꽉 잡은 비결은 언제 말해줄 거예요?"


" 비결은 무슨... 네 말대로 남녀사인데 너네가 찾아야지 내가 알려준다고 찾아지니? 후훗. 잘 찾아봐. 앞으로 애들도 다 컸겠다. 밤낮으로 시간 많잖아?"


" 어머 언니는 무슨 농담을 그렇게 야하게 해요? 아이참. "


그렇게 낮부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석네가 돌아가고 집을 정리하고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 당신은 사람들한테 그런 이야기 왜 해요... 부끄럽게."


" 뭐 당신 별로 부끄러워도 안 하더니만. 오히려 양양이야기는 당신이 먼저 꺼내놓고선. "


" 그거야 당신을 믿어서 했던 말이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건 아니잖아요. 괜한 오해 사게. 그냥 그들이 그 젊은 열기와 분위기로 서로 연결해 주는 거라 그 분위기에 맞춘 거뿐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정우는

" 뭐 사람들 마음이 다 당신 같지는 않아. 그러니 함부로 부추기면 안 돼. 괜한 집에 바람 넣고 부채질한다고. 난리 난다고. 그러니 조심해야 해."


" 난 그런 키스타임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당신한테만 말한 건데..."

" 아니지. 그게 중요한 이야기인데 그런 건 꼭 해야 조심하지. 암."


그러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 그 카페 주인이 당신을 탐내서 데려가면 안 되잖아? 내 건데?"

" 말도 안 돼. 그 사람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있어요. 난 그걸 그 사람한테 확인시켜 주려 한 거고. 어차피 그날의 키스타임은 다 기억을 지울 생각이었는데. 그 사람이 능력 자였던 게 문제였던 거죠. "


" 뭐 아무튼 안돼. 어쨌든 그 사람도 아는 거잖아. 당신이 적어도 그의 능력이 안 통하는 대단한 사람이다는 걸."


나는 그런 정우의 품을 파고들었다.


쿵쾅쿵쾅 그의 심장소리. 두근 대는 그의 심장은 그렇게 불안하지만 안정적이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 나는 왜 이렇게 당신이 이런 순간에 멋지고 설레게 느껴질까?"

" 뭐? 내가 질투하는 게 더 설렌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는 정우를 씩 웃으며 올려다보자 정우는 이내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 와... 당신 무서운 구석이 있어. 안돼. 난 그런 불안과 맞지 않아. 난 그냥 내 거면 딱 내 거. 그걸로 만족이야. 안돼. 그런 마음 좋지 않아. 확인하려 절대 들지 마. "


정우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부드럽게 키스를 해왔다.

" 이렇게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그냥 내 건데... 뭘 더 얼마나 간담을 서늘하게 하려고... "

나는 두 팔을 뻗어 정우의 볼을 잡은 뒤 두 볼에 입을 맞추고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 확인은 무슨...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


" 정말? 진짜? "

" 그걸 몰라서 물어요?"


그러자 정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 알아. 그래도 계속해줘. 또 말해줘. 난 매일 매 순간 듣고 싶으니까."


" 그 말을 그렇게 쉽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닌데?"

그러자 정우는 부드럽게 내 몸을 타고 손을 쓸어내리며 침대로 나를 눕혔고


" 그럼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보여주지."

그렇게 말하며 웃통을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 몸을 어루만지며 나를 타고 올라왔다. 가끔씩 떨리기도 하며 부드럽게 나를 매만지는 그의 손길.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기도 한 그의 숨결은 내 귓가에 전해지며 그의 사랑을 한없이 내게 들이밀며 사랑을 갈구해 온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로의 관계가 변치 않으려면 서로를 향한 갈구하는 마음이 이어져야 하고 그런 마음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기에 그만큼 아끼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더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이 이어지는 법. 그런 그의 손길과 나의 움직임이 더해져 우리의 사랑을 나누는 방식은 항상 매 순간 새롭게 바뀌고 그래서 매번 다른 시도도 하고 또 새로운 느낌이 든다.


남녀 사이 정말 부부사이기에 알 수 있는 순간들. 서로의 정이 통하여야 알 수 있는 그 순간들이 쌓여 부모보다 자식보다 깊은 마음과 몸의 정이 통하는 순간.


우리는 말로 하지 않아도 때로는 서로의 몸의 언어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할 수 있는 말.

나는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 사랑해. 정우 씨."


그렇게 얕고 떨리는 거친 숨을 내뱉는다.




새벽부터 울려대는 정우의 핸드폰소리에 잠이 깼다.

정우는 전화를 받더니 급히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 무슨 일 생겼어요?"


" 아 지금 국도에 블랙아이스때문에 7중 추돌사고가 났는데 새벽이라 사람이 없어서... 가봐야겠어."

서둘러 나가는 정우를 뒤로 시계를 보자 새벽 4시 반. 아직 해가 뜨기는 이른 시각이었다.


어둑한 산길 바닥 비탈길에 생긴 블랙 아이스로 인한 추돌 사고치고는 제법 큰 사고라 아마도 전 대원이 소집되어 가는 길이었는가 보다.


그의 출동에 여느때 같으면 그냥 이례적인 일상이라 잠이 바로 들텐데 왠일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일어난 김에 막 나가려는 정우를 붙잡아 세우고는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 안다치게 조심하고. 알았죠?"


" 알았어. 늦었어. 서둘러야해. "

정우는 그런 내게 입을 맞추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keyword
이전 09화#1-40. 이어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