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4 02화

4-2. 설치전으로

by moonrightsea

" 어허 어디 선배 앞두고 혼자 자작질이야. 자 짠!"

연신 술잔을 부딪히는 선배들 덕분에 나는 막걸리의 위력을 간과 한 채 그렇게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 아 선배. 울 아기 그만 좀 먹여요. 죽겠어. "


" 괜찮아요. 딸꾹."

" 어머 재 취했나 봐. 귀여워. 어쩌니. "


곁에서 말없이 막걸리는 들이켜 대던 민혁 선배는

" 안 되겠다. 재 숙소에 좀 재우고 올게. "


그렇게 말하고는 오징어처럼 늘어져 가는 나를 부축해 위층 숙소에 나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고는 불을 끄고 내려가셨다.


' 보고 싶었어. 사랑해. 쪽'


아 꿈이구나. 꿈속에서 난 그 입술과 거친 숨소리가 계속 반복되어 들려왔다. 하지만 차마 경윤에게 저 말들을 못했었는데 내가 언제 달아날지 모르니까. 하지만 꿈은 거짓말처럼 생생히 그날의 기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뜨거웠던 우리의 첫 키스를 확대해서 반복 재생, 또 재생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다.


얼마쯤 잔 것일까.

아 머리야. 잠에서 깨니 아침이 밝았다. 근데 배가 묵직했다. 으 뭐지? 하고 바라보니 내 배 위에 누군가의 팔과 내 다리 위에 누군가의 다리가 올려져 있었다.


깜짝 놀라 나는 일어나려 했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아 다시 주저앉고 보니 옆으로 누워 잠든 건 영석이었다. 도대체 언제 온 거지? 분명 어제 선발대에는 없었는데...




핸드폰 시계를 보자, 아침 7시였다. 서둘러 나는 마을 회관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벌써 이장님 사모님께서 해장국을 끓여 두고 반찬을 분주히 준비 중이셨다.

" 죄송해요. "

" 어머 죄송은 손님이 그런 말하면 쓰나."

" 뭐 도와드릴까요?"


" 미소양 고마워요. 그럼 부탁 좀 해도 될까? 여기 반찬 좀 저기 거실에 옮겨줄래요?"

" 저 근데 이거 신기하게 생겼는데 이건 뭐예요?"

" 아 그거 다슬기야. 해장하기 딱이거든. 산골이라 이런 거밖에 없어."

나는 설명을 들으며 한 숟가락 입에 넣자, 입안 가득 부추와 어우러진 다슬기 향이 퍼져왔다.


" 우와 진짜 시원한데요? 솜씨가 보통이 아니세요. "

" 아이고 고마워라. 자. 이제 준비되면 가서 일행들 깨워 올래요?"

숙소로 향해 걸어가는데 산책을 마치신 교수님이 오셨다.


" 교수님 교수님 여기요. 식사준비 되었어요. 오셔요. 저는 숙소 다녀올게요. "

상쾌한 공기 때문이었을까? 반가운 마음에 나는 손이 높이 들고 흔들었다. 그러자 교수님은 방긋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그 길로 숙소로 달려가 다른 선배들을 깨웠다.


" 와 진짜. 너 때문에 안 일어나고는 못 배기겠다. 누가 여기 강아지 풀었냐? 재 좀 진정시켜 봐. "


" 아아. 선배님들 어서 가자고요. 국 다 식어요. 네? 진짜 진짜 진짜 맛이 죽여준다니까요? 네?"


어떤 선배들은 이불을 돌돌 말아 돌아누었고 어떤 선배들은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지만 그런 하나하나를 다 달래고 흔들어 결국에는 몽땅 다 회관으로 보내고 나서야 영석 앞에 섰다. 그리고 발로 툭툭.


" 이렇게 난리를 피는데 잠이 와요? 어서 일어나요. 네?"


미동도 없었다.

선배들을 깨우느라 온몸에 진이 빠진 나는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등을 돌리고 누워 있던 영석이 휙하니 돌아눕더니 늘어진 내 팔을 확 잡아끌었다. 그리고 내 얼굴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 킁킁 냄새를 맡는다.


" 도대체 넌 어제 술을 얼마나 먹은 거야? 나랑 먹을 때는 그렇게 안 취하더니. 얼마나 먹었길래 사람이 업어가도 몰라?"


" 네? 저 안 업혀왔는데? 민혁선배가 부축해서 질질 끌려 왔다고요."


그러자 그는 내 머리를 감싸 얼굴을 끌어당기며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며,

" 너 이래도 기억 안 나?"


그의 돌발행동에 놀란 나는 순간 그의 어깨를 밀치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 어서 오세요. 전주작가분들 숙소는 저쪽입니다."


분주히 오전 내 속속 도착하는 작가분들 숙소를 안내하고 일정을 알려드리고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자, 곧 회의에 들어갔다.


마을의 분위기에 맞춰 설치 전을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주제는 어울림이라 어쨌든 마을에 있는 장비나 재료를 활용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40여 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구상한 작품을 어느 곳하나 겹치지 않게 장소를 나누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회의는 한참을 이어졌고 그렇게 이어진 자리는 결국 저녁에 7시쯤 마을 이장님께서 준비한 바비큐파티로 인해 끝이 났다.


" 그럼 장소가 안정해진 작가분들은 어떻게 하죠?"

" 미소야. 그건 네가 신경 안 써도 돼. 아무리 설치 전이라고 하지만 구상이 안되면 참여 못할 수도 있잖아. 본인일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그러니 너는 이제 네 데뷔무대나 구상해. 너도 어찌 될지 알고?"


그나마 영은선배는 민혁선배와 오랜 CC관계라 그런지 나보다는 걱정이 적어 보였지만 그래도 저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했다. 적어도 내가 여기 온 목적이 뭔지 알려는 주니까.


" 아 조군 미안한데 혹시 술 마셨어? "

" 아니요. 교수님 아직 전입니다. 오늘 중요한 손님 오신다고 하셔서 대기 중입니다."

" 그래. 그럼 잘 되었네. 마침 역에 도착해 간다니까. 마중 좀 부탁하지. "


마침 이장님이 오셔서

" 아 교수님 역에 가시면 저희 아들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물론이죠. 이왕 가는 길이니 전화번호 주시면 같이 합석시켜 데려 오면 되겠네요. "


" 그럼. 음. 혹시 아직 술 안 먹은 사람 있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주변을 둘러보다 분주히 반찬을 나르던 나와 눈이 마주친 교수님께서,


" 아 미소양이 같이 가면 되겠군. 미소양 같이 좀 다녀와 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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