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onrightsea Jul 30. 2023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도 좀 이상했다.
모든 건 순조로웠다. 내가 무엇인가 실수를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도무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뭐였을까.'
책상에 앉아 모의고사를 풀다 문득 봉사활동을 했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아침부터 모여서 순조롭게 잘 진행된 거 같은데 정말 완벽에 가까운 하루였던 거 같은데... 이렇게 오래 권익이 전화를 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못해도 일주일에 2~3번은 하고 짧아도 30분 길면 1시간 반은 기본인 애인데 방학이 끝나가는 데도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네. 마음을 잡았나. 다시 머릿속은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보고 있다.
" 자 여기 봉투 받아서 너희는 회관 입구부터 앞마당, 너희는 마을 회관 내부, 너희는...."
나는 열심히 봉투를 나눠주며 구역을 설명해 주고 있었고 내게서 봉투를 받은 아이들을 붙잡고 정림은 분리수거 위치와 청소요령을 안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권익이 그때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음료를 먹으라며 권했고 우리는 끝나고 먹어야 한다며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시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곧 마을 이장님이 오셔서 권익과 경윤을 데리고 어디로 가셨고 둘은 무거운 박스를 한 아름 든 채 어디론가 또다시 사라졌다.
그렇게 분주히 오전 내도록 움직이고 잠시 그늘에서 쉴 무렵, 이장님이 새참으로 떡과 사이다를 내어주셨고 우리는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 분리수거 옮겨야 하니까 남자들은 좀 모여봐."
" 와 술을 얼마나 드신 거야? 이거 팔면 돈 좀 되겠는걸?"
눈치 없는 남학생들이 술병을 양손에 들며 마시는 시늉을 하자, 멋쩍은 이장님이 이내,
" 아가들아. 거기 그거는 저기 용달에 좀 실어라. 그리고 종이는 그 옆에 좀 실고 싹 내다 팔 거니까."
정림이 나머지 봉투에 담긴 걸 가르키며 물었다.
" 그럼 여기 분리 안 되는 건 어떻게 할까요?"
" 그건 저짝에 모아 두면 알아서 할 테니까 한데 모아두기만 하면 돼."
" 그럼 여자애들이 나머지 좀 옮겨줘. 아참 미소야. 활동지랑 사진 준비 좀. "
" 알았어. 잠시만. 회관 안에 있어서. 니들도 잠시만 멈춰봐. 일단 사진 좀 찍자. "
나는 서둘러 카메라를 가지러 안으로 향했고 카메라를 들고 나오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경윤과 부딪쳤다.
" 아 카메라."
" 내가 잡았어."
" 휴 다행이다. 미안 내가 마음이 급해서. 고마워. "
경윤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 내가 찍을까?"
" 그래도 돼?"
" 나 사진 찍는 것 좋아해. "
" 그럼 좀 부탁할게. 나 이것도 나눠주고 설명도 해야 해서. "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ok사인을 보인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오는 경윤을 보자 권익이 곧이어 헤드락을 걸며,
" 이 새끼. 어디서 꼼수야. 남자새끼가. 힘쓰는 일해야지. 너 또 사진 안 찍히려고 그러지?"
그런 권익을 향해 경윤이 카메라를 들어 초점을 맞추자 기다렸다는 듯 권익은 온갖 멋진 폼은 다 잡는다.
" 경윤아. 사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우리가 분리수거하는 모습 중심으로 찍어주고 나중에 끝나고 단체 사진 초점 좀 잡아줘."
또다시 웃으며 ok 손사인.
뭐. 알아서 하겠지. 분주히 종이에 이름을 적고 활동내용을 미리 적어두고 나머지 각자 소감 적을 부분만 남긴 채 분리수거가 끝날 무렵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종이를 다시 거둔 뒤 회관 앞에 모여 모두 사진을 찍으려 들 때, 권익이 달려왔다.
" 잠시만 잠시만 나나나 가운데 가운데"
권익이 가운데 파고들었고 경윤이 초점을 맞춘 뒤 달려오며 내 오른쪽에 섰는데 권익이 넘어지며 내 턱을 쳤다. 그 순간 찰칵.
"야아"
아이들은 모두 짜증을 내며 권익을 바라봤고 권익은 넉살 좋게 웃으며 다시 한번을 애교스럽게 외치며 옷매무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경윤이 달려왔고 나를 지나 권익이 옆에 비워둔 자리에 들어선 순간 나는 옆으로 기우뚱했고 그런 나를 경윤이 붙잡았다.
찰칵.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는데. 맞아. 그리고 권익이 집으로 향했다.
권익의 집은 제법 호화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안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장식장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고 예쁜 커피잔과 트로피들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께서 받으신 거 같았다. 집안을 둘러보며 서 있는데
" 야 좀 도와줘."
권익이 와서 나를 툭 쳤다.
" 나?"
" 야 여기서 도와줄 사람 너 밖에 안 보이는데?"
" 나도 애들처럼 너네 집 처음이거든? 되려 경윤이가 더 자주 오지 않았어?"
라고 말하며 부엌을 바라보자 경윤이 어울리지 않게 짧아진 앞치마를 목에 걸고는 밥을 뜨고 있었고 그런 경윤이 옆에 정림이 그릇을 내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글적이며, 부엌으로 향해 수저와 반찬을 담아 날랐다. 권익이 어머니께서는 꽤나 음식 솜씨가 뛰어나셨다. 장아찌며, 총각김치며 계란말이며, 소고기장조림이며 갖가지 밑반찬들을 남겨진 남매를 위해 양껏 해두셨다. 그중에 나는 맛만 보고 김치와 장아찌만 꺼내자,
" 왜 다른 건 더 안 내고?"
옆에서 권익이 물었다.
" 야 너도 밥 먹어야지. 우리가 다 먹어버리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슬프시겠냐?"
그러자 권익이 엄지 척을 들어 보이며, 계란말이를 입에 물고는 담아 둔 반찬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학원수업이며 바쁜 일로 이리저리 빠지고 남은 인원은 10명, 그나마 무학여고 2명에 경원고 4명, 그리고 정림, 나, 경윤, 권익 이렇게 열 명. 그래도 모여 보니 숫자가 제법 되었다. 온 집안이 고기 냄새가 진동 하는데 도통 고기는 시커먼 색만 보일 뿐 진척이 없다.
" 아 진짜 내가 밖에서 까지 이러고 싶지 않은데 줘봐. "
보다 못한 나는 결국 가위와 집게를 들고 능수능란하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도대체 권익이 굽는 고기는 타서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집에서 얼마나 어머니께서 고이 키우셨으면 이리도 손이... 곰손일까.
" 우와 너 진짜 잘 굽는다."
고기는 굽기가 무섭게 게눈 감추듯 사라졌고 아쉬움에 라면까지 2차로 먹고남서야 우리의 먹방파티는 끝이 났다.
" 권익아. 심심한데 너 졸업앨범은 없어?"
" 안돼."
일순간 우리는 지순을 바라봤다. 뭐지? 왜 권익이 앨범을 보는데 지순이 난리지?
" 음. 있는데 지순이 안된다네."
" 뭐야. 둘이 또 뭐 있어?"
" 아냐 아무것도."
" 야. 그러니 더 궁금하잖아. "
" 우리 동창이야. 초등학교."
" 야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그런 흑역사 우리도 있거든?"
" 안된대도."
아이들의 짓궂은 행동에 토라진 지순. 그런 지순의 눈치를 보던 권익이 살며시 졸업앨범이 아닌 그냥 사진앨범을 가져왔다. 그러며,
" 아쉬우나 이거나 봐라. 내 화려한 과거 모습. 나 님이 태생이 잘생김이라. "
" 워."
그의 말처럼 사진 속 권익은 어릴 때부터 똘망하고 눈도 속쌍꺼풀이 지고 콧날도 오뚝하니 귀여웠다. 항상 주변에 여자친구들과 사진이 찍혀 있었고 사진마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부모님과 다정히 참 많은 곳을 여행했었다.
" 이건 수학경시대회, 이건 태권도 금메달...내가 그때 막 국가대표할 줄 알았거든. "
태생부터 부모님의 기대와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고 그런 마음이 아직도 변치 않고 내내 이어져 구김살 없고 밝고 적극적인 아이. 그런 그가 부러웠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데,
" 미소야. 여기 봐. 경윤이랑 나랑 찍은 사진이야."
권익이 불러 돌아보니 초등학교 졸업사진인 듯했다.
" 둘이 이때부터 친구인 거야? 이때는 응? 권익이 네가 더 컸네?"
" 야 이때까지만 해도 저 코찔찔이 내가 맨날 데리고 다니면서 저시키 패는 놈들 다 카바치고 했는데 말이야. "
옆에서 경윤이 권익의 입을 막았고 친구들이 막 웃어대며 다음 장을 넘겼다.
그러자, 편지와 함께 지순과 권익이 유치원시절로 보이는 뽀뽀하는 사진이 나왔다.
제법 통통하고 살이 오른 포동포동한 손가락. 붉게 상기된 얼굴의 지순. 둘은 너무나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눈을 감고 뽀뽀를 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두 명의 생일 케익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하는 생일 잔치였나 보다. 이렇게 자세히 보니 지순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달랐고 아이들은 빵 터졌다.
" 야 그걸 아직 가지고 있음 어떻게 해. "
순간 지순 얼굴이 빨개지며 앨범을 덮었고 그걸 들고 가방을 들더니 휙하니 나가버렸다.
우리가 순간 멍하니 거실 문을 바라보고 있자, 권익이
" 아. 내가 깜박했네. 다른데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하며 머리를 글적이더니 부엌으로 가서는 주방을 막뒤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5시.
" 나 오늘 언니 온다고 해서 가봐야 해. 먼저 일어날게. 니들은 좀 더 놀다가. "
" 미소 벌써 가게?"
한 손에 산삼이 담긴 술병을 안아 든 권익이 물었다.
" 야 넌 머리 피도 안 마른 놈이 뭔 술이야. 술이. 어서 안 내려놔?"
나는 술병을 뺏어 다시 주방에 내려 두고는
" 나 늦었어. 간다. "
밖으로 나온 나는 저만치 터덜 거리며 가고 있는 지순에게 다가갔다.
" 그네 좋아해?"
" 응?"
모임에서도 한번도 말 걸어 본 적도 같이 제대로 어울려 본 적도 없는데 그런 지순은 항상 조용히 한번도 빠짐 없이 모임에 참석하고 자리를 지켰다. 곁에서 보기에 늘 진지하고 가끔 내가 권익이와 격없이 대화할 때면 자주 눈이 마주치고는 했다.
"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난 부럽던데 네 순수한 첫사랑."
" 어떻게 알았어?"
" 네 눈 권익이 바라보는 눈에 보이잖아. 아직도 그 마음이 느껴지는 걸? 너무 낭만적이던데?"
" 아냐.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예전에는 몰라도 이제는 나도 어른이니까. "
" 야. 우리가 뭐 어른이냐. 아직 겨우 여고생인데. 사람일 모른다. 혹시 아냐? 너 대학가서 이름 날리는 퀸카되서 권익이가 돼려 너보고 첫사랑이라고 졸졸 따라 다닐지."
" 권익이가? "
" 권익이도 사진에서 너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던데?"
" 아냐. 그애는 완전히 까마득히 다 잊어버렸어. 내 신랑감 된다고 했었는데."
" 풋. 언제적 이야기야. 사랑은 움직이는 거지. 돌고 돌다 보면 모르는 일이잖아. "
" 그럴까?"
" 니가 가져온 앨범. 나 같으면 그 안에 사진이랑 편지 다 버려. 의미 안두거든. 근데 권익이는 고스란히 간직했잖아. 그런 애야. 권익이가. 그러니 고이 고이 모셔뒀다가 좋은 대학 가면 실력 발휘 잘 해봐. "
그렇게 지순과 헤어진 뒤 집으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그날의 내 기억인데. 도대체 뭘까. 왜 권익은 소식이 없지?
결국 궁금함에 못 이겨 처음으로 권익이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 한참을 울리던 신호가 거의 끊어질 때쯤 권익은 전화를 받았다.
" 너 살아있어?"
" 어 미소. 웬일이냐? 네가 먼저 전화를 다하고 이 오빠가 죽었을까 봐 걱정된 거야?"
" 뭐야. 살아있긴 하네. 되따. "
" 뭐야. 이렇게 끊으려고? "
" 뭐. 맨날 전화하다 안 하길래 걱정돼서 했는데 다행히 생사는 확인되니까. 되따고."
" 잘 있었어? "
" 나야. 뭐 잘 있지. 그러는 넌 어떻게 된 거야? 이 누나 이렇게 걱정시킬 거야?"
" 어쭈. 누나는 무슨 오빠한테 이 오빠가 다 큰 뜻이 있어서 그런 거야. "
" 뭐야. 이 뉘앙스. 뭐지. 갑자기 철든 느낌?"
옆에서 갑자가 왠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누구야?"
" 야. 너 좀 나가있어. 미소야 잠시만."
" 미소? 미소가 누구야? 엄마 오빠 또 전화해."
" 야이. 딸깍. 되따."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나는
" 야. 안 되겠다. 너 통화하기 힘들겠다. 내가 끊을게."
" 아 아냐. 그게. 음. 그냥 나중에 상황 되면 이야기할게. 당분간은 내가 공부에 집중해야 해서 한동안은 통화는 못할 거 같아. 그 말하려고. "
" 아 그래. 내가 눈치 없이 괜히 전화했구나."
" 아냐. 그런 거. 너랑 상관없어. 그냥... 일이 좀 있어. 그래서 그래. 다음 모임에서 보자. 잘 들어가."
" 응 알았어. 너도 잘 지내고. 다음에 봐. "
전화를 끊었는데도 오히려 더 의문만 가득했다. 머리만 복잡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나와 상관없지만 뭔가 권익이에게 일어난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내가 뭘 해줄 수도 없는데 뭘 해서도 안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