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작
건아하게 술기운이 오른 술판에 술병이 돌아 카페 주인을 향했을 때
" 키스 타임 키스타임!"
" 우우!! "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는 문득 나를 가리켰다.
당황한 내가 눈이 동그래 지자 그들은 나를 향해 그렇게 외쳤다.
" 키스해. 키스해!"
청춘의 열기. 환호. 그 거부할 수 없는 유혹들.
그러자 그가 이내 내게 다가와 부드럽게 얼굴을 들이밀려 들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에 취해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젊은 사람들의 열기에 눈치껏 치고 빠져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그는 살며시 내게 다가와 내 머리를 끌어당겨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 키스해. 키스해."
나는 내 입술을 막았고 그는 그런 내 손을 살며시 등 뒤로 물린 채 또다시 부드럽게 키스를 해 왔다. 그때,
형광등처럼 번쩍 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 내가 눈을 번쩍 뜨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만 본 것이 아닌 듯했다. 그도 보고 말았구나.
그의 표정을 보자 순간 그가 당황하는 것이 보였지만 이내 능청스러울 만큼 편안한 표정으로 다시 내게 다가와 말했다. 조용히 속삭이며,
" 눈을 감는 게 맞지 않을까요?"
" 이런 곳에 계실 줄 몰랐네요. 후훗."
" 저도 놀랐네요. 제 능력을 뛰어넘는 분을 만날 줄은. 그것도 인간인데..."
나는 그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 왜 웃는 거죠?"
" 후훗 그러니 그런 실수를 한 거겠죠? 나를 이어주고자 한 거?"
" 훗. 그래봐야 고작 이 일을 한 게 몇백 년이니... 아무래도 제가 내공이 좀 부족한 거겠죠?"
후우~ 나는 긴 한숨을 쉬고 담배를 끄고 난 뒤 다시 식어버린 코코아 잔을 손에 들어 한 모금 했다. 그리고
" 어떤 인연이었길래 이 힘든 인연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 글쎄요.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서... "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 당신이 이어준 인연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닌가 보군요. 한데 어쩌죠?"
내가 그렇게 말하며 그를 바라보자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내게
" 혹시 알고 계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나는 그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 음. 아마도 당신이 그녀를 만나려면 한동안은 예전처럼 옮겨 다니지 마시고 여기서 앞으로 7년은 더 계셔야 한다는 정도?"
" 그럼 그 이후로는 요?"
" 그거야 그 이후는 당신들이 만들 운명이니 저는 알 수 없죠. 그 이후의 인연이야 당신들이 이어가는 거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그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하늘을 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 당신을 만난 게 정말 우연이 아니었던 게 맞군요. 후아. 감사합니다. "
" 아직은 일러요. 이제 기다림의 시작이니 잘 찾아보세요. "
긴 시간을 돌아 그가 전생의 인연들을 이어 주는 일을 해온 것은 그에게 주어진 인연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에게도 소중한 인연이 있었기에 그는 그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애타게 다른 인연들의 끈을 이어주고 또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남선녀들을 이어주고 또 헤어진 인연들을 다시 맺어주며 새로운 만남을 이어주고 한 인연들은 그렇게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가정이 되어 이 땅에 자리를 잡아 다시 새로운 삶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가 맺어준 특별한 인연들은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특별한 사연의 인연들이었기에 그만큼 애틋했고 또 그만큼 간절한 연들이기에 어쩌면 이번 생에서 만큼은 그들도 그들의 사랑이 더 운명처럼 느껴지고 특별한 순간으로 와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의 특별함만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와 입술이 닿았을 때 내가 본 그의 생은 그러한 그의 운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에게 맺어졌던 과거의 연 또한 고스란히 그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끈은 내가 구했던 그 여중생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아직 그녀가 이제 채 20대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그와 만나는 30대가 되려면 시간이 제법 남아 있었고 그의 애틋한 전생의 인연을 유독 그만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이렇게라도 그에게 그의 간절한 마음을 전해주고자 한 게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을 어제의 그 사건으로 알게 된 나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가끔은 하늘도 이런 재미있는 일들을 꾸며내다니.
우리의 아이들도 자라면 이렇듯 서로에게 이어진 멋진 인연을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설레는 사랑이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챙기고 위하는 삶을 살아가겠지.
아직 그들이 보지 못한 아름다운 청춘의 삶이 그들을 기다리기에 나는 그들이 원하는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며 더 간절히 그들이 행복하기를 가슴속으로 바라봤다.
낮 동안 조용하던 카페는 밤이 되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또다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어제의 멤버에 어제의 술에 아니 안주는 바뀌어 있었다.
어디선가 공수한 곱창에 닭발에 그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데 창문을 열어젖히고 연기를 마셔대면서 기어코 열심히 곱창을 굽던 서퍼샵 주인이 결국에는
" 와. 도저히 나 콧물이 나서 못하겠어. 이제 그만 우리 나머지는 주방에서 해결하자."
그렇게 낭만과의 씨름에서 한발 물러나 창문을 닫고 주방으로 향하자 내가 앞장서서 굽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불을 조절해 가며 능숙하게 적당히 불기를 입혀 가며 노릇노릇 구워 나가자 다들 바짝 타버린 이미 구워뒀던 곱창과 내가 구워 나간 것과 번갈아 보더니
" 그냥 진작에 주방에서 구워서 편하게 먹을걸. "
그런 그들에게 나는 머쓱해하며,
" 주부생활이 몇 년 차인데요. 이 정도야 뭐."
" 헐 결혼하신 거였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싱글인 줄 알았어요. "
" 진짜 대박. 정말 젊어 보이시는데...?"
더 이상의 사생활이 나오는 게 싫었던 나는
" 자 드세요. 다 식겠어요. "
그렇게 말하며 한입 입에 넣자 다들 너나없이 덩달아 입어 넣더니
" 이야. 꿀맛이야. 정말 맛있어. 자자 한잔해요. 짠!"
그러며 다시 술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틀째 이어진 술판은 어제와 달리 조금은 더 차분해졌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 피어 제법 각자의 에피소드들이 나오며 소담하게 곳곳에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곁에서 내게 술을 따르던 카페 주인이 문득
" 연수 씨는 그럼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죠?"
나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건넨 뒤
" 여기로 연락 주시면 돼요. 저 여기 근무하거든요. "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명함을 건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명함을 달라고 하였고 그들에게 나는 명함을 돌렸다.
" 아 광고기획 쪽 일하셨구나. "
" 다들 한잔 하시죠?"
그렇게 또다시 술판이 이어지고 마피아 게임을 하고 또다시 술판을 이어 가다 진실게임을 하고 또다시 술판을 이어가고 그렇게 돌고 돌아 이어지는 술판으로 몇몇은 방으로 자러 들어가고 몇몇은 집으로 돌아갔다.
반짝이는 별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기분은 이미 흥건히 취한 것 마냥 들떠 있었다.
혼자 흥얼거리며 어깨를 흔들거리며 그렇게 담요를 두른 채 테라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혼자도 잘 다니시나 봐요?"
어느새 다가온 카페 주인.
" 담배 피우러 오셨나 보네요?"
" 하나 드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이내 내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 외롭지 않아요?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 지치죠. 사실. 부럽기도 하고. "
" 그래도 대단한 것 같아요. 잘 견디는 것 같고. "
" 그게 일이니까요. 누군가의 연을 맺어주며 그 인연이 소중히 이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아름답죠. 저 별들처럼. 멀리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거든요. "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치 그가 멀리서도 그가 맺어준 인연들이 저 별들처럼 그렇게 빛을 발하며 보이는 것처럼. 그도 그런 능력으로 이 일을 이제껏 해왔겠구나.
" 마음을 쓰는 일을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죠?"
" 그렇죠. 특히 제 마음과 달리 그래야 하는 게 더 그렇죠. "
그가 문득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성큼 내게 다가왔다. 천천히 팔을 뻣더니 내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며,
" 가끔은 이렇게 마음을 흔들 때도 있고요. 그럴 때는 당신은 어떻게 하죠?"
그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말에 문득 나는 지난 일들을 생각했다. 그토록 애타게 내가 갖고자 했던 사랑.
그리고 그 긴 기다림의 순간들. 그 순간들마다 내게 찾아들었던 고통.
그리고 나를 흔들었던 마음.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그리고 내가 사람이었을 때 내게 손을 내밀어 나를 사람이 되게 만든 손길.
그 손은 정우였다.
내게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준 손길.
문득 그가 건넨 손길에서 나는 정우의 손길이 느껴졌다.
카페 주인의 손을 잡은 나는 살며시 내려놓으며
" 글쎄요. 저는 이제껏 피해 왔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죠. 그리 쉽지는 않지만. 후훗. 그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담배 고마워요. "
그렇게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되자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거실 복도등이 켜져 있었다.
짐을 내려놓는데 방금 잠이 깬 정우가 얼굴을 문지르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 당신 왔어?"
" 왜 깼어요? "
정우는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그러며,
" 당신이 없으니 영 허전해서 잠이 깊게 안 들어서... 하암~~"
그렇게 하품을 하더니 다시 나를 감싸 안고 침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