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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Dec 04. 2021

[일기] 2021년 외로움에 남긴 끄적임들

잠 못 드는 어느 날들, 의식의 흐름 속에 작성한 나의 일기들

2021년 4월 19일

나의 인생 영화였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보았다. 영화에서 병상에 누운 데이지가 딸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그날 이후로 벤자민을 잊은 적은 없었다.
밤마다 이렇게 중얼댔지.
'잘 자 벤자민' '잘 자 데이지'


이 장면에서 전날 밤 보았던 아이유의 유퀴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위 영상의 8분 40초쯤 아이유가 어떻게 '밤편지'라는 자작곡을 만들게 되었는지가 나오는데, 그 노래는 불면증이 심했던 아이유의 순정을 담은 고백을 '잘 자'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였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유난히 불면증이 심했던 나는, 한국 시간에 맞춰 사람들과 연락을 하다, 그들에게 먼저 잘 자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유가 했던 말처럼 나 역시, 때론 누군가 먼저 잠들면 그 숙면이 서운해질 때가 있었다. 숙면을 응원하는 게 옹졸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랑은 상관없이 그 이가 정말 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유가 그랬던 것 처럼. 어쩌면 그게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의 벤자민과 데이지가 서로를 위해 전하는 '잘 자'가 꼭 그런 느낌이었다.

2021년 5월 21일
출처 : 인스타 사진

무너질 것 같은 날엔 앵무새 그림을 보았다.

다음 생에는 사람 말고, 다른 생물체로 태어나면 좋겠다며 문득 헤아려본다. 나무든, 꽃이든 살랑이는 바람에도 땅에 굳게 피울 수 있는.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여러 번 운운하던 때가 있었다.

좋은 사람이 별건가, 다른 이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 아닐까?

어떻게 지내는지 매번 곁에서 알 순 없어도,

광활한 어딘가 묵묵히 그 존재함에 감사할 수 있다면 흙길일 지라도, 지지부진한 삶을 살아도 눈치 보지 않고, 그저 적당한 이기심과 강단으로 갈 길을 갈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2021년 5월 22일
출처 문학동네 인스타

내가 사랑하는 시인, 박준

그의 시는 내가 잊고 있었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사람을 알게 된다는 건 정말 보석 같은 일일 텐데, 아주 어려운 확률로 만나 두 개의 별이 부딪쳐 폭발하는 것.

물론 그렇지 않은 인연도 있을게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괜찮아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주 문득문득 따끔한 기억에 몇 분 눈물을 흘리기도 하겠지만 -

아무렴, 다지지 못한 삶이라도 좋으니,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사람들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2021년 6월 28일

어느 날, 보통의 사람 조차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있을까 미래는 무엇일까 이루고 싶은 건 있었나, 고래고래 목청 터지듯이 터져버리고 나면, 내 안에 있는 여린 가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려움이 깊게 잠식하여 둔탁한 파도 그 끝은, 쉴 새 없이 부서지고 부서지다, 결국 나를 퉁퉁 붓게 만들었다.

내 안의 포근함과 온기와 미소는 어느 구석에 숨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지, 무엇을 챙기려다 나는 제일 지켜야 할 나를 놓치고 말았는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종일 창틀에 팔을 걸치고 울고 나면, 어이없게도 종일 끼니를 놓쳐, 굶주린 배가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는, 낡고도 투박한 사람으로 남아 웅크린 몸에 지쳐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베개에 머리를 묻으며, 크게 숨을 쉬어도 나아지지 않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나의 존재가 작게 느껴지는 태연한 날

억센 어금니를 꽉 깨물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생각들을 해보려 하나 쉽지 않다.

언젠간 이 마음에 몽우리가 지워지는 날이 올까?


스르르 잠이 들고 싶다. 예쁜 노을을 초연하게 보고 싶고, 지친 하루에도 기지개 한 번에 힘이 났으면 좋겠다.

못된 아픔들은 바다의 윤슬 사이로 멀리 은은하게 떠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슬플 때 글을 쓰는 사람인데, 기쁠 때 글을 쓰는 날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뻔뻔하게 염치없이, 행복을 더 많이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꽃밭을 다시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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