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그녀의 자리

그와 함께하는 법

by moonrightsea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차선 중앙선을 넘어온 트럭은 미끄러져 맞은편 승용차 두대 위로 쓰러져 있었고 먼저 출동한 대원들은 긴급히 구조를 하고 바로 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서둘러 현장을 정리하고 돌아보니 나머지 맞은편 트럭 뒤에 두대와 전복된 승용차 두대 뒤에 미쳐 블랙 아이스를 피하지 못하고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부딪힌 차들이 연기를 뿜으며 찌그러져 있었다.

맞은편 차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운전자와 동승자를 구조해 구급차에 실어 보내고 다시 건너편으로 넘어오자,곧이어 경찰차도 도착해서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머지 대원들도 모두 붙어서 구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급히 마지막 뒤차에서 운전대와 의자 사이 에어백에 끼인 여자 운전자를 부축해서 나왔다.


그때.

"끼익"


어디선가 들리는 급브레이크 소리.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고 그전에 얼핏 눈앞에 커다란 트럭이 옆으로 쓰러지며 덮쳐 오는 것이 보였다.


왜 나는 그 순간...


우리가 나눴던 아침의 그 입맞춤이 생각이 난 것일까.




내가 그에게 갔을 때 그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는 그렇게 나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손을 들어 시선을 가린 채 멈춰 있다.

내 두 눈을 타고 흐르는 눈물.


내게 인간이 되는 것은 정말이지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내게 행복이란 단어는 진정 사치인 것인가.


그와 나눴던 달콤한 그 입맞춤이


그와 함께 했던 그 호수가 산책로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인가.


내 인생의 보석 같던 정영과 그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은...


정녕 내게 그저 하늘의 한낯 신기루 같은 선물이었던 것인가.


나는 그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에게 작별의 키스를 했다. 그를 탐하면 안되지만 나는 그를 탐하고 말았다. 그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내 능력이 이대로 깨어나 버린다 하여도 그 능력이 깨어나 나를 이대로 집어 삼켜 버린다 하여도 이대로 그를 보낼 수는 없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그이기에.

내 온몸을 받쳐 나는 그를 살려야만 했다.




흩어지는 바람.

나는 손을 내리려 애를 쓴다.


이것이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길 원치 않는다.

내 생에 그녀는 하나이고 그녀는 내 집에 있어야 하니까.


그녀는 나의 아내이기에

지금 이 순간에


내눈앞 보이는 존재가


그녀가 아니길


나는 간절히 기도하며


시선을 들어 바라본다.


하얗게 늘어진 머릿결을 흩날리며

눈물을 흘리고


나를 감싸 안은 그녀.






그녀의 품에 안겨

그렇게 허공에 몸이 뜬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나는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나는... 아니야.


당신을 부른 게 아니야.


당신을 위해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여도 당신을 위해 내 인생을 받친다 하여도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얗게 세어버리는 머리를 흩날리며 내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애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우리를 감쌌던 푸른빛은 어느새 노랗게 물이 들었다.




" 사랑해요. "


" 미안해. "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병원침대에 누워 있었다.


" 연수는?"

" 여보 정신이 들어요?"


그녀의 목소리.


나는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든 것일까.


마치 허공을 헤매는 듯 나는 하얀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 미안해요. "


어디선가 들려오는 연수의 목소리.

" 당신 어디 있는 거야?"


내가 물었을 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련히 들리는 목소리.

" 정영이 잘 부탁해.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으니까. "


다시 눈을 떴을 때 낯설게만 느껴지는 연수의 얼굴.

" 깼어요? 다행이다. 당신 벌써 4일이나 혼수상태였어요.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 내가 그렇게 오래 잠들어 있었어?"

" 휴우 다행이다. 정영이 내일 귀국한다니까. 걱정 말고 좀 쉬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당신 3개월은 더 입원해 있어야 한대요. 뼈가 붙으려면."


연수의 말에 고개를 들자 팔과 다리에 깁스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보다 연수가 걱정이 되어 바라보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있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연수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집으로 돌아와 두 달을 병가를 내고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언제 그랬냐듯 일상은 또다시 반복되었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나는 트라우마 치료 때문에 내근직을 신청을 하고 서울에 한 달에 한 번씩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았다.


흔들리는 지하철에 올라 손잡이에 머리를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마치 몸은 붕 뜬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무료한 일상.


좀처럼 삶은 의욕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느리지만 일상으로 천천히 그렇게 나는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내 생활을 되찾아 가고 있고 연수도 한동안 내 병간호로 연차까지 내며 칼퇴근을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일로 다시 야근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해가지는 한강변은 반짝반짝 마치 보석을 뿌린 것 마냥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바쁜 생활에 쫓기는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한강변에 관심조차 없는 듯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다들 손에 든 핸드폰만 바라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찰나 같은 순간의 한강변을 눈에 가득 담고자 눈이 부신 그 순간을 꾹 참으며 그렇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스치듯 지나친 그 찰나 같은 순간의 환영.


삶의 한 자락.


그 삶의 한 순간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렇게 따스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거늘.

우리는 그 짧은 순간조차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고 마는 것은 아닌가.




그의 따스한 손길에 고개를 들자 마치 그는 나의 눈물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손을 뻣어 지하철 창문에 대고 있었다.


그 찰나 같은 순간.


그의 눈에 담긴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산자와 눈을 마주하면 안 되기에.


그의 곁에 비록 남겨둔 내 몸뚱이는 그가 알고 있는 온전한 존재로써의 나는 아닌 그저 한낯 인간으로서의 연수이지만 그런 인간의 삶을 살아온 연수라도 그의 곁에 있기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적어도 그에게 이별의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적어도 그의 기억에 그로 인해 내가 깨어난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 생에 내게 주어진 업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그것을 갖기 위해 욕심을 내는 순간.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기꺼이 선택하였다. 그를 살리기로.


그가 내게 준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경험과 가치. 그 사랑을 알기에.


이렇듯 뿔뿔이 흩어져 결국은


그저 자연의 숨결로 지낼 수밖에 없고 그저 먼발치서 그를 지키고 바라볼 수밖에 없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의 곁에 항상 존재하리라.

그로 인하여 내가 존재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의 만남은 끝이 아님을 알기에.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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